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우소 Oct 23. 2023

예술이야

퇴로는 없다

박서보 화백이 세상을 떠났다. 노화백은 세련된 색감과 정제된 질감, 도닦는 듯 한 반복작업으로 몸과 마음을 맑게 거르고싶다는 수행자적 소망을 표현한 그림들을 남겼다.


의도적으로 뭔가를 느끼고 배우기 위해 들리게되는 박물관과 갤러리에 걸린 작품도 좋지만 나는 일상 속에서 우연히 작품을 발견했을 때도 큰 즐거움을 느낀다. 몇 달 전 유퀴즈에서 본 택시기사 명업식 아저씨가 그렇다. 수 천 명의 승객을 실어나르며 그들에게 수첩을 쥐어주고는 뒷좌석에서 목적지에 다다르길 기다리며 쓴 글들을 모아 ‘길 위에서 쓴 편지’로 완성하신 분이다. 앞서 탔던 사람들이 남긴 글을 훑어보며 다음 사람들이 공감하며 웃고 울다 답글을 쓰고 자신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나누고 그렇게 편지로 서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연결되어 소통하는 경험을 했다. 내가 택시기사였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손님태워 돈받는 의미없는 일의 반복이라 생각하며 지친 몸을 이끌고 권태로운 하루를 시작했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이분의 에피소드를 보며 전위예술가 오노 요코의 체험 작품 ‘채색의 바다’가 떠올랐다. 작가가 제공하는 물감과 붓으로 관객이 참여해 자신이 쓰고싶은 희망의 메세지를 더해 함께 만들어가는 작품이다. 자신의 몸짓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는 점에서 명업식 아저씨는 예술가다.


곁을 둘러보니 일상의 예술가들이 곳곳에 있다. 어쩌면 모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각자 살아가는 이유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 의미를 되새겨주는 무언가를 관객일지도 모를 타인들에게 매일 보여주고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 테면 내가 오늘 아침 아이 등원길에 본 가을 낙엽을 쉴새없이 갈퀴로 쓸어모아 자루에 담는 조경 아저씨, 집하장 쓰레기를 끊임없이 실어나르는 미화원 아저씨도 각자의 몸짓을 통해 그걸 지켜보는 나에게 작은 울림을 준다. 나는 요즘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해초처럼 이리저리 쓸려다니며 그때그때 주어진 일을 한다. 울면 어르고 달래고 흘리거나 쏟으면 쓸고 닦고 밥짓고 빨래하고 설거지와 다림질을 한다.



동네 미화원 아저씨는 매일 쓰레기 냄새를 맡으며 어떤 마음으로 틈틈이 이 그림을 그리셨을까? 분리수거하러 왔다가 생각지 못한 여유와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 그분의 멋진 작품 덕분에 나도 모르게 웃을 수 있었다. 입장권도 없이 누구나 들러 감상할 수 있는 귀한 전시를 열어준 미화원 아저씨는 내가 만난 예술가다.

작가의 이전글 개 대신 애를 키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