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어머니의 불편한 동거
나는 나 하나 편하자고
두 어머니를 같은 요양병원에 모셨다.
서로 의지하며
조금이라도 덜 외롭기를 바라는 마음도
물론 없지 않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선택에는 내 사정이 더 앞서 있었다.
온전하지 못한 정신으로
두 분은
딸인 나와, 며느리인 나를 사이에 두고
오히려 갈등을 만들어냈다.
엄마에게 나는
‘딸’이라는 천륜을 가진 사람이었고,
삼십 년 가까운 세월을 곁에 두고 살아온
시어머니에게도
나는 이미 ‘딸’이었다.
두 분 모두에게
나는 쉽게 물러설 수 없는 존재였고,
그래서 두 분은
서로에게서 물러서지 않으셨다.
결국 여섯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두 어머니는 분리되었다.
바로 옆 병실에 계시면서도
서로의 존재만 확인할 뿐
아는 체하지 않으셨다.
그때부터 나는
두 어머니의 면회를
따로 해야 했다.
공평해야 한다는 마음의 중심은
조금씩 흐트러졌다.
나도 모르게
엄마의 안위가
내 생각의 대부분을 차지해 버렸다.
세 살 더 적으신 시어머니께서
먼저 의식을 잃으셨다.
연명치료를 거부한 채
임종이 임박한 시간을 보내고 계신다.
나는 매일 병원을 찾으며
그 모습 앞에서
마음을 졸인다.
그런데
시어머니를 뵙고 돌아올 때마다
바로 옆 병실에 계신
엄마를 보지 못하고 나오는 마음이
유난히 아프다.
내가 왜 병원에
이렇게 자주 드나드는지
엄마에게 들켜서는 안 된다.
자신보다 나이가 적은
시어머니가 먼저 가실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엄마에게는
알릴 수 없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내 모습을 보고 이름을 부를까
늘 조심스럽게
병실을 오간다.
나는 매 순간 시어머니의 고통이
이 모습으로 끝나기를
기도한다.
그러나
그 기도보다 더 간절한 것은
홀로 남게 될,
그 사실을 알고 힘들어하실
엄마를 향한 기도다.
나의 어리석은 선택이
이 모든 상황을 불러왔다는 사실 앞에서
나는 여전히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 글을 쓴 지가 두 달쯤 되었다
시어머니께서는 한 달 전에 귀천하셨다.
그동안 미뤄왔던 엄마 면회를
그전보다 두배로 자주 한다.
엄마는 시어머니의 죽음을 아신다.
그런데 내색하지 않으신다.
당신의 자녀들이 자주 왔다 갔다 하니
그 자체로는 일단 좋아하신다.
엄마의 깊은 속을 알 수는 없다.
이제는 더이상 엄마에게
시어어니 얘기를 꺼내지 않는것이
불문율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