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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우소 Feb 26. 2024

엄마, 학교를 왜 꼭 다녀야 해?

퇴로는 없다

첫 아이는 학군지에 살면서 많은 부모님이 선호하는 유아학습기관을 보냈다. 아이들이 일상적으로 학업평가를 받고, 수준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는 경우를 일찌감치 겪다보니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같은 기관의 많은 아이들이 더욱 수준 높은 선행학습을 위해 당연하다는 듯 또 다른 학원으로 향한다. 디테일에 강하고 유행을 좋아하며 정보력이 뛰어난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최신 학원은 계속해서 업데이트 된다. 소문난 인기 학원에 들어가기 위한 공부, 소위 수준 높다고 알려진 선생님,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기 위한 공부가 경쟁적으로 계속된다. 공교육은 이미 존재감이 희미하고 그 질과 속도에 대한 불안과 불신은 학교에 미처 들어가기도 전에 더욱 공고해진다.


엄마, 학교를 왜 꼭 다녀야 해?


최근 딸아이에게 받은 질문이다. 여덟 살이 된 내 딸의 꿈은 안전하게 잘 노는 것이고 자신은 의무교육인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학교를 안 다니겠다고 한다.


그 질문을 받을 때만 해도 나조차 학교를 왜 꼭 다녀야하는지 정말 몰랐다. 나는 남부럽지 않은 학교를 우등생으로 졸업하고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그간 익혀온 잔재주를 부려가며 1인 다역으로 살아간다. 사실 나는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이제야 아이들을 키우며 진심으로 배우고 있다. 내 아이들이 1등급 공부실력보다 잘 배웠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 독립을 위한 자조능력과 언어적 의사소통능력 그리고 신체건강을 위한 식습관, 규칙적인 생활습관과 운동 등이다.


얼마 전 오랜 친구에게 평생 애써모은 큰 돈을 사기 당하고 울면서 글을 배운 할머니가 쓴 시를 읽었다. 자신이 글을 배운 수업료가 3억 7천이라는 내용이었다. 그 사연을 접하며 교육의 본질이 뭘까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내 아이들이 이야기 속 할머니처럼 몰라서 남의 말에 전적으로 기대거나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읽고 생각하고 판단을 내리는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정도의 언어를 익히면 충분할 것 같다. 같은 의미로 계산을 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지는 못해도 다치게하지 않도록 조심했으면 좋겠다. 그 정도는 학교에서 배울 수 있다 생각하기에, 사교육이 잠식한 대한민국에서 사이비로 취급받는 종교의 신도처럼 나부터 공교육을 믿어보려 한다.


나는 학창시절 배우는 내내 왜 배워야하는지 뭘 배우고있는지 몰랐다. 스스로 고민하거나 시행착오를 겪어볼 틈이 미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필요로 하기 전에 나의 필요를 짐작한 부모님으로부터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이 주어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떤 것도 진짜 호기심이 인다던지 흥미롭게 느껴져 파고들어 본 적이 없다. 그런 척 흉내만 내왔을 뿐이다. 지금도 나와 같은 많은 아이들을 매일 마주친다. 그 아이들이 커서 다시 누군가의 부모나 선생님이 된다.


나는 아이들과 이 재미있는 세상을 항해할 배를 함께 만들고싶다. 이야기를 나눠 본 다른 부모님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 한 켠에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느낀다. 하지만 우린 모두 연약한 존재들이고 배를 만들어 본 경험도 없어 파도처럼 밀려와 나를 집어삼키는 불안에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 서로를 적당히 붙든 채 망망대해에서 겨우 자맥질 중이다. 사활이 걸린 문제라 당장은 발버둥치는 한 뼘의 깊은 바다가 온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보일 때, 과연 그 배를 어떻게 만들까? 배에 대한 전문지식이나 일감을 나눠주는 작업보다 먼저 우리에게 필요한 마음은 아마 저 끝없이 넓은 바다에 대한 동경일 것이다. 오늘도 힘을 뺀 채 몸을 띄우는 연습을 하며 수평선 너머의 세상을 궁금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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