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잊혀질 권리

퇴로는 없다

by 해우소

설 차례상을 준비하러 가는 길, 라디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고인이 된 신해철이었다. 그는 특유의 나지막한 목소리로 영어교육 앱 광고를 하고 있었다. 올해가 신해철 10주기였고, 나도 그의 음악을 즐겨 듣던 세대이기에 문득 누가 그의 목소리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과연 그는 사후 자신의 흔적이 이런 식으로 활용(?)되는 것에 동의했을까? 내가 죽어도 누군가 나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끊임없이 살려내 생각지도 못한 원치 않는 일을 하도록 하면 어떤 기분일까? 지금은 단지 음성이나 이미지, 영상 콘텐츠겠지만 가까운 미래에 기술이 고도로 발전해서 실제로 누군가 이제 좀 전원을 끈 채 쉬고싶은 나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자꾸만 리부팅한다면?


그런 날은 곧 현실이 될 것이다. 여러가지 규제로 기술의 부작용을 피해갈 수 있을까? 우리가 상호존중의 의미와 가치를 이해한다면 그런 제약들이 필요없는 날도 올까? 누군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나 해서는 안 될 일에 대해 명문화하지 않아도 나는 스스로 지켜야 할 적당한 선을 알고있나? 나에게는 어떤 기준이 있나? 무심코 라디오 광고를 듣다가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작별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