쉿, 스님 말씀하시잖아

by 해와


내 운전면허증은 누가 훔쳐 갈까 봐 장롱에 고이 보관 중이었다. 덕분에 친구는 오랜 시간 혼자 운전 중이었다.

피곤하냐고 묻기가 겁났다. '응' 하고 대답할까 봐, 그 대답을 들어도 나는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으니까.

대신 보조석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말이 되는 얘기부터 말도 안 되는 얘기까지 끊임없이 재잘거렸다.

그렇게 한참을 듣기만 하던 친구가 내 어깨를 등받이로 밀어주고는 하는 말이,



-그냥 자. 너도 피곤해.



에헴~ 애쓴 게 들켰군!

알겠다고는 했지만… 너무 고요하면, 고요에 집중돼서 잠이 안 온다.

창문에 입김을 불어 아기 발바닥을 세 개쯤 만들었을 때, 친구가 팟캐스트를 틀어주었다.

갑자기 목탁 소리가 차 안에 울려 퍼졌다. 혹시 불경? 진짜 불경이었다면 친구에게 불경해질 뻔했다.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이었다. 이 정도면 자라고 독촉하는 것 같아서 눈을 붙여보려는데, 어느새 집중하게 됐다.



-괜찮아? 들을만해?

-쉿, 스님 말씀하시잖아.



스님은 인간관계로 고민하는 중생들을 향해 말씀하셨다.

내 마음도 모르겠는데, 어찌 남의 마음을 내 뜻대로 하고 싶어 안달이 났느냐고.

헛된 욕심부리지 말고 집착의 굴레에서 벗어나라는 말로 혼내… 해결책을 주셨다.



그래서 한동안은 모든 관계에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겸허히 받아들이는 척,

내 진짜 마음과 상관없이 고사리 캐 먹는 스님처럼 달관한 듯한 코스프레를 했다.

…얼마 안 돼 깨달았다. 그게 되면 나도 스님이지, 이렇게 고기를 좋아하는 중생일 리 없어.

스님처럼 보이려고 용쓰는 모습도 나름의 수양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척'은 '척'이었다.



아직까지는 붉은 먼지를 좋아하는 속세의 사람을 해야겠다.

관계에 연연하다가 속이 뭉개져서 괴로우면 어떨까. 그렇게 으깨져서 포도주가 돼버리련다.

지금은 이르다. 내 인생을 해탈의 세계로 인도하기에는, 나는 아직도 사람에게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KakaoTalk_20201209_171124809 (1).jpg 그림, 내친구 오수정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어젯밤의 감성은 오늘 아침의 이성을 이길 수 없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