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일과와 저녁 미팅 사이로 3시간 정도 여유 있는 시간이 생겼다. 마침 다음 일정이 종로에 있었고, 그간 계속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못하였던 DDP 그린캔버스 전시를 방문해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마음이 변하기 전에 빠르게 업무회신들을 남기고 가방에 노트북을 챙겨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지난 대학원 학기 중 친환경디자인과 관련된 논문을 쓰기로 마음먹고 준비하던 찰나, 이 분야에서는 정말 유명하신 교수님이 계시고 DDP에서 관련주제로 전시를 하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렇기에 논문에 대한 여러 인터뷰도 요청드리고 싶었고 친환경디자인 주제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쭤보려는 마음도 가득한 상태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 들어섰다.
그렇게 친환경디자인 분야에서 유명하신 국민대 윤호섭 교수님을 처음 뵈었다.
계신 공간에는 오래전부터 지금껏 작업하신 많은 작품들, 사람의 깊이는 외적요소로 판단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증명해 보이는 많은 작업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를 관람하면서 오늘 인터뷰를 하겠다는 그런 의지와 생각은 모두 접었다. 나 스스로가 분야에 뎁스가 너무 부족함을 많이 느껴서였을까, 교수님을 뵙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원래 찾아뵌 목적이 있었지만 오늘 이야기드리긴 너무 부족한 점이 많아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여 다시 찾아뵙겠다 이야기드렸다.
그럴싸한 모습이면 누구나 좋아해 줄 거라 생각했던 단순한 이념은 들고 오기 어려운 만남이었다. 나 스스로가 허영에 가득 찬 인생임을 알기에 말 한마디가 더해질수록 허점만 더 드러나지 않을까 내심 걱정되었다. 생각의 과도기인 만큼 여태껏 살아왔던 인생이 치열하였든, 어떻든지 간에 모든 핑계를 뒤로하고 스스로에 대해서 새롭게 정의를 내리고 변화를 추구하기에 좋은 시기이다.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진실된 깊이가 삶에 녹아들기를 늘 바라고 또 바란다. 만남은 또 한 번 이를 강조하게 해 주었다.
떠나기 전 교수님께서 명함을 주셨는데, DDP에서 만들어준 명함은 자기와 맞지 않다며 직접 성함과 연락처를 카드에 적어서 주셨다. 지금껏 수백 장 받아본 명함 중 제일 독특한 명함이지 않을까 싶었다.
겉멋이 가득 찬 내 명함은 교수님이 직접 써서 주신 명함보다 임팩트가 없어 보였다. 어쩌면 바쁜 일상이 최고라 생각하고 앞만 보고 달리는 내게 그럴싸한 외줄 타기를 하지만 마땅히 임팩트가 없는 것은 사실이기에 이런 나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내면의 힘보다 외면의 그럴싸함을 더 믿고 살아왔기에 서서히 부실공사의 흔적들이 들어서는 나이 29살이다. 사람이 조금 알차보였으면 하는 간절함이 늘 마음속 한편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인가 이런 자리는 역량과 갖춤에 늘 부족함이 드러나서 더욱 스스로가 초라해지지 않나 싶다.
스스로를 빛내는 가치에 대해서 새롭게 정의해야 할 시기인 것 같다.
'있어 보이는 나'에서 '있는 나'로의 변화가 필요한 시기임을 더욱 느꼈다. 무엇이든 정말 진심으로 해야 할 시기이기에 더욱 추구하는 가치를 스스로가 잘 알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