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셋이 모이면 위스키를 만든다, 프리랜드 스피릿
위스키는 남자들이 즐기는 독한 술이라는 고정관념, 양조업계는 남자들의 세계라며 선을 긋는 사람들의 편견을 떨쳐내고 여자들끼리 모여 위풍당당하게 위스키와 진을 만들고 있는 포틀랜드의 프리랜드 스피리트.
“주류 업계, 특히 버번 업계에서 여성을 찾아보기 쉽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좋은 술을 만들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 큰 걱정을 하지는 않았어요. 게다가 포틀랜드와 오레건의 지역 커뮤니티는 모두 저희의 의지를 크게 환영하고 든든하게 서포트해주었죠. 포틀랜드는 편견을 바꾸고자 하는 노력을 오히려 크게 응원하는 곳이기도 하니까요.”
프리랜드라는 이름은 이 곳을 창업한 질 켈러(Jill Kuehler)의 할머니 이름으로부터 왔다.
“할머니는 단 한방울도 술을 마시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할머니는 들판에서 수확할 수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해 알려주셨죠.”
질은 할머니에게서 배운 것과 자신의 교육학 학위를 접목하여, 일반인들에게 도시형 농업(Urban farming)을 교육하는 비영리단체 Zenger Farm을 운영하는 최고 책임자로 7년간 일했다. 이곳에서 지속가능한 푸드시스템, 환경적 영향과 커뮤니티 발전을 고민하던 그녀는 마침내 오레건의 아름다운 자연과 훌륭한 농장들이 제공하는 로컬 푸드 시스템을 이용해 좋은 버번을 만들어보겠다는 오랜 꿈을 실현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오레건에서 100년 동안 가족 대대로 내려온 농장 Carman Ranch를 운영하던 친구가 위스키의 원료인 호밀을 환경친화적으로 직접 수확하기로 하자 이 계획은 보다 구체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그녀가 생화학을 전공한 후 스코틀랜드에서 양조기술로 석사 학위까지 받은 디스틸러 몰리(Molly Troupe)를 만나면서 꿈은 보다 선명해졌다. 포틀랜드에 드디어 양조장을 오픈해 버번과 진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의 친구이자 소믈리에인 제스(Jesse)까지 세일즈 담당으로 끌어들여, 완전히 여성으로 구성된 디스틸러리, 프리랜드 스피리트의 큰 그림을 채워넣었다.
2017년 마침내 프리랜드 스피리트는 몰리의 과학적이고 세심한 연구와 실험으로 완성한 진(GIN) ‘프리랜드 스피릿 진’ 을 론칭한다. “오레건의 훌륭한 땅, 환경친화적인 농장들에서 직접 길러낸 허브와 식물 등의 재료를 독특하게 블렌딩해 한 번에 아주 소량만을 증류해냅니다. ” 그리고 이어 그들의 숙원이었던 첫번째 위스키 ‘프리랜드 버번(Freeland Bourbon)’이 3년간의 숙성 과정을 거쳐 2018년 11월 첫 선을 보였고 단숨에 오레건 내 인기 디스틸러리가 됐다.
“저희 버번은 오레건 Elk Cove 와이너리에서 사용한 피노 누아 오크 통에서 숙성을 시키고 있어요. 그리고 또 저희가 사용한 버번 오크 통은 포틀랜드의 맥주 브루어리에서 맥주 숙성 용도로 사용되고요.” 프리랜드 스피리트는 포틀랜드와 오레건 지역 푸드 커뮤니티의 중요성을 아주 잘 이해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대표적인 곳이기도 하다. 그들은 자신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농장, 와이너리는 물론 심지어 제분소 같은 파트너의 히스토리와 비하인드 스토리조차 리큐르 한방울 한방울을 만들어 내기 위해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가 있는지 전달한다.
고작 몇년 남짓이지만, 프리랜드 스피리트가 개척해 낸 이 새로운 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보면, 우리가 갈망하는 ‘지속가능성'이란 결국 ‘관계’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남성들이 점유하고 있던 위스키 업계를 파고들어 여성들의 관계망을 확장시키며 편견의 공고한 성을 무너뜨리고, 로컬 커뮤니티와의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상생의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것. 그렇게 프리랜드 스피리트가 만들어낸 리큐르에는 다양하게 펼쳐지는 보태니컬한 향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들이 숨어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좋은 맛으로 숙성한다는 위스키가 10년 후, 20년 후에는 어떤 스토리와 함께 숙성하게 될 지 기대가 되는 것이다.
<에스로우S'low> 매거진을 위해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