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중국의 동력을 들여다 볼 책 추천
이런 공자의 말을 생각나게 하는 이 책의 수많은 주인공들은 공산당의 최상위층에 있는 권력자, 몇 조 위안을 가진 중국 최고의 부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길거리의 청소부, 맹인 사회운동가, 도망자, 무명의 대학생, 학원에 다니는 취준생 그리고 벤처창업가다. 최고 지도자층에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이런 보통 사람들도 이런 야망을 가지고 있다는 그 역설적인 사실이 중국의 저력에 대해 진실로 소름끼치게 한다.
야망(중국어로는 野心(예신)). 크게 무엇을 이루어보겠다는 마음. 보통 사람들의 야망은 물밑에서 조용히, 그러나 쉼없이 헤엄치는 물갈퀴와 같다. 13억의 숫자에 비하면 정말이지 미미한 한 사람 한 사람의 물갈퀴이지만, 야망을 향한 물갈퀴들이 뒤엉켜 헤엄치다보니 지금의 거국적인 현대 중국의 파도를 만들었다. 어쩌면 이런 ‘야망’이라는 모호한 단어가 지금의 중국의 경제성장률이나 격변의 사회상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결혼정보업체 ‘가연(佳缘)’의 등장과 결혼, 직업, 여행, 인터넷의 허용은 모두 그전과는 달리, 개성에 기반해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받은 중국인들의 현상을 대변한다. 중국 젊은이들은 이제 자신의 우상을 선택할 권리를 부여받았고, 더욱더 노골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선택해나간다. 여행지로 중국 남부의 하이난이나 홍콩에 그치지 않고 한국, 일본, 더 나아가 유럽까지 나가는 것부터 시작하여, 이제는 직업 그리고 배우자까지 인터넷에서 고른다. 남자가 집을 가지고 있는지, 몇 칸짜리 방인지, 몇 명의 룸메이트와 같이 사는지, 차는 무엇인지 등등 끊임없이 자신의 정보를 공개하고 부를 증명해야 하는 운명에 처했다. 사람들은 철저하게 자신의 ‘개성’에 따라 배우자를 선택하고, 반대로 선택받기 위해 ‘개성’을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 그 개성을 가장 잘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결혼시장에서 제일 인기 많은 문구는 ‘자동차, 집 구비완료’라는 역설적인 사실.
오랫동안 상업을 멸시하는 유교의 전통을 지켜왔고 1960년대 문화 대혁명 때는 자본가를 마을회관에서 공개처형했던 이 국가에서 이제는 ‘부’를 향한 추종이 전혀 부끄럽지 않게 공공연한 문화가 된 것이다. 저번 세대까지만 하더라도 부모의 정치적 신뢰성에 바탕해 서로를 평가했다면, 이제는 남녀가 소득잠재력에 기반해 서로를 평가한다. 개인과 개성의 부상으로 ‘사랑’까지 자유로워졌지만, 이또한 결국 ‘부’로 귀결되는 역설적인 상황에 괴로워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중국 사람들. 그런 와중에, 그래도 저 위를 향해 나아가려고 5년 후, 10년 후를 기약하는 청년들의 인터뷰를 보면서 알 수 없는 쓸쓸함과 뜨거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중국 사람들은 바이두에 ‘천안문 사태’를 검색해도 유의미한 결과를 찾을 수 없다. 공산당의 유혈진압으로 인해 1만명이 사망했다는 1989년이 아닌, 제2차 천안문 사건(1976년)이 등장한다. 그래서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천안문 사태를 정작 중국인들이 잘 모른다. 심지어 천안문 사태와 관련된 ‘6월 4일’, ‘6.4’ 같은 조합을 검색해도 막혀있다. 저자가 동영상 하나로 중국의 민족주의를 재발시킨 대학원생, 대만에서 헤엄쳐 중국으로 망명해온 경제학자 린이푸,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지만 중국 감옥에 갇혀있는 류사오보 등 많은 스펙트럼의 사람을 인터뷰하면서 전하는 메시지는 하나다. 쇠사슬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대중은 은으로 된 사슬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인터넷은 전례없는 방식으로 그동안 공간적, 언어적 장벽에 막혀있던 중국인들을 서로 만날 수 있게 해줬지만, 이를 두려워 하는 중국 정부에 의해 조직적으로 통제되고 있다. 인터넷 뿐만 아니라 그들이 접하는 많은 정보들, 사회의 권리와 현실들도 다르지 않다. 이를 아는 중국인들은 그래도 전보다는 많아진 자유를 누리기 위해 엉거주춤, 이 어색한 장단에 맞춰 춤을 출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경제성장과 그 금은보화 같은 결실이 샹들리에와 같다. 그리고 누구나 볼 수 있게 천장에 전시되어 있다. 그 샹들리에는 '공산당'이라는 아나콘다가 혀를 낼름 거리며 칭칭 감고 있다. 이 아나콘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며 샹들리에에서 떨어지는 빛을 나누어 먹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이 중국의 현실이다.
