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기독교 신앙
스페인의 오래된 성당들을 마주할 때, 가장 먼저 눈을 사로잡는 것은 압도적인 금빛이다.
제대는 눈부시게 번뜩이고, 그 곁을 지키는 성상과 장식들은 빛을 머금은 채 경건함을 뽐낸다. 그러나 그 찬란한 광채의 이면에는 인류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황금의 눈물이 흐르고 있다.
1532년, 스페인의 정복자 피사로는 페루 카하마르카에서 잉카의 황제 아타우알파를 기습적으로 사로잡았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황제는 자신의 목숨값으로 파격적인 제안을 건넸다. “내가 갇힌 이 방을 금으로 가득 채우겠다.”
약속은 현실이 되었다. 잉카 신전의 벽을 장식하던 황금판들이 뜯겨 나갔고, 대를 이어 내려온 정교한 예술품들은 가차 없이 용광로 속으로 던져졌다. 그 순간, 금은 더 이상 고귀한 문명의 상징이 아니라 단지 차가운 ‘무게’로 치환되었다.
하지만 황제는 끝내 살아남지 못했다. 죽음을 앞둔 그는 강제로 세례를 받아야 했다. 잉카의 신을 부정하고 낯선 신의 이름을 입에 올린 뒤에야 그는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했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거친 바다를 건널 때, 그들의 배에는 항상 사제가 동승했다. 폭풍이 몰아치고 죽음의 공포가 덮쳐오면 정복자들은 간절하게 '병자성사'를 찾으며 자신의 죄를 씻고자 했다. 그들의 신앙은 그토록 지독하리만큼 진지하고 간절했다.
그러나 살아남아 육지에 발을 내딛는 순간, 그 신앙은 전혀 다른 칼날이 되었다. 신대륙의 사람들은 낯선 신 앞에 강제로 세워졌고, 선택의 여지없이 물세례를 받아야 했다. 그들에게 믿음은 자비로운 권유가 아닌 서슬 퍼런 ‘명령’이었고, 구원은 이해가 아닌 굴복의 다른 이름이었다.
약탈된 잉카의 황금은 다시 바다를 건너 스페인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침내 성당의 거대한 제대 위에 놓였다. 사람들은 그 빛나는 금이 '신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 찬송했다.
하지만 그 빛 아래에는 녹아내린 신전의 비명과, 무너져 내린 삶의 흔적, 그리고 영문도 모른 채 머리에 물을 뒤집어써야 했던 원주민들의 고통이 서려 있다.
신앙은 본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중세 기독교 국가들이 저지른 만행은 역사의 갈피마다 반복되어 왔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성당의 화려한 금빛은, 어쩌면 그 잔혹한 역사가 남긴 지울 수 없는 흉터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