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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교사 Dec 24. 2019

교육에서 빠지기 쉬운 미래의 함정


인공지능과 같이 특이점을 만들어 낼 정도의 큰 변동이 일어난 시대에서의 교육을 논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이 바로 미래라는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여기 빠지지 않기란 쉽지 않다. 큰 기술적 발전과 이에 따른 사회변동이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는 마당에 교육이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교육, 특히 공교육은 어떤 것을 대비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것을 대비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교육은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는 특수교육이다. 그러한 교육은 공교육이 아니라 각각의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곳에서 이루어질 일이다. 예컨대 우리는 언제든 외적의 침략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공교육 학교에서 군사학을 가르치지는 않는다. 그러한 것은 군이라는 특수한 조직에서 담당하면 된다.

마찬가지로 인공지능이 앞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러저러하게 바꿀 것이며, 산업의 중심이 될 것이라 해서 그 미래의 모습을 예측하고, 중심이 될 산업에서 요구하는 기술을 예측하여 이것을 미리 준비시켜줄 수는 없다. 오히려 지나치게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미래대비 교육은 오히려 학생들의 미래를 망칠 수 있다.

그 사례를 우리는 20세기 말, 이른바 ‘이해찬 키드’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때 유행했던 말이 “다양화, 다원화의 시대에는 정해진 경로가 아닌 개성 있는 경로를 선택한 사람이 성공한다.”였다. 그리하여 보통교육을 포기하고 저마다 그 개성 있는 경로를 선택하여 올인하는 것을 장려하는 교육이 이루어졌다. 고등학교를 중도에 그만두고 음악과 댄스의 길을 선택하여 올인한 ‘서태지와 아이들’은 그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그러나 인생은 매우 길다. 인생이 성공적인가 아닌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한창 인기를 끌던 나이에 그 나이 만큼을 더 보태어 보아야 알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중년이 되어버린 그 아이들의 현재 상태를 보면, 그들의 인생이 결코 성공적이라고 말하기 어려움을 알 수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가장 기본적인 도덕성, 가치관에서 문제를 드러내며 젊은 시절에 쌓았던 영예를 무너뜨렸다.

그들에게 무엇이 부족했을까? 특수한 교육은 충분했다. 거기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들에게 부족했던 것은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교육, 사람됨의 교육, 휴머니티의 교육이었다. 즉 세상이 빠르게 변할수록, 미래가 불확실 할수록 오히려 교육은 가장 보편적인 휴머니티를 움켜 잡아야 한다. 미래에 어떤 것이 유망할 것이니 그것을 남보다 먼저 배워서 선점하겠다는 식으로 교육에 접근하면 오히려 이 휴머니티의 불균형 때문에 미래를 망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미래의 함정이다. 미래를 미리 알고 미리 대비할 수 있다면 세상에 실패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오히려 실패는 미래에 대한 섯부른 예단에서 비롯된 경우가 더 많았다. 1997년 이해찬 키드를 기억할 것이다. 그때 학교에서 하는 이른바 교과 공부는 굳이 안해도 되니 뭐라도 독특한 특기 하나만 있으면 그걸로 먹고 사는 시대가 온다고 했다. 그래서 그때 보통교과라 불리는 학교공부를 등한시하고 그 특기 하나에 매달린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이 이해찬 키드다. 그 결과는? 대 실패다. 그 특기 하나가 충분히 미래가 되었는데도 도무지 빛 볼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경우, 혹은 운 좋게 빛을 보더라도 생각보다 빨리 빛이 꺼져버린 경우 그대로 주저 앉아 버린 경우가 많았다.   

미래라는 말은 매혹적이다. 하지만 미래는 절대 구체적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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