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선생님은 제게 말씀하셨어요.
“근거없는 희망은 드리지 않습니다.“
그 말은 제가 치료가 될까 흔들릴 때마다
의사 선생님의 입을 통해 드문드문
제 마음의 문을 두드렸고, 마침내 믿음이 생겼어요.
누군가 그러시더군요,
때가 올 거라고.
저는 그 때가 올 거라고 믿습니다.
지나온 날을 믿고,
지나갈 나를 믿습니다.
그 시기가 또 찾아왔습니다.
"내가 우울증이라니, 믿을 수 없어."
사실 알고 있었습니다.
진단을 받으면서 오래전부터,
좀 더 오래전부터 아파왔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불안한 마음으로 보냈던 시절은
제 안에 독이 담긴 포자를 퍼트렸고
이내 버섯이 자라나, 탐스럽게 자라나
저를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당시 세상은 우울증에 걸린 사람을
'약한 사람' 취급했고
하도 그런 얘길 듣다보니 저 역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존감을 열심히 깎아버리고 있었습니다.
게을러서 그래,
고생 안 해서 그래,
뭐해서 그래, 뭐해서 그래.
그래서 저는 그렇게 모른다는 착각으로
우울을 쌓아두고 살았습니다.
치료를 받는 지금은 좀 다를까요,
주기적으로 병원을 가다보니 제가 환자라는 걸 압니다.
환자에서 더 나아가 '치료자'라는 표현을 스스로에게 씁니다.
환자라고 하면, 더 아파지는 기분이 들어서요.
저는 이제 누군가에게
넌 그래서 안 돼,
넌 이래서 그래,
그런 얘길 듣지 않습니다.
아, 아파서 그렇구나. 그 한마디로 제 삶은
귀결됩니다.
그건 어쩌면 양날의 검입니다.
그 안에서 보호되는 느낌도 들지만
한편으론 갇혀있는 느낌도 들 때가 있습니다.
언젠가 저는 그 상자를 벗어날 거란 걸 압니다.
예전에 그렸던 캐릭터입니다.
상자를 뒤집어쓴 아이를 표현했습니다.
'하리'는 겁이 많고 소심합니다.
제가 가장 숨기고 싶어했던 모습을 다 담아냈었습니다.
이제는 상자가 무슨 색이었는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먼지 쌓인 추억으로 남았고,
그것에 감사하면서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저의 캐릭터들은
제가 생각하는 저의 약점이자
나아가기 위해 생각을 바꿔서 인식해야 하는
'숙제'같기도 합니다.
그것은 곧 우울증과도 연결되는 점입니다.
우울증 치료자분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우리 꽤나 숙제를 잘 해나가고 있다고
같이 힘내자고 응원 나누고 싶습니다.
주변에 우울증 치료자분이 있다면,
매일 숙제를 하고 있느라 지친 모습이었다고
밝은 모습은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을 감추기 위해
부단히도 애썼던 그들의 노력이었다고
그러한 눈으로 한번 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우울감을 느끼고, 우울해지고,
우울해했고, 치료를 받는 저는
여전히 우울이란 감정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계속 말을 한다면,
그 단어가 단어와 연결되어 작은 동그라미를
그려보이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