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 밖 손님

납량특집

by 장해월

20대 중반 즈음이었다. 평생 집에 반려동물은 들일 수 없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시던 아버지께서 강아지를 키우자는 이야기를 꺼내셨다. 알레르기도 있는 양반이 무슨 반려동물이냐고 어머니께서 반대하셨다는데, 나는 사실, 그때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부모님의 말씀에 따르면, 나는 그때 아버지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 마치 어린아이처럼 울고불고 떼를 쓰며 흰 강아지를 키워야 한다고 우겼다고 한다. 평소에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내가 자꾸 조르자 이상하다고 생각하셨지만, 평소 그다지 우기는 일이 없는 다 큰딸이 자꾸 떼를 쓰니 아버지께서 어디에선가 흰 강아지를 데려오셨다.


조그마한 강아지가 어찌나 에너지가 넘치는지,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니는 마당에 조용했던 집안이 조금 시끌벅적해졌다. 그리고 강아지가 집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상한 꿈을 꿨다.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조차 가지 않을 밤, 내가 침대에 일어나 앉으면 방안에서도 보이는 현관문에, 나는 그제야 꿈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현관문 바로 앞에 있는 방이라지만, 투시라도 하지 않는 한, 방 밖의 현관문도, 현관문 밖도 분명 보일 리 없었다.


어두컴컴한 현관 문밖이 눈에 익을 즈음이면, 그제야 현관문 바깥에서 외시경으로 안을 가만히 바라보는 형체가 하나 보였다. 눈코 입도 보이지 않는 검은 형체가 한참을 그렇게 들여다보고 있을 때, 거실에서 자고 있던 강아지가 현관문 앞으로 달려와 바깥을 향해 짖기 시작했다. 그리고 들여다보던 형체가 강아지가 무서운지 문에서 조금 멀어지자, 내가 꿈에서 깼다 - 강아지가 짖는 소리에.


꿈에서도 들리던 강아지 짖는 소리가 현실에도 들리니 꿈인지 현실인지 가늠이 잘 되지 않았다. 그리고 곧 정신을 차려 밖으로 나가니 작은 강아지가 겁이 났는지 오줌을 한 바닥 지려가며 짖고 있었다. 시간은 벌써 새벽 3시- 밖에 혹시나 누가 있나, 인터폰으로 바깥을 보았지만, 현관문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혹시나 부모님이 깨실까 봐 달래 보려고 해도 강아지는 한참을 그렇게 뛰어다니면서 짖고 나서야 내게 안겼다. 낑낑거리면서 꼬리를 내리는 강아지가 걱정돼서 혼도 내지 못하고 부모님 몰래 바닥을 치운 것이 첫째 날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꿈은 계속되었다. 현관문 앞에 있는 검은 형체, 그리고 그, 혹은 그것을 향해 짖는 강아지. 꿈속의 그 형체는 분명 집안으로 들어오고 싶어 했고, 강아지는 절대 그렇게 둘 수 없다는 듯 짖어댔다. 그리고 집에 그 형체가 들어오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꿈속의 나는 말리기는커녕, 침대에 앉아 짖고 있는 강아지를 보거나, 혹은 그 옆에 서서 현관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꿈에 깨면, 어김없이 강아지는 다시 현관문을 향해 짖고 있었다. 분명 누군가 하나 깰 법도 한데, 나를 제외하고는 이상하게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 며칠은 인터폰으로 혹시나 바깥에 누가 있는지 확인을 했다. 하지만 몇 번을 봐도 사람은커녕 기척조차 없었고, 도저히 문을 열어볼 염두는 나지 않았다. 이어지는 꿈과 현실에, 그 경계가 나에게도 애매해졌는지, 아니면 마음 깊숙이 무엇인가 분명 잘못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그렇게 짖고 있는 강아지와 오줌으로 뒤범벅이 된 현관으로 잠을 설친 지 일주일 가까이 되었을까, 밖에서 들여다만 보던 검은 형체가 몸이 달았는지 문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노크 같은 느낌이었지만, 곧 문을 부술 듯이 두들기며 문을 열라고 종용했다. 문 밖의 그것은 때로는 부모님의 목소리로, 동생의 목소리로, 혹은 내 목소리로 소리를 질러가며 문을 열라고 다그쳤다. 가족의 목소리까지 따라 해 가며 집에 들어오려고 하는 그 무언가가 혹시나 집안에 들어올까 전전긍긍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그저 다음날 어머니께 강아지가 혼나지 않게 현관을 깨끗이 치우는 것과, 무서워하는 강아지를 안아 재우는 것. 현실과도 같은 내 악몽을 함께해 주는 강아지에게 감사할 뿐이었다.


