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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우소 Nov 22. 2023

여우와 두루미

여우가 두루미를 새 친구로 사귀었어요. 한껏 흥이 오른 여우는 같이 모인 동물들에게 "내가 맛있는 저녁을 대접하고 싶어."라고 하면서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어요. 여우는 식탁 앞에 앉은 두루미에게 납작한 접시에 담긴 수프를 내밀었습니다. 두루미는 부리가 길어 수프를 전혀 맛 볼 수 없었지만 여우, 늑대, 개와 너구리는 접시의 수프를 바로 옆에서 싹싹 맛있게 핥아먹었어요.


두루미는 미처 자신을 배려하지 못한 여우에게 실망했어요. "내 부리가 이렇게 긴데 그런 접시에 담긴 음식을 도대체 어떻게 먹으라는거야? 아무 생각이 없는 여우 녀석, 좀 뺀질거리긴 하지만 일부러 그런건 아니었을거야. 안 지도 얼마 안 됐는데 흔 븐믄 츰즈...내 오해일지도 몰라."
 
그렇게 집에 돌아와 씩씩대며 둘러보니 자신에게도 평생 쓸 일이라곤 없을 납작한 접시 따위 보이지 않았지요. 다음 날 두루미는 여우에게 "어제는 대접을 잘 해줘서 고마워. 이번엔 내가 초대할게."라고 말하면서 여우를 집으로 불렀어요. 두루미는 여우에게 평소 즐겨 쓰는 목이 기다란 병에 담긴 수프를 내밀었습니다. 여우는 주둥이가 짧아 자신은 이 수프를 먹을 수 없다고 얘기했고 두루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새로 산 납작한 접시에 여우를 위한 스프를 따라주었어요. 그러자 여우는 아차 싶었지요.


“너랑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새 접시를 장만했어. 그러니 또 와!"


그렇게 여우와 두루미의 집에는 자신들이 안 쓰는 목이 기다란 병과 납작한 접시가 하나씩 생겼답니다.


©Eric Christen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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