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무늬 애벌레와 노랑애벌레의 사랑
한 애벌레가 태어나 나뭇잎만을 먹으며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 날, 애벌레들이 서로의 몸을 밟아 기둥처럼 쌓아 올린 구조물을 발견한다.
그 기둥은 구름에 가려진 꼭대기를 향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줄무늬 애벌레도 그 기둥을 오른다.
오르는 길에서 노랑 애벌레를 만난다.
둘은 사랑에 빠지고, 경쟁의 질서에서 잠시 벗어나 내려와 함께 머문다.
그 시간만큼은 분명 행복했다.
그러나 줄무늬 애벌레의 마음 한편에는 질문이 남는다.
‘그 꼭대기에는 무엇이 있을까.’
노랑 애벌레는 울며 헤매다 누에가 되는 법을 배우고 다시 기둥을 오른다.
그러나 끝내 도달한 꼭대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맨 위에 있는 애벌레들은, 아래에서 오르는 애벌레들이 부러워하도록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숨긴 채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견디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노랑나비가 나타나 무언가를 말한다.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 눈빛은 분명 낯이 익었다.
줄무늬 애벌레는 선택해야 했다.
이 자리를 행복이라 우기며 머물 것인지,
아니면 솔직히 행복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노랑 애벌레가 이끄는 길로 가기 위해
지금까지 고생하며 얻은 ‘높이’를 모두 내려놓을 것인지.
줄무늬 애벌레는 솔직할 줄 알았다.
그래서 노랑나비가 이끄는 대로 기둥을 내려와
고치를 만드는 법을 배웠고,
며칠 뒤 호랑나비로 다시 태어난다.
이 그림책은
한 신부가 사제가 되기로 결심하게 만든 결정적인 책이라고
그가 직접 펴낸 책 속에서 고백한 작품이다.
나는 책을 다 읽고도
그 선택의 동기가 즉각적으로 이해되지는 않았다.
수도자가 된다는 것은
개인의 의지보다 더 강한 무엇인가가 이끌어야 가능한,
고행에 가까운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교 수행의 한 방법인
‘순간적으로 깨닫고, 그 깨달음을 닦아 나가는’
돈오점수(頓悟漸修)의 맥락으로 바라본다면,
이 짧은 그림책이
그 신부의 한순간의 선택을
결정적으로 흔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설명되지 않아도,
이해되지 않아도,
삶의 방향을 바꾸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이 책은 조용히 증명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