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콧대의 철학

내 콧대가 조금만 더 높았다면

by 책읽는고무신

나는 콧대가 낮은 편이다.

어릴 적 오빠는 그 사실을 재미 삼아 나를 자주 놀렸다.

신이 나를 만들다가 인간의 경솔함에 회의를 느끼고는,

코를 빚던 손으로 반죽을 얼굴에 떼기장을 쳤다는 이야기였다.

눈은 재료가 떨어져 개울가의 올챙이를 대신 썼다며

눈꼬리가 가늘어진 이유도 덧붙였다.


순진했던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왜 하필 나를 만들 때 신이 그렇게 화가 났느냐고 울며 따지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스스로를 달랬다.

그래도 입은 신경 써서 만들었을 거라고.

사람들에게 웃는 입이 예쁘다는 말을 들을 때면

그 말 하나로 충분히 위로가 되었다.

어린 마음에 그것은 나를 지켜주는 마지막 방패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오빠는 늘 새로운 비유로

터울 큰 여동생의 외모를 끊임없이 놀려댔다.

오빠 말대로 나의 외모를 있는 그대로 그려보면

짱구 이마에 눈 코 입이 거의 외계인에 가까운 얼굴이다.

이런 놀림을 받고 자라다 보니

낮은 콧대를 비롯한 외모에 대한 열등감은 오래 남았다.


관상학에서는

콧대가 지나치게 높지 않고 살집이 있는 코를

큰 풍파 없이 뻗어가는 인생의 상징이라 말한다.

반면, 살집 없이 높은 코는 빈약한 인생의 상징으로

굴곡진 인생을 나타낸다고 한다.


나는 콧대가 낮고 살집이 있어

살아오며 ‘복코’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돌이켜보면 그 말이 아주 틀렸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웬만한 일은 받아들이니 가족 간의 관계도

갈등 없이 원만했다.

그래서인지 내 인생은 대체로 큰 풍파가 없었다.


사람을 두고 콧대가 높다고 말할 때,

그 말이 자존심을 뜻한다는 사실은

일반적으로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클레오파트라가 아닌

내 콧대가 조금만 더 높았다면,

인생도 지금과 달랐을까


만약 오빠가 나의 유년시절에 무조건 예쁘다는

말로써 나의 기를 좀 더 살려줬더라면,

그래서 나의 자존감이 좀 더 높았더라면,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


나이 육 실 줄에 닿고 보니

지금의 나로서 감사한 맘으로 삶을 받아들이는

여유가, 어느 정도 오빠의 영향이라 여기게 된다.

언젠가 오빠를 향해 그 또한 나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었음을,

기억할지는 모르겠으나 신박한 농담으로

던져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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