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가게는 대부분 재고때문에 망한다고 하는데 우리 가게엔 재고가 없다. 그만큼 불티나게 쑥쑥 잘 팔린다는 얘기, 면 좋겠지만 원체 쟁여놓는 걸 질색하는 쥔장 성격탓이 크다. 일정기간 판매되지 않은 상품, 철 지난 상품은 바로 세일 매대로 직행,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균일가로 내놓는데 원가도 안되는 가격에 팔면 아깝지 않느냐고, 두었다가 다음 시즌에 내놓지 그러냐는 조언을 종종 듣지만 가차없다.
다음 시즌에는 다음 시즌에 어울리는 상품을 비치해야 한다, 는 게 옷장사 10년차 지침인 것이다. 그런데, 저렴히 내놓아도 좀처럼 주인을 못 만나는 아이들이 있다. 상품에 무슨 하자가 있다거나 영 밉게 생긴 아이도 아닌데 이상하게 주인을 못 만나는 아이들. 그 아이들을 볼때면 부모 잃은 미아를 보는 것 처럼 가슴이 아프다.
그래서 시작한 게 기부였다. 처음엔 교회 바자회에 전달하다가 작년부터는 중구청 산하 모 복지센터에 정기 기부를 하고 있는데 기부된 옷들이 바자회 현장에서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정말 그렇다. 일도 중요하고 수입도 중요하지만 나에게는 그이상으로 중요한 게 한가지 더 있다. 내가 데려온 아이들이 좋은 주인을 만나서 이쁨받고 사랑받는 것.
그런데 오늘 매대에 내놓았던 청치마 한 장이 없어졌다. 원래 옷을 매장 바깥에 내놓으면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일이 잦다고 하니 친한 동생이 어디서 CCTV 모조품을 가져와 가게 여기저기 붙혀주었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처음엔 상품이 없어지면 무지 화가 났다. 대체 얼마나 몰지각하면 남의 물건을 훔칠 수가 있지? 얼마나 뻔뻔하고 얼마나 막살면 그렇게 되는거야?
그런데 오늘은 청치마가 없어진 걸 알고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사이즈가 잘 맞아야할텐데.." 였다. 나도 참 평범한 사람은 아니지싶다. 장사 10년 하면서 볼 꼴 못볼 꼴 다 본 끝에 해탈이라도 한 것인지.
by 혜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