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돌아온 딸은 정체불명의 초록색 끈다발을 두 손 위에 올려 놓고. 여차하면 손에서 떨어질까 흐트러질까 조심조심 집 안으로 들어 왔습니다.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작품이랍니다. 과학 시간에 만든거라네요. 있는 그대로의 오이 모습을 최대한 섬세하게 표현 했답니다.
작품? 그게? 그냥 실뭉치 같은데? 라고 하니까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한 시간 내내 정성들여 만들었으니 함부로 폄하하지 말랍니다. 책상위에 곱게 내려놓더니 자신이 아끼는 작품이니까 실수로라도 훼손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 달라 당부까지 합니다.
딱 보니 수업 시간 내내 헛짓 하다가 막판에 부랴부랴 만들었지 싶은데. 그걸 본 선생님은 얼마나 황당하고 난처 하셨을지 짐작도 되는데. 본인이 저렇게 소중하다는데 함부로 무시할 수도 없고. 속는 척 하고 끈을, 오이를, 아니 작품을 책상위에 고이 전시해두었습니다.
그런데 밖에 나가 친구랑 놀고 온 딸은 아무렇지도 않게 끈타래를 집어 들더니 마구 풀어서 줄넘기도 했다가 둘둘 말아 공처럼 만들어 조물조물 만지고 놀더니. 그마저도 실증이 났는지 방바닥에 던져 놓고는 티비를 보면서 과자를 먹습니다.
방금전까지 고귀한 작품이었던 오이가, 아니 실뭉치가 초라하게 땅바닥에 패댕이 쳐진 걸 보니 어째서 내 마음이 씁쓸한건지. 끈을 주어다가 물에 헹구고 있었는데, 딸이 쓰윽 보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내 오이 씻는거야? 저녁때 오이 반찬 해줄려고?"
by 혜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