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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혜원 Dec 12. 2018

별이 모여 은하수가 될 때까지

최혜원의 2018년 회고록

일년을 돌아본다 

올해 내게 일어났던 변화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새삼스레 들여다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질문충이라 지금까지 내 곁의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그렇게 많이 물어보고 다니고, 수많은 사건들과 모임들, 직장의 일들에 휩쓸려 다녔으면서도 정작 나를 돌아다보거나,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들여다볼 시간도, 필요도 못 느끼며 살았다. 그런데 올 한해 여러 계기를 통해 나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아기처럼 아장아장 배우게 되었고, 일주일이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생각의 시간에 ‘나’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좋은 것' 

내가 잘하는 것 중 하나가 ‘좋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주변 사람들도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좋은 것’이란 어떤 사람이 되었든, 모임이 되었든, 제품이 되었든, 맛있는 음식이 되었든, 영화가 되었든, 미래의 꿈이 되었든 내가 ‘좋은 것’이라고 믿을 수 있는 그 모든 것을 포괄한다. 한편으로는 무언가를 좋아하기까지의 나의 bar는 상당히 높아서 그 bar를 넘지 못하여 스스로가 설득이 안되면 남을 설득하는 데 아주 애를 먹는다는 단점은 있지만. 그만큼 나는 ‘좋은 것’을 찾아다니고, 이게 ‘왜 좋은 것인지’ 스스로를 설득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는다. 그렇게 곱씹고 곱씹어서 하나의 ‘좋은 것’이 생기고 나면 내 주변의 사람도 ‘이 좋은 것’을 사랑하고 같이 항유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그들도 ‘이 좋은 것’을 사랑하게 만들고 나면 자이로드롭을 타고 하늘을 쭉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과 같은 표현할 수 없는 유형과 정도의 쾌감을 느낀다. 


반짝 반짝 빛나는 사람들 

주로 내가 사랑하는 ‘좋은 것’은 사람일 때가 많다. 어쩔 수 없는 사람쟁이라..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라곤 하는데, 나는 사람을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낯을 아주 많이 가리는 사람이다 (믿어주세요). 그래서 나에겐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큰 두려움이고, 부담이고, 큰 숨을 들이쉬고 마주해야 하는 일이 맞다(믿어주세요2).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이유는 반짝거림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는 반짝거리는 사람을 좋아한다. 비단 무엇을 잘해서 빛나는 반짝거림을 의미하진 않는다. 내가 이야기하는 반짝거림은 누구나 부러워 하는 삐까뻔쩍한 직장을 다니는 사람, 영어나 중국어, 스페인어 등 4개국어를 기깔나게 잘하는 사람, 척 보면 척하고 기업분석을 해내거나 누구도 생각지 못한 인사이트를 술술 뿜어내는 명철한 사람, 돈이 넘쳐나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신감 넘치는 사람의 반짝거림은 아니다. 이런 사람들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오히려 누가 봐도 무엇을 끝내주게 잘해서 자기가 잘난 줄 알아서 흘러나오는 교만과 남을 낮추어야지만 스스로 높아질 수 있는 반짝거림은 오히려 지독히 싫어한다. 내가 좋아하는 반짝거림은 바로 거창하지 않은, 자신만의 반짝거림이다. 시간을 내어 자신만의 노래 가사를 쓰는 사람이거나, 넷플릭스를 너무 좋아해서 거기에 나오는 컨텐츠에 대해 누구보다 재미있게 재잘댈 수 있는 사람, 남들은 보지 못하는 다른 사람의 장점을 귀신 같이 찝어내 용기있는 칭찬을 해줄 수 있는 사람, 자신의 아픔에 대해 용기 내어 이야기해주며 같은 아픔을 겪고 있을 누군가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 요리를 잘해서 좋아하는 사람들을 집에 초대해 대접할 줄 아는 사람, 좋아하는 어떤 일에 빠져 밤을 새서 몰두하고 허탈웃음을 지으며 재미있었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 누구보다 중국을 좋아해 중국 변방에서 겪었던 여행 스토리를 밤새도록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겸손하지만 은근한 자기의 매력이 있는 사람들 고유의 반짝거림을 사랑한다. 쓰고 보니 주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명확하고, 그것으로 다른 사람들을 inspire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내가 사랑하는 반짝거림의 요체인 것 같기도 하다. 