그렇게 열흘 정도 지나자, 더 이상 그 꿈을 꾸지 않게 되었다. 강아지가 현관문 바깥을 향해 짖는 일도, 현관을 오줌 바다로 만드는 일도, 내가 악몽 끝에 잠에서 깨는 일도 없었다. 그저 며칠 후, 아버지께서 가벼운 접촉 사고가 나셨다.


상대방의 보험사조차 고개를 흔든 이 사고는 완벽히 상대방의 과실이었다. 아버지의 현란하신 운전 솜씨로 큰 사고를 피한 기적 같은 케이스였기에 아버지께서는 농담 삼아 회사원이 아닌 레이서를 해야 했다는 실없는 농담을 던지셨고, 철도 없고 실도 없는 아버지의 농담에 어머니께서는 덜 다쳐서 그렇다며 도끼눈을 뜨셨다. 나는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며칠 전 꾸었던 꿈이 자꾸만 마음에 걸려 부모님 몰래 물어 물어, 용하다는 무당집에 갔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작은 주택- 겉으로 슬쩍 봐서는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처음 가보는 무당집에 한바탕 숨 고르기를 하고 집에 들어가려던 차에, 집 문턱도 넘기 전에 한 인상 강한 아주머니께서 나와 내게 다시 가라고 손짓하시며 말씀하셨다. "끝났어."


"네?" 여기까지 왔는데 다시 가라는 말에 기분이 좋지도 않았지만 밑도 끝도 없이 끝났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니 아버지 죽을 뻔한 거, 살았다고. 이제 끝났으니까 걱정 말고 가라고." 뭘 궁금해하냐는 듯이 아주머니께서 말을 이으셨다. "니 강아지, 네 집에 살다가는 오래 살기는 틀렸으니, 조금이라도 더 살길 바라면 다른 집에 보내줘. 니 아버지 살리려고 고생했네."


"강아지가요?" 마치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하시는 말에 나는 그저 의미 없는 질문으로 아주머니의 말을 받아쳤다. 그럼 정말 내 꿈이 무언가를 의미하고 있었던 걸까. 조금 더 친절한 설명이 필요했다.


"뭐 다 봐놓고 그래. 넌 이런데 오면 안 돼. 신받고 싶어서 그러는 거 아니면 이런 데는 피하는 게 좋아. 그리고, 네 아빠 살린 거는 네 동생이랑 니 강아지 덕이니까 평생 감사하고 살아." 아주머니께서 다시 손짓으로 얼른 가보라고 하시며 답하셨다.


"동생이요?" 정말 내가 본 게 꿈이 아니라면 강아지야 이해가 되었지만, 내 동생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잠에서 깰 때마다 코를 골고 방에서 자고 있던 동생이 무슨 도움이 된 걸까?


"그 동생 말고, 니 아버지 살리려고 흰 강아지 사달라고 떼쓴 동생. 니는 너한테 씐 동생도 모르냐?" 아주머니는 뜻하고 혀를 차시더니 궁금한 게 있으면 니 어머니께 물어보라며 나를 내 쫒으셨다.


흰 강아지를 사달라고 울고불고 떼를 썼다는데 기억조차 나지 않음은 내가 아니었기 때문일까? 아주머니께서 말씀하신 그 동생은, 어머니께서 내게 언젠가 말씀하신, 미처 태어나지 못한 동생이었을까? 집이 가까워질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지던 집으로 가는 길, 눈앞이 흐려져서 자꾸만 걸음을 멈췄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도깨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