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줍은 포틀랜드 맘 Apr 23. 2020

포틀랜드의 특별한 면도기

 편리 대신 경험을 선사하는 Portland Razor Company


포틀랜드를 미국 전역을 넘어 글로벌한 도시로 만든 TV쇼 <포틀랜디아>를 보면, 포틀랜드 사람들은 90년대 스타일을 영원히 간직하려 한다는 코믹 뮤직비디오가 나온다. 과장이 섞여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이 곳 포틀랜드에서는 여전히 비디오 혹은 DVD를 판매하거나 대여하는 숍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니 여전히 그 수요가 있다는 것이고, 자동차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차들이 털털 소리를 내며 달리는 것도 흔하게 볼 수 있으니, 과거에 멈춰있는 도시라는 말이 꼭 농담은 아니다.

이 뮤직비디오 흥행에 힘입어 나온 제 2탄은 심지어 1990년대가 아닌 1890년대를 재현하는 포틀랜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피클을 만들고, 술을 직접 양조하며, 직접 물레를 돌려 옷감을 직조했던 시대. 지금은 포틀랜드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크래프트맨십을 다시 재조명하고 있지만, 그 에피소드가 방영됐던  7-8년 전만 해도 그것이 어떤 도시의 주요 트렌드라는 것을 상상하기 쉽지 않았다. 그 뮤직비디오 대사 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그러니까, 집에서 직접 헤어컷을 하고, 스트레이트 면도칼로 면도를 하던 시절 말이야.” 

그리고 그 유명한 포틀랜디아의 뮤직비디오에까지 등장했던 스트레이트 면도칼을 직접 달구고 두드려 만들어내는 젊은 장인 세 사람, 스콧, 헌터, 알렉스를 만났다. 스스로를 레이저스미스(razorsmith), 즉 면도칼 대장장이로 부르고 있는데다 회사명에 ‘포틀랜드'라는 도시명을 대담하게 써붙이다니, 스테레오타입으로 정형화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포틀랜드스럽다'는 말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포틀랜드라는 도시만큼이나 수공예, 크래프트 장인을 받아들이고 서포트하는 지역이 많지 않으니까요. 특히 포틀랜드에서 일어난 ‘메이커 무브먼트’가 저희 셋 모두를 이곳으로 이주하게 한 가장 큰 요인이었어요. 그 크래프트맨십 문화의 한 가운데서 일하고 싶었고, 포틀랜드라는 브랜드가 가진 힘을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에요. 크래프트맨십,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 같은 것들을 포틀랜드 레이저 컴퍼니라는 이름 안에 담아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하지만 실제로 일회용 면도기나 카트리지 면도기의 사용을 줄이고, 평생을 쓸 수 있는 견고하고 지속가능한 스트레이트 면도기를 사용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편리하지 않다'는 편견, 실제로 포틀랜드 레이저 컴퍼니가 넘어야 할 큰 장벽이기도 하다. “사실, 일회용이나 카트리지는  ‘편리' 하나를 위해 지속적으로 발전해 온 것이기 때문에 그에 비하면 스트레이트 면도기는 가장 편리한 옵션은 아니죠. 이렇게 설명하면, 그대로 되돌아나가는 홈셰이빙 손님들과 이발사분들이 꽤 많아요. 하지만 셰이빙을 하러 바버숍을 찾는 사람들은 편리함을 위해 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경험과 서비스를 상상하고 가는 거잖아요. 스트레이트 면도기는 최상급의 면도칼을 날카롭게 유지하고 관리하는데서 오는 즐거움, 잘 다듬어진 메탈 면도기로 셰이빙하면서 느낄 수 있는 유일무이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거든요.”

포틀랜드 레이저 컴퍼니는 이 ‘경험’을 전달하기 위해, 지난 몇년 간 꽤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실제로 스트레이트 레이저를 바버숍에서 쓰기 어려운 이유 가운데 하나가 미 정부에서 제시하는 ‘위생관리'를 적법하게 지키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포틀랜드 레이저 컴퍼니는 이 레벨을 맞추고 있는 거의 유일한 제조사로, 이발사와 홈셰이빙 손님들을 위해 스트레이트 면도기의 사용법,  위생관리 및 유지법을 끊임없이 업데이트하며 사람들에게 면도기의 장점과 매력을 설파 중이다. “저희가 셰이빙 워크숍을 한다고 하니까, 몇몇 분들이 직접 셰이빙을 할 수 있는 곳인 줄 착각하고 오셨더라고요. 하긴, 아예 바버숍을 회사 내에 둔다면 우리의 제품을 직접 시연해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현재는 우리의 면도칼을 직접 사용하는 사라가 저희와 파트너를 맺고 운영하고 있는 중이죠.” “셰이빙이라고 하면 수염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여성들도 셰이빙을 많이 하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주로 ‘다리털 제모' 시연을 합니다. ‘수염'이라고 적시하는 걸 피하면서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그건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들에게도 저희 면도칼을 적극적으로 권해요. ”

포틀랜드 레이저 컴퍼니는 지역 사회가 가진 독특한 문화와 서포트를 통해 시작했지만 오레건 내의 자원을 이용하고 이를 되갚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로컬운동이란, 우리가 내는 이윤이 ‘어떻게’ 전세계를 돌고 돌아 로컬 커뮤니티로 돌아오는지가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윤리적으로 지속가능한 방법을 통해 낸 이윤이 다시 나의 지역으로 되돌아와 지역경제를 위해 다시 쓰이는 것.”

그렇게 포틀랜드 면도기가 오스트레일리아와 한국, 영국의 누군가에게 경험과 윤리를 선사한 후 돈으로 치환되어 포틀랜드로 되돌아와 크래프트 업계에 안정적인 경제를 선사한다는 간단한 경제법칙. 로컬 제품을 만들고, 로컬 회사를 지원하고, 사용하는 건 그리 어렵고 대단한 일이 아니다.


<에스로우S'low> 매거진을 위해 썼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포틀랜드다운 선물가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