반짝거림을 모으면 일어나는 일 

‘좋은 것 수집가’인 나로서는 이런 반짝거림을 간직한 사람을 보면 눈이 반짝 거린다. 낯가림의 두려움의 한숨을 내쉬고 만난 사람이 자신만의 반짝거림을 가진 사람임을 캐치하면 나도 모를 설렘이 나를 기쁘게 한다. 배우고 싶다, 더 알아가고 싶다, 저 반짝거림을 더 자주 보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나를 사로잡는다. 그리고 내가 아는 또다른 반짝거림과 이어주고 싶다, 잇고 이어서 큰 별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일어난다. 


참 아쉬운 건 반짝거리는 사람들은 다 자기 삶이 있고 욕심이 많은 사람이어서 다들 하나같이 바쁘다는 것인데, 이때 해결책은 이어 버리면 된다. 이게 진짜 내가 주로 하는 방법이다. 학교 다닐 때는 내 시간을 싸그리 갖다 바쳤던 동아리에 반 친구, 후배들을 데려왔고, 내가 사랑하는 회사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데려와서 한 공동체에 속하게 했다. 같은 조직에 속하게 하는 게 어렵다면, 뜬금없이 누구를 소개해주겠다는 약속을 잡아 버리기도 한다. 이 방법의 장점은 내가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는 그 공동체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한번에 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들도 나와 같은 비전와 방향성을 가지고, 같은 것을 고민하며 동고동락하면서 이전보다 더 긴밀하게 뭉칠 수 있다는 것. 반짝 거리는 사람들이 같은 비전을 가지고 똘똘 뭉쳤을 때 나오는 그 폭발적인 에너지는 정말 엄청나다. 동아리 때 이런 짜릿한 경험을 해보고서는, 반짝거리는 팀, 같은 비전을 보는 소속감과 열정이 주는 그 짜릿한 맛을 끊지 못해서 그 길로 스타트업에 몸을 담아 지금까지 있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가끔 송년회나 동아리 알럼나이 모임에 가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의자마다 앉아 있는 것에 1차 감격, 그런 좋은 사람들이 점점 더 이 업계로 넘어오고 있는 것에 2차 감격해서 뻘글을 뱉어내고 진지충이란 놀림을 받기도 하지만. 


별이 모여 은하수가 될 때까지 

다시 일년을 돌아본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반짝거림에 설렜고, 모아서 별을 만들었다. 올해 가장 설렜던 순간들의 공통점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이었고, 그들이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의미 있는 대화를 하거나 결과물을 내어 “이 모임이 있어 뿌듯해요”,”덕분에 재미있는 경험을 했어요”, “여러분을 만나 행복해요”, "관점이, 삶이 달라졌어요", “덕분에 다음달이 기다려져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다. 트레바리 쩐빵, 서향재, 한여름밤의 서울졀늬, 가우디영, 미도상회, 그리고 그밖의 모임들. 이름 짓기 좋아하는 작명충이라 나름 세글자, 네글자로 떨어지는 우리만의 모임 이름이 생기면 희열을 느끼며 혼자 낄낄거리고 있는 나를 알까나. 물론 어떤 모임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잔다르크처럼 앞장설 때도 있지만, 모든 모임에 100% 온전한 나를 찢어넣지 못해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때도 많았다. 특히 요즘처럼 바빠져서 오도 가도 못할 때는 책임감과 미안함에 너무 괴롭다. 하지만 그때도 멀찍이서, 알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별의 꼭지점들을 보면 어느새 엄마 미소를 짓고, 참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라는 말을 계속 되뇌이게 된다.  


연결의 힘을 믿는다. 별들이 모여 은하수를 만들 것을 믿는다.  반짝거리는 사람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play ground를 만들어 놓고, 그들이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같은 주제, 같은 애호, 같은 비전을 제시하는 것, 그리고 그렇게 모인 그들이 행복해 하는 것을 바라보는 게 나를 살아있다고 느끼게 하는 원동력이다. 그래서 내년에도 반짝거리는 은하수를 이어나가보려 한다. 앞으로는 더 큰 별들을 이어보며 살아가보려 한다. 그리고 흔쾌히 나의 제안에 yes라고 대답해주는 감사한 사람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반짝거리는 사람들에게 뒤지지 않는 또하나의 반짝거리는 별의 꼭지점이 되기 위해, 나 자신도 끊임없이 가꿔 나가야 하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이 글을 빌어 너무나도 부족한 사람을 믿고, yes라고 해주었던 한명 한명에게 감사함을 표하며 2018년을 마친다. 2019년에도 Would you like to..라고 뜬금없는 제안을 하는 나를 이해해주세요. 

당신의 반짝거림을 잇고 싶습니다. 


항상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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