생활여건이 어느 정도 좋아지자, 중국인들은 그 이상의 뭔가 빈 것 같은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믿음을 찾아나섰다. 모든 것이 판매 가능한 사회를 향해 30년을 행진해 온 많은 중국인들이 이제 그들의 가치관을 재고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돌풍을 불러왔던 마이클 샌델이 중국 대학가에 초청받아 아이돌과 같은 인기를 누리고, 영원한 것은 무엇인가, 옳은 것은 무엇인가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저자가 인터뷰를 통해 만나본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살펴보면, 그동안 정신적으로 고양된다거나, 자신보다 거대하고 주변의 평범한 것보다 중요한 무언가를 위해 애쓰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삶속에 부재했기 때문에 이런 도덕, 기독교, 심지어 공자에까지 서서히 귀의하고 있었다. 이제 중국사람들은 뺑소니를 당해 길거리에 피흘리며 누워있는 소녀를 못본 척 한 사람들에 분노한다. 정부의 대규모 고속철도 사업에서 어마어마한 뒷돈을 빼돌려서 일어난 충돌사건에 격렬한 문제를 제기하고, 스스로 변화를 꾀한다.
일정한 경제발전 이후 종교, 진리를 향한 추종은 비단 중국 뿐만 아니라 많은 선진국에서 볼 수 있었던 현상이다. 다만 중국의 이런 현상에 주목하고 싶은 이유는 중국의 특수한 정치체제 때문이다.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한 사람들이 늘어날 수록 진실을 폭로하고 구체제에 의문을 제기한다는 것은 일당체제의 권력이 가장 무서워 하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이 지금까지 집권할 수 있었던 이유는 1950-70년대에는 평등과 고생의 종결을, 개혁개방 이후에는 번영과 자부심, 힘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 살게 해주겠다는 캐치 프레이즈 하에 지금처럼 정치체계를 공고히 해온 공산당이 이제는 오히려 잘 살게 된 인민의 야망에 의해 은밀하게 흔들리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그들과 민중 사이의 무언의 약속을 어겼다. 어떤 민중은 잘 살게 못 도와줬고, 잘 살게 해주었어도 그 뒤의 무언가 조직적으로 숨기고 있다는 사실이 들통났다. 민중은 인식한다. 민중은 이제 바꾸고 싶어하고, 바뀌고 있다. 부를 추구하는 사람,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 믿음을 추구하는 사람 중심에는 모두에는 이런 생각이 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무엇을 원하는가? 그리고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어떤 희생을 감수하겠는가?
적어도 지금의 희생에 대해 미래에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하나의 이데올로기적인 동력에 의해 오늘도 참고 내일을 기리는 중국 ‘사람' 하나 하나의 초상을 느낄 수 있었다. 인생을, 사회를, 나라를 바꿀 수 있다는 순수한 가능성 그 자체에 대한 믿음이 중국을 이끌어 간다. 알리바바의 마윈이 중국 청년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히게 된 이유와 일맥상통한다고 본다. 무에서 유를 일궈낸 영웅들의 이야기를 보며, '저 사람도 하는데 나도?'라는 의식이 변화하는 중국 그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중국을 알려면 베이징과 상하이의 휘황찬란한 마천루, 폭발적인 경제성장 같은 뜨거운 빛도 보아야 할 줄 알아야 하지만, 그 에너지의 원천 또한 살펴 보아야 한다. 그것은 바로 ‘나도 할 수 있다’는 범부들의 야망이었다. 그런 은밀한 야심의 심장이 13억개나 있는 나라. 무섭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을 서술한 저자는 토종 중국인이 아니라, 미국인이라는 것. <뉴요커>지의 기자로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중국에서 주재하며 신기하게도 너무 유명한, 한편으로는 너무 사소한 사람들 하나하나를 인터뷰했다. 그는 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문학 특유에서 우러나오는 비유를 잘 담아내었다.
“중국 예술계에서 개인이 어디까지 가도 되는지 예측하는 것은 어둠 속에서 물이 빠진 백사장 위에 선을 긋는 일과 비슷하다”
"오히려 포용하는 것이 그 안의 혁명 에너지를 제거하는 방법이다”
“오늘날의 중국은 뇌우 속을 달리는 열차와 같다. 우리 모두가 이 열차의 승객이다”
이방인이기 때문에 민감한 사안의 사람을 만나 인터뷰하기 더 쉬웠을 것이고, 반대로 이방인이기 때문에 여러가지 장벽에 막혔으리라. 긴박감 넘치는 취재 과정과 담담한 서술어가 마치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아 이 책을 쉬이 놓지 못하였다.
이 책이다. 읽어보시길!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9251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