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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혜원 May 07. 2017

컨텐츠의 빨간약과 파란약 사이에서

인간vs기계를 넘어 생각해봐야 할 것들

일상속에 파고든 알고리즘 큐레이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페이스북 뉴스피드를 확인한다. 멜론을 켜, 신나는 출근송을 들으며 집을 나선다. 퇴근길 지하철에서는 내가 좋아할만한 추천 영상을 보며 시간을 떼우고, 집에 도착해서 내가 좋아할 만한 에는 무슨 영화를 볼까 왓챠를 열어 나에게 맞는 추천영화를 확인하고 왓챠플레이에서 이어본다. 우리 삶과 뗄레야 뗄 수 없는 큐레이션. 인터넷의 발전과 무한 데이터시대의 도래로, 우리는 이제 넘치는 정보의 양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더 ‘내가 원하는 뉴스 컨텐츠’, ‘나랑 어울리는 노래’를 세세하게 따지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라디오 DJ가 이 일을 했다면, 이제는 수많은 알고리즘들이 이 일을 해낸다. 타겟의 수는 정해져 있지만 무한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구글의 알고리즘 방식, 한사람이 원하는 뉴스피드의 데이터 셋은 정해져 있지만 11억이라는, 도저히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양의 사람 수를 관리해야 하는 페이스북의 알고리즘 방식이 그 예일 것이다. 기계만능주의로 빠져들던 2010년대의 열풍에 반하여 이젠 이런 부문에도 역시나 사람의 입김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알고리즘과 휴먼 큐레이션의 경쟁과 향방에 대한 논란이 불 붙게 되었다.


무엇이 우리에게 이로운 것인가


둘중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고민하는 가장 쉬운 출발점은 과연 무엇이 우리에게 더 이로운 것인가 묻는 것이다. 결국 좋은 걸 택할 것이니까. ‘큐레이션에 있어서 이로움’이란, 빠름, 정확함, 예상치 못했던 놀라움 등이 될 수 있겠다.


1. 빠름


내가 원하는 정보를 빠르게 엮어내고, 도출해내는 것. 생각해보면 기계가 0.1초만에 스스슥 결과롤 도출해내니 당연히 사람보다 빠를 것 같지만, 라디오 DJ가 원하는 컨텐츠를 미리 만들어놨고 그걸 이전에 publish해놓았다면 절대적 속도의 측면에서는 인간과 기계가 비슷할 수도 있겠다. 결국 publish의 시점과 search의 시점의 선후관계에 따라 인간이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 것 같다. 또 카테고리에 따라 나뉘는데, 뉴스 컨텐츠는 최신의 것을 빠르게 수집하고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음악은 꼭 최신 음악을 들어야 하는 건 아니다. 결론은, 직관적으로는 기계의 압도적인 승일 것 같지만 search 시점에 따라 아리송한 부분이다.


2. 정확함


‘내가 원했던 이 영화의 이 느낌’은 기계가 더 잘 알아주는 것 같다. 특징을 바탕으로 아이템별 연관성을 파악해서 추천해주는 content-based algorithm, 선호하는 아이템을 바탕으로 사용자간 연관성 파악해주는 collaborative filtering을 이길 수 있을까. 결국 사람이 추천해주는 것도 ‘감’과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서인데 이동진 평론가가 말하는 영화의 느낌과 내가 느끼는 영화의 느낌을 다를 수 있기에, 이 삐끗하는 차이에서 느껴지는 실망감이 없잖아 있다. 뉴스에 있어도 특정 파라미터 값으로 뽑아낸 기사들과, 칼럼이 아닌 사실 이게 끝?하고 허망해지는 사람이 쓴 정보성 기사들이 많은 시대다 보니 굳이 사람이 쓴 것만이 팩트체크에 유리한지는 모르겠다. 결론적으로는 기계가 살짝 우위가 아닐까.


3. 예상치 못했던 놀라움


결국 사람이 기계보다 잘하는 것은 시키는 것 이외의 일을 해내는 능력이다. 우리는 지진이 일어나면 지진의 강도나 피해지역도 궁금하겠지만, 앞으로 어떤 추가 피해가 예상되며 이를 예방하기 위해 정부가 어떤 일을 해야할지 등의 그 ‘next step’을 읽고 싶어할 것이다. 음악에서도 이 장르, 이 가수, 이 발매일과 비슷비슷한 알고리즘 베이스 음악을 추천받다가, 노련한 전문가가 "사실 이 장르는 1920년대 미국에서 시작되었으며 그 연원은 바로 이 음악과 이 뮤지션의 초기 작품에서 찾을 수 있다”라는 재치를 발휘하면 우리는 예상치 못했던 놀라움에 ‘소오름’이라 느끼며 플레이어를 캡쳐해 인스타그램에 수많은 #소오름 #인생노래 #대박사건 #역시00 등과 함께 올리기 마련이다. 결국 이런 ‘소오름’을 건드는 작업을 기계가 과연할 수 있는지가 기계vs휴먼 큐레이션의 끝장판일 것이다. 아직은 이런 통섭의 능력이 인간이 앞으로 10년 간은 앞서있지 않을까 생각한


