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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교사 Dec 26. 2019

작가가 되기까지 (1)

(1) 불혹이 다 되어 바람처럼 다가온 글쓰기

 요즘 작가 천지다. 책 한 두권 대충 던져 놓고 너도 나도 작가를 자처하고 있다. 그런데 그 수 많은 작가들 중, 정말 책 쓰는 사람으로 정체성을 삼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개는 강연료를 높이는 액세서리로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 책을 낸다. 언어 도단이다. 책 한 두권 냈다고 작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책 한 두권 내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푸른 묘점>에 나오는 대사처럼 누구나 세상을 어느 정도 살았다면  책 한 두권 정도의 이야기 거리는 다 가지기 마련이다.  가령 일기나  독서 감상문을 몇년간 꾸준히 썼다면 거기서 책 한 두권 엮어내는 것은 일도 아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한 두권 까지는 제대로 살아 오기만 했다면 엮어낼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어지간히  복잡하게 살아오지 않은 이상  단지 살아 왔던 경험만으로  엮어내기 어렵다. 이때부터는 조사, 학습, 취재, 반성 등을 통해 자신의 삶과 경험 이상의 것들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영어의 writer보다 우리말(사실은 일본어지만)의 작가가 의미심장하다. 단지 쓰는 사람이 아니라 만들어서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니. 

그렇다면 나는? 장담하는데  나는 강연 장사꾼이 아니라 틀림없는 작가다. 당장 서점에서 검색하면 내가 쓴 책의 목록이 한 두권이 아니라 이렇게 수십권 나온다.(이 중 동명이인의 여성 작가의 책이 약간 섞여 있다.) 출판문화협회 올해의 도서, 아침독서, 책따세, 세종도서 등에 선정된 책만도 열권 정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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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목록을 쭉 살펴보다보면  가장 오래된 책이 2007년에 나왔다. 거의 마흔이 다 되어서야 처음 책을 냈으니 상당히 늦은 데뷔를 한 셈이다. 더구나 논문을 이리저리 엮어서 낸 학술서적이 아닌 본격적인 책은 마흔을 훌쩍 넘긴 2011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마흔에는 더 이상 혹함이 없어야 하거늘, 오히려 마흔이 넘어 교사로 학자로 나름 잘 살아오던 삶에 크나큰 바람이 불어온 것이다. 나에게 마흔은 불혹이 아니라 유혹의 시기였던 것이다. 2007년 이전까지는 책은 커녕 블로그 글도 많이 쓰지 않았다. 딱딱한 논문만 썼을 뿐. 마흔이라는 나이는 글쓰기가 바람처럼 불어온 나이, 나의 인생 2막이 열린 사춘기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불혹에 이렇게 큰 유혹을 느꼈을까? 두개의 큰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2004년에 있었던 대학임용 실패, 다른 하나는 2007년 전교조 본부에서의 경험이다. 


난ㄴ 2004년 2월에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 평가도 좋았다. 프로포절에서부터 1,2,3차 심사까지 단 한번의 딜레이도 없이 단 한 학기만에 끝내버렸다. 그리고 그해 여름, 어느 대학의 신규교수 초빙에 응했다. 처음에는 분위기가 좋았다. 최종 총장 면접 두 명까지 선발되었고, 선배 교수들은 다음학기 교육과정을 미리 상의했다. 그러나 막판에 뒤집혔다. 이 뒤집힌 과정에서의 어이없는 경험은 나중에 소설 소재로 사용할 생각이다.

하지만 생각을 달리 해 보면, 거의 내정되어 있다시피 한 상황에서 17명의 지원자를 들러리로 만든 주제에 마지막에 뒤통수 맞았다고 억울해할 자격이 과연 나에게 있나 싶었다.  이런  불공정하고 불투명한 과정을 거쳐 교수가 될 마음을 지웠다. 


교수가 될 마음을 지우자 교사의 길이 새로 보였고, 그 동안 회비만 내는 조합원이었던 전교조 활동에도 더 적극적이 되었다. 마침 그 무렵 전교조는 노동운동, 강경투쟁을 내세우던 정파 대신 교육운동, 전문성을 내세우던 정파로 물갈이가 되었고, 덕분에 나도 새 집행부에 합류하여 참교육연구소 부소장, 그리고 겸직으로 부대변인의 직을 맡았다. 글을 엄청 많이 써야 하는 자리였다. 정무적인 대응을 하는 논평이나 보도자료는 대변인이 담당하였지만, 교육 전문가로서의 목소리를 내야하는 논평이나 보도자료는 주로 내가 썼다. 


그런데 사람들이 놀라는 것이다. 어떻게 앉은 자리에서 바로 글이 나오냐고? 그동안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 키보드를 두드리며 글을 쭉쭉 써나가는 것이 보통 사람들에게는 전혀 당연한게 아님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래서 유심히 다른 사람들을 관찰해 보았더니 깜박이는 커서를 노려보며 굉장히 힘들게 한줄 한줄 쓰는 것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내가 글을 다른사람보다 아주 쉽게 쓴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이 마흔이 되어서야 나의 진정한 적성과 소질을 찾은 것이다. 

(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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