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프심이 잘 부러졌다.
색이 옅어서 연한 심인 줄 알았더니 연약해서 연한 심이었는지.
단어를 마저 적지도 못했는데 또 심이 튀었다.
딸각딸각, 몇 번이고 샤프를 누르는 것도 민망한데
연습장의 어깨를 잡고 있던 선생님 손이 날아오른 파편을 잡았다.
그 손은- 내 글씨가 흔들리지 않도록 연습장을 고정해 주는 손으로만 쓰지,
이리저리 발에 채다가 바스러져버리면 그만인 것을 굳이 낚아채서는 민망하게 만들까.
그러고는 모기를 주먹에 가두었을 때처럼 살포시 펼쳐서
잡아 쥔 것을 화장지 위에 올려두셨다.
화창한 봄바람이 살짝 불어 푸른 물을 건너오니
맑은 향기는 잔에 떨어지고, 붉은 꽃잎은 옷에 떨어진다.
-정극인 <상춘곡> 中
'시선의 이동'에 따라 화자의 정서를 표현한 운문 <상춘곡>
눈이 사물을 담고 나면 마음이 사물을 둘러싼 분위기를 담는다.
종이에 적힌 단어, 톡 부러진 심, 심을 잡아 쥔 손, 심이 놓인 화장지.
오래전 공부했던 상춘곡 같다. 시선의 이동에 따라 많은 마음이 인다.
-해와 씨! 어디 보세요! 저 보세요, 저!
(이게 독해 위주 학습의 폐해입니다. 막상 써보면 문법이 많이 틀리잖아요.
습관적인 과거형 안 된다고 했죠! 복수, 단수….)
들리는 대로 적으랬더니 his를 he's로 쓴 주제에 딴짓까지 하고 있다고 야단맞았다.
상춘곡의 봄바람이 무색해지게 칼바람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