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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교사 Dec 29. 2019

작가가 되기까지 (2)

블로거에서 첫 책을 내기까지

지난 번 이야기는 다음 링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s://brunch.co.kr/@hagi814/2

마흔이 다 되어서야 진정한 나의 적성과 소질을 찾자, 이때부터 마치 중독처럼 글을 쓰기 시작했다. 거의 하루 종일 키보드 앞에서 시간을 보내다시피 했다.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소형 노트북이었던 후지츠 10인치 노트북을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틈만나면 펼쳐놓고 글을 썼다. 전교조 본부에서 요청하는 논평, 보도자료, 정책자료, 논문 등을 닥치는 대로 섰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으면 조합원 게시판에도 '부정변증법'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썼고, 이 필명은 당시 전교조 내에서 꽤 유명한 논객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 전교조 지도부와 사이가 틀어지면서(그 사정은 구질구질하니 생략) 전교조 본부 생활을 접고 학교로 복직했다. 하필 그 무렵 정권이 교체되어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었는데, 국영수 몰입교육, 아린지 교육, 노골적인 경쟁교육 등으로 학교가 점점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학교의 비명은 제대로 세상에 들리지 않았다.  2008년 봄과 여름을 벌겋게 물들였던 촛불에 놀란 이명박이 언론을 강하게 틀어쥐었기 때문이다. 특히 MBC의 변신이 놀라웠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진보적인 의제를 앞다투어 방영하며 마봉춘이라 불리던 MBC가 하루아침에 극우수구적인 내용을 쏟아내며 엠빙신이라는 비아냥을 듣기 시작했다. KBS역시 마찬가지고. 


여기에 서울 교육감에 공정택이 들어서자 교사 자리를 지키고 있는것 자체가 고통스럽고 부끄러울 정도로 학교 분위기가 엉망이 되었다. 일제고사 미응시 학생 출결을 무단결 처리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교사들이 해임되는 시대였다. 이때부터 글쓰기는 소질, 적성을 떠나 힐링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 울분을 글로 풀지 않았으면 아마 나는 도저히 교직생활을 이어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화를 글로 푼다. 가령 나를 화나게 만든 사람을  작품속 캐릭터로 집어넣어 마구 굴리는 식으로. 


그런데  그 당시 나 보다 더 답답하고 울분에 찬 사람들이 있었다. 촛불에 참여했다 좌절한 젊은이들, 2002-2003년 광장 문화 속에 청소년기를 보내고 우리나라가 세계 민주주의의 등불 같은 나라라고 믿었다 그 미친듯한 역주행 앞에 당황하며 갈피를 잃어버린 젊은이들. 결국 내 제자들이거나 그 또래들이었다. 이유없는 책임감이 느껴졌다. 그들에게 주류 언론에서 선전하는 내용을 비판하고, 그들이 어른들 앞에 주눅들지 않을 논거를 제공하고 싶었다. 어른들 중에 아직 제정신 놓치지 않은 사람이 얼마든지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우선 나의 힐링, 그리고 그 여력을 바탕으로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그게 나의 글쓰기였다.


전교조 조합원 게시판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나와 블로그를 개설한 까닭이다. 처음에는 이글루스에 블로그를 개설했지만, 이글루스가 자체 생태계 안에서만 글이 맴도는 경향이 있어서  구글 블로거로 무대를 옮겼다. 여전히 '부정변증법'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썼다. 더 많은 사람에게 읽히기 위해  블로그에 글을 써서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글을 확산시켰다. 이제 나의 글은 힐링이 아니라 무기가 되었다.


그런데 블로그만으로는 한계가 느껴졌다. 이명박 정부가 사회과 교육과정에서 민주주의와 관련된 내용을 대폭 축소하고, 우파시장경제학에 치우친 내용을 대폭 늘린 것이다. 블로그 글이나 써서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기도 생겼다. "너희들이 교과서를 엉망으로 만들어? 좋아. 그럼 교과서를 대신할 책을 써 주마." 이런.


하지만 오기를 일단 잠재우고 나니 왜 이렇게 우리 민주주의가 쉽사리 후퇴해버렸는가 하는 고민이 뒤따라왔다. 그 과정은 매우 길고 복잡하니 생략하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민주화 운동은 있었으나 민주주의 교육은 없었다는 것. 민주주의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민주화 운동을 했고, 그리하여 어찌어찌 독재정권을 밀어내기는 했으나 그 다음 스텝인 민주주의의 공고화 과정을 제대로 이끌지 못했다는 것.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학생들이  민주주의를 다만 정리된 개념과 구호가 아닌 그 형성과정에서부터 논쟁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대안 교과서를 만드는 것. 혼자 하기엔 벅차다는 생각에 2001년부터 계속 수업지도안을 함께 개발해왔던 구민정 선생님(훗날 박근혜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부끄럽게도 나는 못올라갔다)과  공동으로 교재를 개발하기로 했다. 이명박이 아무리 엉터리 사회교과서를 강요해도 산뜻하게 엎어버리고 우리가 만든 교재로 수업을 하자고 다짐했다. 그러다 짤리면? 뭐 역사가 평가해 주겠지.


자,  어떤 교재를 만들까? 저쪽이 우편향이라고 좌편향 교재를 만드는건 저들과 같은 수준이 되는 것이니 그건 안 될 일이다.  오히려 우리가 움켜잡아야 할 것은 진보, 보수가 아니라 민주주의. 민주주의를 그 근본부터 다시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는 원론적인 교재를 만들기로 합의했다. 그러다 보니 결론은 민주주의의 '고전'을 읽히자는 쪽으로 갔다. 교과서에서 그저 이름과 한 두 줄의 요약된 내용으로만 존재하는 민주주의의  선각자들, 가령 페리클레스, 플라톤, 로크, 루소 둥둥의  글을 충분히 읽고 생각할 수 있도록 일종의 '정치 독본'을 만드는 것이다. 


