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조기폐경 (4) - 의사가 못하면 한의사가 한다

조기폐경을 치료한 한의학 논문. 나도 치료 받을 수 있을까?

by 해연

내 일상은 ‘조기폐경’을 검색하는 것이었다.


틈만 나면 네이버에 검색해보고, 시험관 아기를 준비하는 카페에 상주하며 모든 글을 정독했다. 게시글에 조기 폐경, 조기 난소 부전에 대한 글은 모두 읽어서 카페 글의 제목들이 다 보라색으로 변해 있었고, 시험관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읽다 보니 관련해서는 준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간절히 원하고 실패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오래 머물수록 마음은 더 조급해지고, 점점 더 가라앉았다. 시험관 10차, 11차는 예삿일이었고, 그 과정에서 부부 관계가 무너졌다는 이야기도 흔했다. 그런데 그들 중 나보다 수치가 나쁜 사람은 없었다. 그러니 내 인생에는 그보다 더 나쁜 일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말하던 수많은 책들이 떠올랐다. 인터넷 세상에는 간절해도 안 되는 것들이 너무 많아 보였다. 그래서 나중에는 ‘성공’이라는 키워드만 골라 검색했다. 오랜 시도 끝에 임신에 성공한 사람들.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이야기라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애초에 대부분 30대 중반이기도하고, 그 나이에도 나 정도의 수치를 가진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희망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래서 조기 폐경이라고 글을 쓴 사람의 아이디를 눌러 그 사람이 쓴 다른 게시글까지 뒤졌다. 이후에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amh 수치가 낮아 우울하다고 쓰던 사람이 1~2년 뒤 임신했다는 글도 종종 보였다. 나는 그들에게 쪽지를 보내 수치와 방법을 물었다. 대부분은 답이 없었고, 답을 준 몇 명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수치가 나쁘지 않았다.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오히려 희망은 줄어들었다.




인터넷을 쥐잡듯이 뒤지던 중, 조기폐경 여성이 한방 치료를 받고 자연임신에 성공한 사례에 대한 한의학 논문을 찾게 되었다. 서양 의학이 억지로 호르몬을 투여하여, 잠시 기능을 정상화 시키는 '목적성 치료'라면, 한의학은 몸의 근본을 회복시켜 원래 상태로 되돌린다는 내용이었다. 이전에 사혈침 아저씨에게 당한 바가 있어서 의심의 벽은 높았지만, 논문의 형태로 갖추어져 있고, 제대로 된 병원이 있다는 것에 또 마음이 열렸다.


집에서 한 시간 반이나 걸리는 거리였지만, 엄마와 함께 가보기로 했다. 평일에는 갈 수 없어 주말 아침마다 그곳으로 향했다. 대로변 큰 상가에 있는 한의원이었다. 사람이 많아 보이진 않았지만, 버튼을 누르고 자동문이 열리는 순간 코끝을 감싸는 한약 냄새가 이상하게도 믿음을 줬다. 의사는 나를 눕히고 배를 만지고 맥을 짚더니 말했다. 아주 잘 왔다고. 난소 기능이 멈춰 있고, 몸이 너무 차고 순환이 안 된다고 했다. 다행이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금방 좋아질 거라고 했다. 몇 가지 약재 이름을 줄줄이 읊고는, 앞으로 양학 병원에는 가지 말라고 했다. 괜히 불안해지니까 수치도 재지 말라고 했다. 1년만 믿고 다녀보라고 했다. 엄마는 그 말을 듣고 의사의 손을 붙잡고 울었다. 처음 진단을 받았을 때와는 다른 희망의 눈물 같은 거였다. 나도 내심 마음이 놓였다.



그 이후로 매주 엄마와 한의원을 찾았다. 아침, 점심으로 한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시키는 대로 중탕을 해서, 시간을 맞춰 하루도 빠짐없이 먹었다. 주말 아침, 한의원으로 향하는 길은 늘 막혔다. 한 시간 반이 넘는 거리. 원래라면 엄마와 수다를 떨며 가는 시간이 좋았을 텐데, 그때는 그 시간이 힘들었다. 일상을 잘 살다가도 그날이 되면 가슴이 답답해졌고,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이 다시 또렷해졌다. 2주에 50만 원짜리 제일 비싼 한약이 계속 집으로 도착했고, 방문할 때마다 선생님은 같은 방식으로 맥을 짚고 같은 말을 했다. “좋아지고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한약은 비쌌고, 나는 뭐가 좋아지는지 알 수 없었다. 엄마에게 미안했다. 그런데도 그만두지 못했다. 그래도 한약은 계속 먹어보고 싶었다. 혹시 진짜로 좋아질까 봐.




그렇게 몇 번을 반복했다. 열 번이 넘게 맥을 짚고, 갈 때마다 엄마는 “좋아지고 있다”는 말에 또 울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점점 덜 믿게 되었다. 좋아지고 있다는 말은 쌓이는데, 좋아진 것은 없었다. 그때부터는 알 것 같았다. 이건 틀린 게 아니라, 끝이 없는 거구나. 그래도 한동안 더 다녔다. 가능성보다, 후회를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쩌면 나는 깨끗이 포기할 수 있게 되기를 스스로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고, 이제는 내려놓아도 된다고, 누가 대신 말해주기를 기다리면서.


한의원에 방문해야 했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준비를 하다가 불현듯 엄마에게 말했다. 이제는 안 가겠다고. 엄마도 나를 말리지 않았다. 그저 “그래, 그러자” 하고 짧게 대답했다. 그걸로 끝이었다. 그 말을 끝으로, 그렇게 1년 가까이 열심히 먹던 한약을 멈췄다. 냉장고에 몇 개 남아 있었지만, 미련 없이 버렸다.


#조기폐경 #조기난소부전 #한의원



목, 일 연재
이전 04화20대 조기폐경 (3) - 생식기에서 피를 뽑으면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