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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과해원 Mar 30. 2016

8. 지구는 둥그니까 우리 다시 만나요

- 일본 사도섬 여행 번외편 (4)

일본 사도섬 여행 번외편 - 지구는 둥그니까 우리 다시 만나요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나가면
온 세상 모든이들
다 만나고 오겠네

 


사실 일본의 섬에 여행간다는 건, 일본이 섬인데 굳이 섬에 찾아가야 하나 싶기도 하고

그 섬의 섬이니까 섬의 섬에서 만나는

어떤 새로운 인연이 있을지에 대한 기대감이 증폭되기도 해서 더욱 설레었다.

 

여행 전 보게된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에서 나오는

시청 직원 같은

도쿄에서 일하다가 섬으로 내려와서 살고 있는 그런 젊은 남자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했었다.

 

 

그런데 사도섬에 있는 동안 한국팀의 통역을 담당해주었던 분이 실제로

도쿄 삼성지부에서 일을 하다가 올 해 사도섬 고향으로 돌아온 청년이었다.

숙소에서 잠깐 나와 편의점 구경을 가려고 하는데(사실 맥주 구경하러 감)

그분이 친절하게 편의점 위치를 설명해 주셨다.

한국말로 잠깐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서울에서 지낼때 우리 학교 근처에 숙소가 있었다는 것이다.

기분 좋게 우리가 구면일 수도 있겠다는 이야기를 했다(그 영화에서 보았잖니^^;).

 

 

-

고향에 내려와서 산다는 게 마냥 편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가 자란 사도섬은 변한 것이 없는데, 도시의 빠른 속도에 적응하여 살던 그는

정작 사도섬에 돌아와서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내가 사도섬에 가서 살게 된다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보았다.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카페 같은 장소를 만들어야지 싶었다.

오래된 카페를 가꾸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반기며 사는 그런 모습

내 상상 속 딱 그만큼의 모습인 카페를 찾았다.

 

 

-

 

-

시장 거리를 걷다가 이끌려서 들어갔던 카페 안이다.

오래된 내부의 가구들과 오래된 책

매일 아침마다 손수 작은 걸레로 닦고 또 닦았을 카페 구석구석

그리고 부러 메뉴를 물으러 손님이 있는 곳으로 왔다가

또 부러 물을 가져다 주러 오는 카페 사장님

일본 미르꾸에 섞인 카페라떼 특유의 맛이 참 좋았다.

여행 중 만난 편안한 장소이다.

섬을 찾아오는 여행객도 잠시 쉬었다 가고

동네 주민도 잠시 들러 이야기를 나누다 가는 곳

그러다 새로운 인연이 생기기도 하는 그런 곳

 

 

-

사도섬에서 지구가 둥글다는 걸 온몸으로 느낀 에피소드가 있다.

이튿날 밤이었나. 학회 일정 중 환영인사가 한창인 밤이었다.

어른들이 건네주는 몇 잔의 술로 어질어질하였던 나는 그 자리를 더 지키지 못하고

선배와 빠져나와 밤거리를 걸었다.

어두워지기 전에 대부분 상점이 문을 닫는 사도섬 밤길을 걸으니

시골 길을 걷는 것 같아 좋았다

한시간 반쯤 걸었나 불빛이 어스름한 번화가까지 걸어왔다.

밤바람에 몸이 으스스해지는 것 같아 선배와 따뜻한 차나 한 잔 하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꼭 심야식당 같은 괜찮은 식당을 발견했다.

아주머니 두 분이 운영하는 곳으로 밤 중 한국 여자 두 명이 들어오니 꽤 의아하게 생각하셨다.

(관광객이 전혀 지나다니지 않는 밤거리였다. 문을 연 상점은 그래도 서른 곳 남짓 정도 있었다)

 

 

여러번 세탁한 컵받침 위로 따뜻한 우롱차가 올려졌는데

드르륵 문이 열렸다.

 

무언가 반갑기도 하고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친숙한 얼굴들이었다.

같이 학회에 참석한 한국팀 분들이

뒤풀이 장소로 그 음식점에 온 것이었다.

숙소에서 꽤나 먼 거리였으니 단체로 택시를 잡아서 온 길이었다.

 

범죄 현장에서 경찰을 마주한 꼴이었다.

그분들과 자연스럽게 자리를 합쳐서 앉으니

식당 아주머니 두 분은 더욱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셨다.

 

지구의 많고 많은 음식점 중에

그 중에서도 사도섬이라는 낯선 섬에서

늦은 밤중에 몸을 녹이러 들어간 곳에서

마주친 사람들이라니

 

지구는 둥글고

자꾸 가다보면 정말 온 세상 사람들 다 만나겄네 싶었다.

 

 

 



 

한 시간 반을 걸어 지인들을 마주한 우리는

택시를 타고 안전하게 숙소로 갈 수 있었다.

 

 

 

-

사도섬에서 만난 뜻밖의 인연은

료이치 아저씨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섬을 떠나 육지로 가는 페리선 안에서

어쩌다 일행들과 떨어져서 앉게 되었는데

옆자리에 앉은 분이 료이치 아저씨다.

 

사도섬에 여행온 분이 아니라 섬에서 태어나서 계속 살고 있는

사도섬의 주민이라 놀랐다. 그 분은 사도섬에서 논 농사를 짓고 사는데 일때문에 잠깐

니가타에 나가는 길이라고 하셨다.

 

나는 사도섬에서 궁금했던 이것저것을 료이치 아저씨한테 물었다.

 

노 공연을 보았는데 소나무는 왜 그려져 있던 건지,

사도섬 사람들은 저녁에 무엇을 하는지

사도섬 곳곳을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들도 보여드렸더니

 

 

아저씨는 핸드폰에 있던 본인 사진들을 여러개 보여주셨다.

가족들과 같이 찍은 사진, 부모님 생신때 찍은 생일잔치 모습, 오키나와로 여행갔던 일,

취미인 낚시로 잡은 물고기 사진, 등

소소한 일상을 담은 사진을 통해

 

한국을 떠나오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일본의 어느 섬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의 삶을

어느 섬의 일대기를

감히 조금은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우리는 특히 오키나와에 방문했던 일을 이야기 했는데 나도 지난 겨울 오키나와에 갔던 일이 떠올라

츄라우미 수족관이나 오키나와 우동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내가 떠나온 한국의 동해 바다와 사도섬의 서해 바다는

같은 연안으로 동해 바다의 파도는 바로 사도섬의 서해 바다로 이어지는데

우리는 줄곧 하나의 바다를 마주보며 살아온 것이다.

그곳 사람들의 일상이 나에게도 이렇게 가까운 것이었구나 싶었다.

 

우리가 한창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지려는데

아저씨는 내가 들어갔던 카페 이름을 아느냐고 물었다.

再會는 다시 만난다는 뜻이었다.

 

지구는 정말 둥그니까

동해바다를 넘실거려 언젠가 또 사도섬에 닿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도섬 여행기는 번외편인 (4)편까지 진행되었습니다. (1)편부터 차례대로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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