아이고 말이 쉽다. 고생문이 열렸다. 페리클레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키케로, 홉스, 로크, 루소, 아렌트 등의 저작, 그리고 권리장전, 미국독립선언, 프랑스인권선언 등 주요한 문서들을 수집하여 일단 선생 두 사람이 먼저 읽고 세미나를 하며 내용을 정리하고 숙지했다. 다음은 이 문헌들 중 어느 부분을 학생들에게 읽힐 것인지 선정했고, 가장 마지막으로는 가장 무식한 작업인데, 그렇게 선정된 부분을 직접 워드로 타자쳐서 입력했고, 여기에 논쟁점, 학생활동 등을 추가하였다.

마침내 A4 100쪽 정도 분량의 정치학 고전 발췌본이 만들어졌고, 이걸 편집하고 학생수 만큼 제본하여 나눠주었다. 의외로 수업이 잘 되었다. 학생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처음에는 교과서를 안 보니까 불안해 했지만, 이렇게 고전 문헌을 읽고 토론하는 가운데 민주주의의 개념을 하나하나 익혀가다 보니 어느새 교과서 내용을 다 알게 되었다며 신기해 했다.

그러자 더 욕심이 생겼다. 이 좋은 경험을 두 사람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만 누리게 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니까. 이걸  전국의 많은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싶었다. 그래서 출판을 목적으로 이 원고를 보강하였다. 어느 정도 되었다 싶어 몇몇 출판사 편집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출판사 홈페이지에 나온 이메일에 무작정  원고를 들이 밀고 출판하자고 요구하는 무식한 방식이었다. 

 거의 대부분 반려되었다. 특히 이른바 진보적인 포지션을 자랑하던 몇몇 유명출판사들이 "상업성"을 빌미로 거절했다. 우리 원고가 반려되었다는 것보다 더 큰 실망감을 느꼈다. 나중에는 거절하는 답장을 받아도 오히려 고맙게 느껴졌다. 아예 응답조차 안하는 경우가 더  많았으니. 


그러던 중 '휴머니스트' 에서 답장이 왔다. 사실 별로 기대 안했다. 웬만한 출판사가 다 "무명 교사 나부랭이가 뭔 책?" 이런 뉘앙스로 거절하고 있었는데, 메이저 출판사에서 이걸 받을 거라곤 꿈도 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편집장이 직접 만나자고 했다. 만났더니 답변이 매우 긍정적이었다. 다만 우리가 보낸 원고 분량이 A4 120 장이 넘어 청소년 책 한권 분량으로는 너무 많다며 난색을 드러냈다. 어떻게든 성사시키려고 원고를 좀 쳐내고 최대한 줄이겠다면 을의 입장에서 매달렸다. 그러나  편집장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틀렸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반전이 일어났다. 

"한권 분량으로 너무 많으니 여기에 논어, 맹자까지 집어넣어 분량을 아주 크게 한 뒤 두권으로 냅시다."

이렇게 하여 사실상의 데뷔작인 <민주주의를 만든 생각들:고대편>, <민주주의를 만든 생각들: 근현대편> 프로젝트가 성사되었다. 물론 이는 계약을 성사시켰다는 것일 뿐, 이후 책이 나오기까지는 2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가장 어려운 작업은 번역이었다. 처음 작성한 원고는 기존 번역본들을 발췌한 것이기 때문에 저작권 문제가 걸렸다. 오래된 고전의 경우는 번역자의 저작권만 남아있기 때문에 기존 번역이 괜찮은 경우에는 번역자에게 연락하여 허가를 구하고, 기존 번역이 다소 미비하거나 (대부분 그랬다), 지나친 가격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아예 원서를 보고 해당 부분을 다시 번역하는 작업을 해야 했다. 지난 40년 동안 읽은 영어 문장보다 이 1년간  읽은 영어 문장이 몇 곱절 많았을 것이다. 이때 아주 학을 떼어, 나는 지금도 번역 의뢰는 무조건 거절한다. 내 생전 두번 다시 번역할 일은 없을 것이다.  

번역에 필요한 원서는 구텐베르크 프로젝트를 이용했고, 새로 번역한 내용은 구민정 선생님과 세미나를 하면서 다듬어 나갔다. 다만 아렌트의 경우는 원저자의 저작권마저 소멸되지 않았기 때문에 번역본을 출판한 한길사에 발췌된 부분 사용료를 지불하였다. 

참으로 힘들고 지루한 작업이었다. 아이를 낳아도 첫 아이가 제일 배아프다고 하는데, 책도 마찬가지였다. <민주주의를 만든 생각들> 이 두권처럼 만들어내는 과정이 어려웠던 책은 이후 10년간 없었다. 그래도 이 책은 발간된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해마다 한 두쇄씩 따박따박 증쇄되며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고, 대한출판문화협회의 '올해의 청소년 도서'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때는 이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생각하지 못했다.  아무 실적 없는  초짜가 처음부터 1) 메이저 출판사와 계약하고 2) 그것도 단 번에 두권짜리 책을 계약하고, 3)'올해의 청소년 도서' 까지 수상했다? 나와 공저자의 노력과 선한 의지가 하늘을 움직인 것이리라. 뒤늦게 깨닫고 감사의 기도와 말씀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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