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조기폐경 (5) - 정해져버린 아이 없는 삶

이런 나를 사랑해 줄 남자가 있을까요?

by 해연

받아들여야했다. 나의 상태를. 남들보다 빠르게 폐경이 되어 일어나는 복합적인 건강 문제 뿐 아니라, 여성으로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사실까지. '아닐거야, 잘못된 진단일거야' 에서 시작해서 이것을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했다. 할 수 있는 곳엔 다 가보고, 하라는 건 다 해보며 서서히 알아갔다. 안된다는 것을.


아이 없이 사는 사람들도 많다. 나는 일을 좋아한다. 그러니 어쩌면 내가 조기폐경인 것을 몰랐더라도 30대 중반 커리어에 정점을 찍게 되는 어떤 날, 나는 자발적으로 아이 없는 삶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요즘은 난임도 많아서 시험관 시도하다가 결국 포기하는 부부도 있다. 그래, 미래의 내 남편은 애초에 아이를 원하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다. 혹은 아이 대신, 강아지처럼 함께 늙어갈 존재를 선택하자고 말할 수도 있다. 미래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인생에는 그보다 더 큰 일이 많다. 세상에는 그보다 심각한 일도 많다. 어디선가는 생사를 오가고, 어디선가는 전쟁이 벌어진다. 그럼 고작 내가 아기를 못갖는 일 따위가 뭐가 그렇게 큰 문제가 되는 것일까. 내 건강은 꾸준히 호르몬 약을 먹고, 남들보다 조금 더 건강에 신경쓰고, 운동을 꾸준히 하면 큰 일 없다는데, 죽을 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뭐가 그렇게 대수인가.


....싶다가도, 어떤 날은 한없이 서러워진다. 사실 나는 오랜 시간 꿈꿔왔다. 내가 엄마가 되는 상상. 내가 내 아이에게 끝없는 사랑을 베푸는 상상.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을 닮은 아이를 자연스럽게 떠올렸고, 그 아이와 함께 신뢰로 단단해진 가정을 그려왔다. 그 상상을 충분히 펼쳐보기도 전에, 이미 결정되어 버린 미래. 하지 않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은 전혀 다르다. 내가 선택한 삶과 누군가 선택해준 삶은 천국과 지옥만큼의 차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합리화를 하는 것이었다.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해 서러워하지 않고, 내게 주어진 것에 집중해야했다. 내게 펼쳐진 것을 긍정하려는 시도. 오히려 강제로 주어진 '아이없는 삶' 안에서 나는 묻기 시작했다. 어떤 것이 최선의 삶일지, 어떤 것이 나에게 가장 행복한 그림일지. 세계를 방방 곳곳 누비며 사는 삶. 치열하게 일하며 커리어의 정상에 오른 삶. 그런데 그 아름다운 상상이 자꾸 막히는 지점이 있었다.


그럼 내가 아이 없는 삶을 받아들이고, 그 삶에 만족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나를 사랑해줄 남자가 있을까?


애초에 아이없는 삶을 원했거나, 나를 너무 사랑해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나를 괜찮다고 말해줄 사람이 있겠냐는 말이었다. 내 상상은 그곳에서 늘 막혔다. 만약 그런 남자가 없다면? 혼자 살아가는 나를 상상하다보면 마음이 울적해졌다. 아빠도 엄마도 언젠가 내 곁을 떠나 이 세상에 홀로 남아 늙어가는 장면까지 미치다보면 내가 가진 것들에 감사하려고 노력해도 자꾸만 서러워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꾸 더 현실적인 질문으로 내려왔다. 그런 나를 사랑해줄 남자가 있을까. 그렇다면 연애에서 언제 말해야 할까. 처음부터 말해야 할까?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아직 서로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말해야할까. 처음부터 그냥 솔직하게


나는 아이를 낳을 수 없어.


라고. 그게 맞는 것 같기도 했다. 괜한 시간 낭비를 하지 않으려면, 서로의 기대가 어긋나기 전에 미리 말하는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난 겨우 스물 셋이었다. 가볍게 연애를 시작하다가 진지해지기도 하고, 진지하게 시작했다가도 쉽게 헤어지는게 그 시절의 연애인데, 어느 타이밍에 저 사실을 말해야할지. 그리고 그 장면을 상상하면 내가 사람이 아니라 조건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이름, 나이, 학벌, 능력... 그러나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하자로 인해 확 깎이는 점수.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도 전에, 먼저 판단되어야하는 항목처럼 놓여 있었다. 난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더 깊고 복합적인 사람인데...


그럼 서로를 어느 정도 알고, 감정이 생기고, 관계가 조금 더 깊어졌을 때 말해야할까? 그게 더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내가 나로 충분히 보여지고, 그 다음에야 이 사실을 꺼내는 것. 그런데 그 역시도 쉽지 않았다. 나에겐 자연스럽지만 누군가에게는 속인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걸 왜 이제 말해?


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을 상상하면 숨이 막혔다. 그 사람이 아이를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당장 끝날 수도 있다. 달라지는 눈빛, 달라지는 말투, 그리고 끝내 이어지는 이별. 그 상상만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내가 엄청 사랑하는 사람인데, 그 이유로 헤어지게 된다면, 난 또 다음 사랑을 꿈꿀 수 있을까.


누군가는 아무 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사람을 만나고, 자연스럽게 관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나는 사랑을 시작하기 전에 나를 설명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가진 결핍을 먼저 꺼내놓고, 이런 나여도 괜찮은지 확인 받아야 그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게 마음을 작게 만들었다.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사랑 앞에서 자신의 결핍을 먼저 꺼내야 하는 사람들. 그 결핍을 덮기 위해 더 많은 것을 증명하려 애쓰는 사람들. 그 결핍으로 이별하게 되더라도 대수롭지 않다고, 괜찮다고 얼마나 스스로 위로 하며 살았을까. 마치 나처럼.




조기 폐경 진단을 받았을 당시, 나는 한 사람을 만나고 있었다. 그 즈음 처음 알게 되었고, 점점 좋아하게 되었고, 여느 20대가 그러하듯 자연스럽게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런데 제대로된 진단을 받고, 치료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그에게 이 사실을 말해야했다. 시간이 지날 수록 그를 더 사랑하게 되었고, 그만큼 이 사실을 말해야하는 내 마음은 점점 타들어갔다. 그와 헤어지게 되더라도 상처받지 말아야지. 그가 나를 사랑했던 시간은 사라지는게 아니니까. 아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도 존중해야 하니까. 나는 그렇게 미리 나를 설득하고 있었다. 그와의 데이트가 있을 때마다 오늘은 말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헤어지기 전에 꼭 말해야지. 그러나 해맑게 웃으며 집 앞에 날 내려주는 그를 보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오늘은 말하지 말자. 이번 주까지는 그냥 사랑만 해야지. 다음 주에 말해야지. 다음 주에 말해야지.. 다음 주에. 다음 주에.


자꾸 말 할 시간이 밀리고 있었다.


#조기폐경 #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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