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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훈 Mar 29. 2022

나의 첫 레고 조립기

나이 서른 넘어도 레고 사는 이유

레고 샀다. 어렴풋한 기억으로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갖고 놀았던 것 같은데 나이 서른도 넘게 먹고 레고라니.  차 키에 달아둔 배트맨 레고키링을 제외하고는, 내 돈으로 레고를 사서 조립까지 해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내가 조립한 이 레고는 영화 어벤져스의 타노스가 착용하는 '인피니티 건틀렛'이다. 웹진을 읽다가  이 건틀렛을 발견하고는, 홀린 듯 레고 공식 스토어까지 타고 가서 결제해버렸다. 



레고는 빨랐다. 분명 어제 주문했는데 현관문 앞까지 배송되는데 24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나처럼 충동구매를 한 사람이 금세 정신을 차리고 환불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전략이려나. 이밖에도 레고는 제품 특성만큼이나 조립 경험에서의 디테일을 느낄 수 있는 제품이었는데 이 얘기를 해보려 한다. 


우선 레고가 들어있는 비닐봉지가 굉장히 부드럽게  잘 뜯어지는 것부터가 놀라웠다. 오버가 아니고 이건 분명히 ‘의도된 부드러운 뜯김’이었다. 레고는 삶의 질을 높여주는 필수품이 아니다. 순간의 정신나감으로 인해 구매한 감성품이자 말 그대로 장난감이기 때문에 언박싱에 있어서 기대감이 매우 높은 제품 중 하나다.  쉽게 풀어 말하면 빨리 뜯어서 얼른 조립해보고 싶은 제품이라는 것이다. 아마 애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런 제품이 시작부터 장난질을 치면 기분이 좋지 않다. 마치 뜯기지 않는 감자칩 봉지를 할 수 없이 옆으로 찢으면서 입맛이 1정도 떨어졌던 기분을 알려나. 레고는 그렇지 않았다.


내가 만든 인피니티 건틀렛은 590개의 레고 조각을 조립하는 제품이었는데, 이것을 590번의 조립의 연속으로 생각하는 것보다는 59 x 10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그러니까 10번의 작은 부품을 완성시키는 일을 59번 반복해서 이를 모두 합체하면 건틀렛이 완성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손목을 만들고, 손등을 만들고 그다음에는 손목과 손등을 지지할 무언가를 만들고, 마지막에는 손가락까지 하나하나 만들어서 이렇게 만들어진 작은 부품들을 순서대로 합체하면 최종 결과물이 나오는 형태이다.


본격적으로 조립을 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레고의 팬이 되었다. 레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설명서다. 설명서가 나를 안내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전자제품에 동봉되어 있는 흔한 설명서가 저가항공의 이코노미라면, 레고의 설명서는 에미레이츠 항공의 퍼스트클래스였다. 설명서를 펴보기 전에 막연하게 예상했던 설명서의 형식은, 조립하기 전과 후의 그림 비교 정도가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을 것으로 예상했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한 번의 작은 부품을 만들 때마다, 이번 부품에 필요한 레고는 어떤어떤 모양이라고 설명서 위에 표시가 되어 있어서 조립이 더욱 쉬웠다. 이해를 돕는 화살표와, 돌려서 끼세요라고 얘기하고 있는 부호가 적재적소에 들어가 있어서 조립을 하는 약 2시간의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이걸 어떻게 하라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레고는 참 친절했다.



사실 레고를 조립하는 시간 자체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정작 시간이 소요되는 부분은 다음에 조립할 레고 부품을 마구 널브러져 있는 레고 더미에서 찾아내는 일이다. 그런데 레고는 바로 이 탐색 작업조차도 수월할 수 있도록 장치해두었다. 레고는 전체 레고 조각을 마치 퍼즐 조각처럼 하나의 봉지에 넣어두지 않았다. 그 대신 조립해야 하는 부품의 순서대로 번호를 매겨서 분할 포장을 해두었다. 그러니 나는 590개 아니라 소분된 약간의 레고 조각만 계속해서 쏟아부으면서 레고를 조립했다. 책상 위에 쏟아져 있는 레고가 한눈에 들어올 정도의 수량과 색깔이어서 큰 어려움 없이 수월하게 다음에 조립해야 할 조각을 찾을 수 있었다. '이거 언제 다 조립하냐 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레고를 조립했다.  


브랜딩에 있어서 긍정적인 경험은 매우 중요한 항목이다. 더현대서울에 입점되어 있는 전체 브랜드들 중에서도 명품과 가전제품을 제외하고는 레고가 매출 10위안에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얼핏 들었다. 레고가 단순히 애들 장난감이 아니라 클래스가 다른 브랜드라는 것인데, 레고를 조립해보니 왜 레고가 레고인지 알법한 경험을 한 것 같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히 나는 한번 더 레고를 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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