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가 끝나가요, 힘내요.” “그러면 뭐가 남아요?” 을은 말했다. 김을, 그는 인생에서 제일 싫어하는 걸 꼽자면 자신의 이름이었다. 항상 놀림의 대상이 되었던 이 이름이 죽도록 싫었다. 그래도 꾸역꾸역 이 이름으로 살아왔다. 개명을 신청하지 않았던 건 그만의 개똥철학이 있어서였다. “발음이 예쁘잖아. 을.“ 그는 작사가여서 발음에 항상 주의를 기울였다. 처음으로 내뱉은 말은 ”너를“ 이었다. 엄마도, 아빠도 아닌 너를. 그는 별안간 꿈을 꾸기도 했다. 을과 를이 만나서 과를 낳으면 어떻겠냐는, 허무맹랑하고 말도 안 되는 꿈. 누가 이름을 ‘를’이라고 짓겠는가. 그도 안다, 를은 발음이 예쁘지 않다는 걸. 그런데도 그런 걸 꿈꾼 걸 보면 단순히 을과 를이 만나서 낳은 과는 그저 ‘과’를 넘어 무엇‘과’라도 함께 하고픈 마음이 담겼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그렇게 자신을 객관화하며 치료 도중 딴짓을 했다. 치료를 이어가던 의사는 그의 시선이 자신이 아닌, 하얀 벽에 향한다는 것을 이미 들어올 때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그는 오늘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아무 말도 꺼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의사는 얘기했고 을은 네, 아뇨, 그렇죠, 하던 대답에서 새로운 단어를 엮어 내뱉었다. 의사는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처음에 미래를 떠올리면 어떤 것이 떠오르냐는 물음에 아무것도 없는 하얀 공간이라고 말했다. 친구와 그런 대화를 나눴다면, 너 외계인이야? 하는 정도의 가벼운 농담을 날렸겠지만 그는 의사였다. 을의 치료를 맡은 책임이 있었다. 의사는 을의 대답에 을의 눈을 쳐다봤다. 의사는 속으로 말했다. ‘답이 맞는지 확인하려고 하시는 거죠, 을씨?’ 을은 치료가 끝나면 뭐가 남냐는 물음에 답을 듣지 못하고 치료 시간이 종료되어 밖으로 나왔다. 수납을 하고 집에 가는 버스에 오르는데, 속이 답답했다. 그제야 알았다, 뭐가 남는지. 지금 이 가슴이 답답한 마음, 보통의 상태에서 도달할 수 있는 그것.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이었다. 그건 곧, 미련이었다. 삶의 미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