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조기폐경 (6) - 폐경 이후 달라지는 몸

그로인해 달라지는 섹스

by 해연

스물 셋에 조기 폐경 진단을 받았지만, 돌이켜보면 생리는 그보다 훨씬 전부터 멈췄을 것이다. 생리가 불규칙적이었기에 겸사 겸사 피임약 '야즈'를 복용하기 시작했던 것이 이십대 초반이었고, 약을 먹는 동안에는 매달 생리가 있었으니 의심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그 사실을 모른 채 ‘정상처럼 보이는 상태’ 안에 머물러 있었던 셈이다.




진단을 위해 약을 끊고 나니 변화가 거의 바로 느껴졌다. 첫 번째는 몸무게였다. 평생 168cm에 50kg~52kg 을 유지하던 몸이었는데, 먹는 양이나 활동량은 크게 달라진 게 없는데도 기준점이 조금씩 올라가더니 1년 사이 57~58kg가 됐다. 병원에서는 뼈, 심장, 유방 건강만을 이야기했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와닿지 않았다. (특히 나처럼 이른 나이에 폐경이 온 경우 골다공증 위험이 높고, 한번 떨어진 골밀도는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에 비타민 D 관리가 중요하다고 했다. 6개월에 한 번씩 유방 검사를 하고, 비타민 D 주사를 맞았다.) 골밀도보다, 거울 속에 비치는 내 모습이 훨씬 더 중요했다. 틈만 나면 거울을 쳐다보며 쌍커플이 더 두꺼운 게 어울릴지, 코에는 필러를 맞아보는 것이 좋을지, 여드름 흉터는 어떻게 관리해야하는지 생각하던 나이었다. 길쭉한 몸에 배꼽이 살짝 보이는 크롭티를 즐겨 입었는데, 어느 순간 배에 살이 덕지덕지 붙기 시작해서 신경쓰였다. 짜증났다. 내가 더 먹어서 그런 건가 싶다가도, PT 30회를 마치고도 “이렇게까지 하는데 왜 이렇게 안 빠지죠?” 라는 트레이너의 말을 듣고 알았다. 몸이 달라지고 있다는 걸. 하루 저녁을 굶으면 다음날에 0.5kg씩은 빠졌는데 더는 그렇지 않았다. 엄마가 이젠 나이들어서 살 빼기가 더 어렵다고 푸념하던 것이 떠올랐다. 아 나는 나이 든 여성의 몸으로 가고 있구나. 그 감각이 처음으로 현실이 됐다.




사실 더 스트레스 받는 것은 따로 있었다. 남들보다 더 쉽게 살찌는 몸이 됐다 하더라도 어떻게든 노력하면 돌아갈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가슴이었다. 크진 않지만 내 몸에 어울리는 정도였고, 작다고 웃으며 말할 수는 있을 만큼 크게 신경 쓰지 않던 부분이었다. 그런데 호르몬이 줄어들자 탱탱했던 가슴이 점점 납작해지더니, 바람이 빠진 작은 공처럼 만질 것도 없는 수준이 되어버렸다. 쥐어쪄야 겨우 잡히는 가슴. 안그래도 작았는데... 배, 엉덩이와 허벅지에도 덕지 덕지 살이 붙었다. 허리 라인도 둔탁해졌는데 배에 살이 쪄서인지 가슴이 작아져서인지. 아무튼 여러가지 이유들로 내 몸을 드러내는 것도 자연스럽게 피하게 됐다.


샤워기 앞 거울을 보며, 내 몸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 실감났다.

난 원래 집요한 편이다. 스스로도 지긋지긋할 정도로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있다. 내가 가진 것과 가지지 못한 것을 정확히 알고, 바꿀 수 있는 건 끝까지 바꿔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그래서 더 견딜 수가 없었다. 내 기준에서 벗어난 몸을 견딜 수가 없었다. 내 원래의 몸은 이게 아닌데. 아닌데. 이게 진짜 내가 아닌데. 어느 순간부터 단 한번도 무릎 위로 오는 바지나 치마를 입은 적이 없다.


그 뿐 아니었다. 새벽에 자꾸 잠에서 깨고, 자고 일어나면 등이 흥건할 정도로 식은땀이 가득했다. 분기에 한두번 겨우 빨던 침대 시트었는데, 축축하고 눅눅해져서 자주 빨았다. 자주 빨아도 잘 살펴보면 내가 누운 곳이 표시가 났다. 밤에 자면서 땀을 흘리고, 새벽에 옷을 갈아입고 추워서 이불을 덮고 자는 일이 몇번 반복되다보니 수면의 질이 떨어졌다. 이것 때문에 피부가 버석해보이는 건지, 내 신체 나이가 늙어서 피부가 그러는건지. 그냥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연하게 누리던 것들이 젊음의 수혜라는 것을 깨닫는 매일이었다.




섹스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사랑하는 애인에게 내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을 열망. 작은 가슴은 진정 콤플렉스가 되어갔다. 남자친구 입에서 내 가슴에 대한 언급이 나올까봐 노심초사 했다. 섹스를 할 때 하늘을 보고 누울 수 없었다. 가슴이 납작해서 죽고싶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애액도 나오지 않기 시작했다. 성욕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몸이 반응하지 않았다. 혹시 내가 흥분하지 않았다고 생각할까봐 괜히 눈치가 보였고, 남자친구가 실망하진 않을까 걱정됐다. 너무 건조해서 관계시 통증이 생길 것 같을 때는 그냥 하기 싫은 듯, 혹은 그날인 것처럼 피해가기도 했다. 내 몸의 변화를 내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그걸 숨기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었다. 그래서 점점 더 작아졌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해서, 이런 나이기 때문에 버림받을까봐 무서웠다.


내 몸인데도 내가 통제할 수 없다는 느낌. 내가 결정하고 만들어온 몸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멋대로 변해버린 몸을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상태. 그게 정말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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