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지니까 후련한 이유는요?

by 최예지
확신을 위한 확신

나를 위한 치료라는 말에

제가 울컥하는 이 상황은 대체 뭘까요,

이 당시 그림을 그렸던 몇 개월 전의 저도

지금의 저도 둘다 최예지라는 사람이지만

어쩐지 나보다 조금 어리지만 철든 동생에게

위로받는 기분이 듭니다.


나를 위한 치료,

그 생각에 도달하기까지 저는 몇 번이고 산을 오릅니다.

오르고서는 또 내려갑니다,

다시 사람을 만나야 하니깐요.

그렇게 평지도 걷고 울퉁불퉁한 자갈길도 걷다 보면

다시금 중심이 어디였는지 까먹곤 합니다.


그럴 때, 또 오릅니다.

산을 오릅니다.

'이해'라는 산을 오릅니다.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도,

치료를 받고 싶은데도,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은데도,

못 받는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치료를 받을 수 있어 감사합니다.


그리고 마음이 아픕니다.

치료를 받지 않고 일상의 불편함을 겪으며 하는 생활이

얼마나 고되고 어려운지 겪어봤기에 그 아픔에

깊이 공감합니다.


저 그림을 그릴 당시만 해도

매번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 떠오릅니다.

'몇 년 뒤에는 치료가 끝날 거야,

몇 달 뒤에는. 몇 주 뒤에는. 며칠 후에.

그래, 치료가 끝날 거야. 그럼 난 이걸 해야지,

그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지.'


의사 선생님은 말씀해주셨습니다.


"치료 기간을 단정짓는 것은

치료 기간을 늘릴 위험이 있습니다."


말씀해주시기 전부터도 몸은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가하는 압박이 심해졌기 때문입니다.

의사 선생님 말씀을 듣고 마음을 고쳐 먹었습니다.


열린 결말로 두기로.


누군가 묻는다면 저는 말합니다.

내년에는 끝날 거야,

끝내야지 가 아니라 그럴 거야, 하고요.


은근한 믿음으로 자신에게 내리꽂는 압박을 치워버리는,

저만의 팁이기도 합니다.




저는 졌습니다.

우울증이 사실 아닐 거라고,

이 모든 건 다 거짓 세상이라고,

의심해오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받아들였습니다.


받아들이니 편합니다.

편하지만 불안합니다.

불안하지만 안심합니다.


이젠, 나을 수 있겠구나.

인식이 곧 치료라는 말을

어딘가의 책에서 본 적이 있었습니다.


이젠, 나을 수 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