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조기폐경 (2) - 자매가 있나요? 난자공여

난자가 있어야 시험관을 하지요. 가능성이란 없는 조기 폐경 수치

by 해연

나는 늘 해결하고만 살아왔다. 누군가와 싸우면 끝까지 파고들어 이유를 찾아냈다. 내가 어떤게 변해야하는지, 이 싸움은 무엇이 문제였는지 알아내야만했다. 시험을 망치면 꼭 오답노트를 적었다. 틀린 문제 옆에는 포스트잇을 붙였다. 실수한 문제라도 최소 3번을 더 풀었다. 내가 좋아했던 수학 선생님은 오답은 기회라고 했다. 틀리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 있다고. 오답은 그걸 알게 한다고. 파고 파다보면 늘 답이 있었다.


그 마음은 무럭무럭 자랐다. 나를 키운 건 8할이 자존심이었다. 달리기 시합이 있는 날이면 새벽에 등교해서 빈 운동장을 달렸고, 공부하다 잠든 나를 엄마가 안 깨우면 왜 그냥 뒀냐고 소리 지르며 울었다. 평생을 치열했고, 늘 한만큼의 결과들이 주어졌다. 성형과 화장을 더하면 예쁠 수 있고, 운동을 하면 좋은 몸매도 가질 수 있지 않나? 뭐든 쉽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거라고 믿었다. 졸업한 고등학교에서 후배들의 멘토가 되어달라고 했다. 어떻게 서울대에 입학했는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날 기다리는 후배들에게 교단에 서서 당당하게 말했다. 노력하면 뭐든 이룰 수 있다고. 기세등등한 젊은 날이었다.


그런 내가 조기폐경인 걸 알게 되었을 때는 어떻게 해야해야 했을까. 인터넷을 쥐잡듯이 뒤지고, 우리나라 최고의 의사들을 찾아가도 방법은 없다고 했다. 나는 늘 도도하고 완벽한 인간 이어야 했는데, 부족한 게 있다면 노력으로 메꿀 수 있어야 했는데, 방법이 없는 일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내 오만한 생각들은 겨우 23년간 얼기설기 엮인 우연과 기적이 만들어 낸 산물이었을 뿐이라는 걸 조금씩 알게됐다. 세상에는 해결하지 못하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왜 미처 몰랐을까. 내게 주어진 삶이 딱 그정도, 내 몫만 하면 되는 시련이었다는 것을.


그간 타인의 아픔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건 명백히 나와 다른 세상이라 생각하고 안도하는 마음이었던 건 아닐까. 그제야 처음으로 노력으로 안 되는 상황 속 사람들을 생각했다. 난 고작 조기폐경이었지만, 가난부터 장애까지 저마다 홀로 품고 있을 크고 작은 하자들을 떠올렸다. 지하철 맞은편에 앉은 사람들을 보면 옷 안에 감춘 멍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여전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몰랐다. 나는 계속 해결을 갈구했다. 충무로에 있는 난임으로 유명한 병원을 추천받았다. 그곳에서 제일 유명한 교수님을 찾아갔다. 초진을 잡는 데만 세 달이 넘게 걸렸다. 오전 8시 첫 진료를 위해 오전 7시에 병원에 도착했다. 대기실에는 이미 사람이 가득했다.

중간중간 교수님이 시험관 시술에 들어가면 그 시간만큼 진료가 그대로 밀렸다. 8시 예약이었지만 진료실에 들어간 건 10시가 넘어서였다. 친절한 여자 선생님이었다.


“어떤 일로 오셨어요?”

다정한 말투를 듣는 순간 처음부터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 이야기를 듣고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직 나이도 어리고, 결혼도 안 하셨고… 제가 뭘 해드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우선은 호르몬 치료를 권해요. 에스트로겐이 해주는 일이 많거든요. 호르몬 약을 먹으면서 몸 상태를 살펴보는 방향으로 치료를 해봅시다. 나아지진 않을 것이고 호르몬 부족으로 인한 불편감을 완화하는 쪽으로요.“


“결혼할 사람이 있으면 바로 시험관을 하면 어떨까요?”

내 질문에 선생님은 잠시 말을 고르고 대답했다.

“시험관은 정말 힘든 일이에요. 그런데 지금 수치가 너무 낮고 확률도 낮아서… 제가 시험관을 권하는 게 조심스럽네요.” 그리고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

“혹시 자매가 있을까요?”


나는 그 질문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했다.

“자매는 없는데요.”

선생님은 난소 기능이 많이 떨어진 경우 난자 공여를 고려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자매의 난자는 유전적으로 상당 부분 일치하기 때문에 자매의 동의를 받아 시험관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정말 내가 임신을 할 수 없구나. 의사가 시험관 대신 난자 공여를 이야기할 만큼.

두 번째. 그렇게까지 해서 임신을 해야 할까. 자매의 난자를 받아 임신한 아이는, 내가 자궁만 빌려준 셈 아닌가. 그게 과연 내 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굳이 출산을 해야 할까. 입양과는 무엇이 다를까.


“자매가 없다면 난자 공여는 어떻게 하나요?” 난자의 거래는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어서 가족 외의 사람에게 대가 없이 난자를 공여받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돈이 오가면 안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자매 사이에서 이루어진다고 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가족 중 어린 여자들을 떠올렸다. 그들이 허락할까? 상상하다가 아찔해졌다. 내키는 선택지는 아니었지만, 염두에 두어야 할 가능성이었다. 내가 정말 아이 있는 삶을 원하는지. 그리고 그런 일들을 감수하면서까지 임신을 원하는지. 남들에게는 당연한 선택과 포기가, 나에게는 아주 신중한 질문이 되어버렸다.


진료를 마치고 나왔다. 시험관 시술을 준비하는 많은 부부들이 보였다. 대기실의 분위기는 오랜 대기와 대체로 희망적이지 않은 상황들로 우울했다. 그럼에도 그들이 부러워졌다. 나도 희망을 가지고 뭐든 꿈꿔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선생님이 힘든 길이지만 해볼 수 있다고 말해주셨으면 좋았을까. 그러나 안되는 걸 알면서 시작한 시험관이 10차 11차.. 길게 이어진다면 내 인생은 많이 힘들어지겠지. 그런 생각들을 하며 터덜 터덜 돌아왔다.



살짝 열린 안방 사이로 아빠와 엄마의 대화가 들렸다. 난자 공여에 대한 이야기였다. 엄마는 울먹이며 오늘 병원에서 들은 이야기를 아빠에게 전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진지하게 난자 공여에 대해 이야기했다. 알음 알음 동남아에서 난자를 공여받는다는 것이었다. 베트남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과 생김새가 비슷하니까 괜찮지 않겠냐며 아빠가 엄마를 위로하고 있었다.


아기를 못 낳는 여자로 살면 안되는걸까. 나에게 이미 인생을 살아 본 어른들이 괜찮다고 말해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괜찮다고 말해줘도 자존심이 쎈 당신들의 딸은 괜찮지 않다는 걸 알았겠지. 그걸로 내가 내 인생에 포기하는 것이 생길까봐 걱정됐겠지. 그래서 그들 나름대로 찾은 방법으로 나를 위로하고 싶었겠지. 완벽한 딸이 하자 있는 여자가 된 순간, 아빠랑 엄마도 어찌 해야할지 몰라 허둥지둥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 대화가 너무 싫어서 방으로 돌아와 이불에 얼굴을 박고 엉엉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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