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말하는 관계
어떤 글을 써야 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도움이 되고 싶은데, 몇 달 전에 그린 그림을 보며 그때를 떠올리려니 그저 과거 회상 혹은 감상에 젖은 글뿐이 되지 않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변명입니다, 그래서 연재가 뜸했습니다.
항상 주고 싶은 메시지는
'지지 않는다.'입니다.
지지 말자고 용기를 주기에 저란 사람의 존재는 미약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저, 이 미미한 존재도 지지 않겠다고 덤벼들고 있으니 그것만 기억해 달라 하고 혹시라도 그것에 용기를, 힘을, 위로를 얻는다면 그것만으로도 기쁘다며 연재의 끝을 향해 가겠습니다.
제가 혹시라도 저번 편과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면, 그만큼 여러 번 생각이 든 부분이겠거니 하고 너그러이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울증은 시계추와 같다는 표현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도 우울증은 후퇴와 전진이라는 걸 알려주셨습니다. 저는 그동안 여러 예술과 치료를 통해 그것은 연속적이며 지속적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위에 올려진 그림은 예전에 그린 그림인데도 지금도 공감이 가는 그림입니다.
의사 선생님께 저 그림을 보여드리면서 또 말을 하고 나니까 더 신뢰가 쌓였고 마음의 문이 열렸으며 그것을 할 수 있었던 힘이 힘을 만들었습니다.
치료를 받고 있는 분이시라면 아마 한 번쯤 그런 생각을 하시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나는 내 전부를 말하고 있는데, 괜찮은걸까?'
의사 선생님은 안전한 의존이라는 말씀을 제게 종종 들려주셨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안심하고 후에 또 의심하고 다시 또 믿고 안심하고 이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정신과치료는 객관성을 갖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나고서야 객관화가 되었습니다.
'그 선생님은 이런 점은 정말 좋았는데, 이런 부분이 좀 아쉬웠어.'
똑같은 의사 선생님께 치료를 받더라도 어떤 사람은 말투가 세다고 느끼고, 어떤 사람은 나와 딱 결에 맞는다고 느낍니다. 정신과치료 후기가 만약에 있어서 보고 가더라도 나와 정말 걸맞은 곳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방금,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을 해봤는데 직접 질문을 던지는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이런 말투를 원합니다, 선생님은 어떤 타입입니까?'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건 쉽지 않다고 바로 고개를 저었습니다. 이미 사람과의 믿음이 깨져서 그걸 회복하고자 가는 상황에서 무슨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에 관한 연구가 많이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까지 갔습니다. 그래서 저는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장은하 작가님의
나는 이런 정신과 의사를 내 주치의로 선택한다
마침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신 작가님이 있어 추천합니다.
여기서 제 역할은, 제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구분선을 두고 조금 더 적어보겠습니다.
저는 네 분의 의사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첫 번째는, 제가 사람들이 저를 보고 총으로 쏠 거 같다며 처음으로 혼자 방문해 얘기했던 날이었습니다. 그 선생님은 제 얘길 듣더니 여긴 약으로 치료하는 곳이다, 상담하는 곳으로 가라. 하고 내보내셨습니다.
두 번째는, 제 현재 상황의 문제를 얘기하면 점점 과거의 저를 찾아 어떤 기분이었는지 해소되지 않은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내서 현 상황의 통제하기 힘든 감정을 진정시키고 감정에 의한 행동 및 생각의 사고 흐름을 전환시켜 준 분이셨습니다. 이때는 상담만 했습니다.
세 번째는, '누구나 그렇다.'라는 말을 자주 하시는 선생님이셨고 그때 큰 도움을 받아 그림을 그려 보여드렸었습니다. 상담실에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받는 저와 같이 들어오신 엄마를 그렸습니다. 제 모습은 사람이 아닌 무덤으로 그렸습니다. 무덤에 가서야 말할 수 있을 것 같던 얘기를 꺼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하단 의미로 그렇게 표현했었습니다. 이때는 상담과 약물 치료를 병행했습니다.
네 번째는, 저와 의사 선생님의 라포 형성이 잘 되어있는지 꼼꼼히 확인하시면서 진행하시는 '건강한 의존'을 해도 괜찮겠다고 믿음을 주시는 분이셨습니다. 상담과 약물 치료를 병행하고 있고 지금도 그 선생님께 계속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여기서 조금 더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라포 형성입니다.
신뢰 형성, 마음이 통하는 관계라고 전문가는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저는 세상이 나를 배신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고, 사람은 믿으면 안 된다, 나조차도 사람이니까 나를 믿으면 안 된다는 강박에 갇혀있었습니다. 그랬기에 믿음을 주는 의사 선생님인가가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믿음의 기준은 다들 다를 것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반응'이었습니다. 치료가 되어가는 모습을 느끼며 믿음이 조금씩 자랄 때마다 저는 의사 선생님께 반응을 보였습니다. 세 번째 의사 선생님께는 치료 초기 집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지내는지 썼던 글을 보여드렸고, 꾸준히 약을 잘 챙겨 먹고 있다는 기록도 보여드렸었습니다. 그림을 보여드리거나 글을 보여드리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의사 선생님께는 제가 올리는 인스타그램의 하기툰을 보여드립니다. 그때 그걸 어떤 시선으로 받아주시느냐에 따라 제 마음이 많이 좌우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치료를 받는 사람이기 이전에, 의사 선생님도 하나의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누군가의 자녀, 부모, 혹은 다른 그 무언가라는 생각으로 좀 더 크게 보는 시선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나를 치료하는 단순한 의사가 아닌 개개인의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잊지 않고 치료에 임합니다. 그렇기에 제가 보이는 믿음의 증거에 조금이라도 지친 내색이 보인다면 혹은 실제로 그렇지 않더라도 제가 그렇게 느꼈다면 저는 숨어버렸습니다.
건강한 의존을 할 수 있는 의사 선생님인가, 그 여부가 제게는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결론을 내립니다.
제 경험이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저는 다음 주도 치료를 받으러 갑니다.
치료의 끝이 온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그러나, 치료의 끝이 언제라고 정해두진 않습니다.
치료가 끝나도 가끔 찾아가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치료의 끝은 자연스럽게 찾아올 거라는 소망으로
다음 주의 치료를 기다립니다.
오랜만의 글에도 찾아와 주셔서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건강합시다.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