무엇이 우리에게 혹은 세상에게 정의로운 것인가


좀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무엇이 우리에게 혹은 세상에게 정의로운 것인가. 애초부터 정의로움을 논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을 수 있다. 결국 큐레이터를 고용하든, 알고리즘을 적용하든 남들과는 다른 컨텐츠들을 제공하려 노력하는 미디어 기업들 또한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는다.


"아니 내가 컨텐츠 제공하고 돈벌겠다는데 이 자본주의 시장에서 누가 뭐라해?"


하지만 그 컨텐츠 공급자가 우리가 접하고 있는 정보들을 독점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는 달라진다. 모든 사람들이 궁금한 점이 있으면 구글에 들어가 검색하고 있는 시대에, 구글이 이 사회에 가진 컨텐츠 공급자로서의 의무는 결코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각 신문사 사이트에 굳이 들어가지 않고도 친구들이 좋아요한 뉴스나 컨텐츠들로 뉴스를 갈음하고 있는 시대에, 페이스북의 사회적 의무도 결코 적지 않다. 페이스북의 공격적인 아프리카 진출 계획에 수많은 아프리카 단체들이 이것저것 따지며 반대하는 이유와 떨어져 있지 않다. 실제로 많은 아프리카인들이 “인터넷=페이스북”인 줄 알기 때문이다. 알바생들이 뭘 잘 모를 때 사장님이 사탕 하나 쥐어줬다고 “우리 사장님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사장님이 악덕사장일지 어떻게 아는가.


컨텐츠의 빨간약과 파란약 사이에서

추천받는 것이 세상의 다가 아니다


각종 인터넷 설문조사와 SNS에서 힐러리 클린턴의 압도적인 우세를 보고 맘을 놓았던 미국 국민들은 이를 뼈저리게 깨달았을 것이다. 인간이든 기계든 우리는 큐레이션을 통해 결국 보고 싶은 것만을 보게 된다. 수많은 정보의 홍수에서 내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큐레이션은 항상 옳은 것이라는 기본전제에서 인간vs기계 논란이 시작되었지만, 한발짝 떨어져, 우리는 양 진영 모두 정신적인 빨간약과 파란약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내가 좋아요한 스타들과 저자, 친구들의 하하호호 이야기만 들을 것인가, 전쟁과 자연재해와 폭력의 희생자들의 다급한 이야기, 사회를 움직이는 검은세력들의 뒷이야기를 적어도 인식은 하고 있을 것인가. 알고리즘 로직에 따르면 결국 내가 듣고 싶어 하지 않은 일들은 계속, 제곱의 속도로 소외될 것이다. 거국적인 세상 돌아가는 일뿐만 아니라, 큐레이션에 의해 음악도 항상 듣던 음악을 듣고 비슷비슷한 영화를 보고 비슷비슷한 옷만을 챙겨 입는 것으로 수렴하는 세상. 생각해봄직하다.

골라봐~그런데 네가 보는 세상이 다는 아니란다?


노동에 대한 고민


마지막으로 노동에 대한 고민이 빠질 수 없다. 알고리즘이 사람의 일을 빼앗고 있는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잠금화면에 컨텐츠와 광고를 제공하는 사업을 하는 우리 회사에서도, 한 부서에서는 사람이 일일이 특정 관심사 카테고리의 사람들에게 맞을 것 같은 타겟팅 컨텐츠를 하나하나 내리고 있는 반면, 한 부서에서는 이것을 머신러닝으로 더 빠르고 정확하게 로딩하는 것을 개발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머신러닝 자동화 로직이 완성이 된다면 오퍼레이션팀의 설 자리는 없어질 터.. 이것이 사람이 큐레이션해주는 게 좋다, 기계가 좋다를 논하기 전에 가장 근본적인 질문일 수 있겠다.


결국 기계가 우리 일자리를 잡아먹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이 모든 논란의 시작점이자 종점이지 않을까.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수많은 큐레이션 결과물 중에서 내 입맛에 맞는 걸 선택할 수 있는 수혜자인 동시에, 앞으로 일상의 많은 부분을 '큐레이션'해 선택받아야 살아남는 시대의 종사자인 우리는 자유로운가. 또 우리는 진정 선택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맞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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