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가게는 없다.

by 혜윰

요즘 부쩍 할머니 손님이 늘었다. 옆코너 마담룩 가게가 문을 닫으면서 갈 곳 잃은 분들이 우리가게로 넘어 오시는 것 같다. 반가워야 하는데 솔직히 당황스럽다. 할머니들이 좋아할만한 스타일도 없거니와, 할머니들이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도 잘 모르기 때문에.


최대한 사이즈 넉넉하고 스타일 무난한 걸 골라서 보여드리는데, 그러면 열에 아홉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런 옷 많아요. 집에 옷 꽉 찼았어요. 정말 많아요. 그럼 묻고 싶어 진다. 옷이 그렇게 많으신데 옷가게는 왜 오셨어요?


그런데 유심히 살펴보니 할머니께서 옷 하나하나 들춰보시며 흐뭇하게 웃고 계신다. 아이고 예쁘다. 아이고 곱다. 젊은 사람들이 입으면 얼마나 예쁠까. 옷에 나이가 어딨어요? 아직도 젊고 고우신걸요. 안 사도 되니까 한 번 입어보고 가세요. 그러면 망측하다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할머님 얼굴에 함박꽃이 피어난다.


그렇게 할머니 손님이 한 분 두 분 늘고 있다. 어떤분들은 아예 옷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나만 한참을 바라보다가 가시기도 한다. 아이고 이쁘다. 젋으니까 이뻐. 머쓱해서 씨익 웃으면 함께 헤 하고 웃어주신다. 그리고는 가방속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신다.


떡 한조각, 빵 한덩이, 참외 한개. 이거 먹고 힘내서 많이 팔아요. 다음에는 내가 입을만한 것도 좀 가져다주고. 그럼 내가 꼭 살게. 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서 구부정 구부정 가게를 걸어 나가신다. 동정하면 안될텐데 그 모습이 왜그렇게 서글픈지, 신호등 앞까지 손잡고 같이 가 드린다.


그러고보니 동네에 할머니들이 많다. 거리에도 많고, 아파트에도 많고, 지하철에도 많다. 생각해보니 우리 엄마도 할머니고. 우리 이모도 할머니고. 언제까지나 젊고 예쁠줄 알았던 우리 막내 고모도 할머니다. 몇년후면 우리 언니도 할머니가 될 것이고. 그후에는 나도 할머니가 되겠지.


그렇게 세상에는 할머니가 많은데. 할머니가 계속계속 많아지는데. 우리가게에는 할머니를 위한 옷이 왜 없을까. 문득 자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음번 시장에 가면 할머님들이 좋아하실만한 예쁘고 시원한 인견 꽃무늬 옷들 좀 많이 가져와야겠다.



by 혜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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