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방법은... 글쎄요
동네병원의 산부인과 선생님은 버석한 손으로 얼굴을 쓸면서 말했다. "아... 이런 수치는 처음 보긴 하는데... 정밀한 검사가 필요할 것 같아요. 큰 병원으로 가보세요." 산부인과라는 이름을 달고, 보톡스나 비만 치료 등을 더 중점으로 하던 병원이었다. 이 병원이 돌팔이일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의사의 관상도 영 아니었다. 받아들일 수 없을 땐 자꾸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낸다.
그러나 피검사 수치가 거짓말을 할 수 있나. 난소 상태를 볼 때 확인하는 두 가지 호르몬이 있다. FSH와 AMH. 가임기 여성의 FSH는 보통 10 이하이며 폐경에 가까우면 40 이상으로 올라간다. 내 수치는 120이었다. AMH는 난자의 남은 양을 보여주는 호르몬이다. 평균은 2에서 4 정도. 0.1 이하이면 난소 예비력이 거의 남지 않은 상태로 본다. 내 수치는 0.02였다.
숫자만으로도 충분했다. 난자는 거의 남아 있지 않고, 뇌는 난소에게 계속 “난자를 키워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난소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있는 상태. "조기폐경", 의학 용어로 "조기난소부전". 이 진단은 한 달 간격으로 두 번의 피검사를 통해 내려진다. 호르몬 수치는 여러 요인에 영향을 받아 일시적으로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에이, 아니겠지. 나는 또 호르몬 수치가 흔들릴 만한 다른 이유들을 수십 개 찾아낸다. 스트레스 때문일 수도 있고, 일시적인 호르몬 이상일 수도 있고, 검사 시기의 문제일 수도 있다. 세상에는 그럴듯한 설명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마음 한쪽의 직감은 자꾸 불길한 쪽을 향했다. 나를 설득해 줄 사람, 내가 이런 이상한 가능성들을 끝없이 붙잡지 않게 해 줄 사람. 혹은 정말로 문제가 맞다면, 치료 방법을 알려줄 사람. 최고의 권위자가 필요했다. 서울대학교 병원 산부인과에 진료를 잡았다.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처음부터 다시 검사를 진행했다. 수치는 똑같았다. 한 달 뒤 다시 피를 뽑았다. AMH 수치가 0.02에서 0.03으로 올라 있었다. 나에겐 0.01도 희망적이었다. 50%가 오른 수치잖아. 선생님, 좋아지고 있는 게 아닌가요?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0.1 이하의 수치에서는 의미 있는 변화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유전자 검사를 권했다. 원인을 알 수도 있다고 했다.
원인을 알면 치료할 수 있나요? 아니요. 난소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라서, 그 수를 늘릴 방법은 없다고 했다. 내분비내과로도 진료를 돌았다. 골밀도 검사, 자가면역질환 검사, 유전자 검사까지 했다. 결과는 모두 정상. 결국 진단명은 이렇게 적혔다.
“원인 불명(특발성) 조기난소부전.”
나는 다시 물었다. 선생님,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에스트로겐이 평균보다 약 25년 일찍 줄어든 상태라 골다공증 위험이 높다고 했다. 비타민 D를 꾸준히 복용하고 호르몬 치료를 병행하는 것을 권했다. 다만 호르몬을 장기간 복용하면 유방암 위험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에 6개월마다 검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마지막 질문을 했다. 그럼 임신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의사는 차분하게 말했다. “검사 결과를 보면 AMH가 0.02로 난소 예비력이 거의 없는 상태입니다. 이런 경우 자연 임신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조기 난소부전에서는 드물게 배란이 다시 생기기도 하지만 확률이 없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듣는 동안 현실감이 없었다. 스무 해 넘게 나는 무엇이든 노력으로 얻을 수 있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노력으로도 안 되는 일이 있을까. 뭐든 죽을듯이 하면 된다고 했는데. 여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옆에 있던 엄마는 나보다 한 발 앞서 눈물을 흘렸다. 가슴이 꽉 막힌 것 같았다. 어디서부터 생각해야 할지, 무엇부터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엄마를 위로하는 일부터 했다. 엄마 괜찮아. 엄마의 어깨를 토닥였다. 뭐가 괜찮은지도 모르면서.
무엇보다 건강이 중요하다는 건 알았다. 그러나 그 순간 내 귀에 더 크게 들린 건, 아기를 낳을 수 없다는 말이었다. 가능성이 낮은 것도 아니고, 아예 없는 상태라니. 그건 어떤 상태일까. 아직 결혼을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이제 겨우 입사해 인생을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나중에 결혼할 사람이 생기면 이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꺼내야 할까.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서울대학교 병원에서는 이런 케이스를 많이 보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난임 치료로 유명한 병원을 한 번 더 가보기로 했다. 희망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건 희망을 하나씩 지워 가는 여정이었다.
두 번째로 찾아간 곳은 미래와희망 난임클리닉이었다.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받은 검사 결과를 들고 진료실에 들어갔다. 인자한 미소를 가진 선생님이 결과지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이런 수치는 굉장히 드문데, 전에 봤던 환자 중에 자궁에 낭종이 있어서 호르몬 수치가 이상하게 나온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그 낭종 하나만 치료하면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환자분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며 한번 살펴보자고 했다. 그 순간 마음속에서 희망의 팡파레가 울렸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구나. 제발 그거면 좋겠다. 제발 치료할 수 있는 것이면 좋겠다. 질 초음파를 받으러 가면서 나는 짐짓 희망으로 기분이 좋아져서 선생님에게 말했다. 저 결혼해서 아기 낳고 살고 싶어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진료 의자에 누웠다. 사람들은 그 의자를 굴욕의자라고 부르지만, 나는 그 의자에 누울 때마다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간절한 소망이 되어있던 순간. 선생님은 초음파 화면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음… 아… 음…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난소가 아주 작어져있고, 난포가 전혀 보이질 않네요. 가슴 위에 모았던 두 손이 돌덩이처럼 느껴졌다. 질 초음파가 끝나고 나는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선생님은 다시 그 인자한 미소로 말했다. 아기는 없으면 뭐 어때요. 안 낳고도 잘 사는 사람 많아요. 사랑해서 결혼하는 거지, 아기를 낳으려고 결혼하는 건 아니잖아요. 환자분만의 방식으로도 살 수 있어요. 맞는 말이었다.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위로였다. 실제로 그 말은 오래 오래 내 가슴에 남았다. 남자친구와 결혼하고 싶을 때마다, 그가 내가 아기를 못낳는다는 사실을 알고 이별을 고하는 장면을 상상할 때마다 그 선생님의 말을 떠올렸다. 사랑해서 결혼하는거지, 아기를 위해서 결혼하는건 아니라는 말.
그러나 그 말의 뜻은 분명했다. 나는 아기를 가질 수 없다는 것.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의사들이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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