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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교사 Dec 31. 2019

386세대 이야기 (2)

386은 과연 세대인가?

(지난 이야기)https://brunch.co.kr/@hagi814/3

나이가 30대이며 대학 학번이 80대 이며, 6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을 줄인 386이라는 숫자는 1997년-2003년 사이, 새로운 시대, 젊음, 혁신을 상징하는 코드였다.  이후 이들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486, 586으로 이 숫자를 바꿔 부르다 나중에는 *86세대라는 말까지 생겼지만, 뭔가 견강부회라는 느낌이 든다. 386세대라는 말 자체가 이미 고유명사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숫자는 80년대를 의미하는 8이다. 386이라는 숫자에 현혹될 필요 없다. 그저 이 80년대에 청춘을 보낸 세대 정도면 충분하다. 미국, 유럽에서 온갖 진보적인 사상이 백가쟁명을 이루고, 사회운동이 분출했던 시대가 60년대라면 우리나라는 바로 80년대가 바로 그런 시대였다. 그러니 이 말은 1980년-89년 사이에 20대 시기를 거친 세대를 통칭하는 말이다. 

문제는 과연 이 또래가 이렇게 하나의 코드로 대표될 만큼 공통의 경험과 정서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부끄러운 기억이 하나 있다. 1988년 어느 겨울, 성당에서 구역 활동을 같이 하던 젊은 부부가 있었다. 사회 초년생으로 보이는 초보 직장인 부부였다. 그래서 무심결에 “저 몇 학번이시죠?” 하고 물어 보았는데(대략 84 정도 예상했다), 남자 분이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공고 나와서 회사 다니느라 학번은 없네요.”라고 대답한 것이다. 

아, 그 민망함이란.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무심결에 20대 청년이라면 당연히 대학생이거나 대학 졸업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학번이라는 것이 마치 주민등록번호처럼 20대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그 형님은 그런 식의 말을 자주 들었던 모양, 무던하게 그 상황을 넘겨 주었다. 어쨌든 그 형님과 나는 1980년대에 서로 다른 20대를 보내고 있었다. 

당시 대학은 요즘처럼 고등학교 졸업하면 일단 가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1988년 당시 전대협에서 자주 외치던 구호가 ‘100만 청년 학도 총 단결’이었다. 2018년의 300만명과는 엄청난 차이다. 더구나 당시 초중고등학교 학생 인구는 지금보다 훨씬 많았다. 국민학교(초등학교) 학생수가 무려 600만명이었으니. 실제로 통계청 자료를 봐도 1980년대 대학 진학율은 25%-30% 사이에 있어 70%를 오르내리는 오늘날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당시 대학은 자리도 훨씬 적었을 뿐 아니라 등록금도 오늘날보다 훨씬 비쌌다. 1987년 당시 대학 등록금은 국립대학이 한 학기에 50만원 정도로 당시 환율인 800원으로 환산 하면 700달러, 당시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GNI)인 3,000달러의 1/4 수준이었다. 2018년에는 국립대학 등록금이 330만원. 국민소득이 10배 늘어나는 동안 6.5배 올랐으니, 상대적으로 그 시절 대학 등록금이 얼마나 비쌌는지 짐작할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이던 시절이라 각종 장학금, 저소득층 복지 같은 것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요즘처럼 사회통합전형을 통해 명문대학에 진학하고 학비 감면 혜택을 받아 무사히 졸업한다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러니 대학을 다닌다면  중산층 이상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가지고 있거나, 공부를 비상하게 잘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래서 오늘날과 반대로 명문대학일수록 가난한 학생들이 많았다.

그나마 국립 사범대학과 교육대학이 가난하지만 공부 잘하는 젊은이들이 비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오늘날과 달리 그때는 교직이 대졸자들이 가장 기피하는 직업이었기 때문에 젊은이들을 유인하기 위해 국립 사범대학과 교육대학 등록금이 반값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제외하면 남학생들은 여전히 사대, 교대를 외면했다. 어쨌든 당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은 찢어지게 가난한 지방 남학생과 지방 유력가문이나 서울 중산층 출신 여학생이 뒤섞 다녔다. 

그럼 공부를 비상하게 잘하거나 중산층 상층에 속하지 않은 다른 청년들은? 기묘한 일이다. 그들에 대해서는 남겨진 이야기가 별로 없다. 1980년대에 대학에 가지 않고 취업해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간 2/3 이상의 다수 청년들은 마치 그 시대에 존재하지 않은 것 처럼 취급된다. 그들은 1980년대를 어떻게 경험하고, 어떤 생각을 했으며,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들이 과연 조국, 임종석 등을 자기들을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생각하기는 했을까? 노무현은 분명 그들의 아이콘이었겠지만. 

그래서 이  386세대라는 말은 문제가 많다. 이 말 속에는  당시 대학에 다니지 않았던 사람들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  386=학생운동 이라는 등식이 너무 당연하게 박혀 있는 것이다. 이래서는 도저히 ‘세대’라는 말을 쓸 수 없다. 386은 하나의 세대가 아니라 그 세대 중 1/4에 해당되는 특수한 집단을 말할 뿐이다. 지금 50대를 이루는 사람들 중 당시 대학을 다니지 않은 2/3 이상의 사람들을 포괄할 어떤 공통성을 흔히 말하는 386들이 가지고 있어야 이 숫자를 하나의 세대라고 지칭하는 말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가지고 있을까? 가장 큰 문제는 여기에 대해 그렇다, 아니다 대답할 수 없다는 것이. 1980년대에 대학에 가지 못한 다른 60년대생 청년들이 그 시대에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에 대해 우리는 너무도 아는 바가 없다.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인 작가, 감독, 학자도 거의 없다. 오히려 그들보다 조금 윗세대의 대학 미진학자들은 학자나 예술가들이 다루었다. 물론 일반적인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추상적인 '노동자'로서, 인격화된 '가난'으로서. 그들은 절대 다수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시대의 유령처럼 감추어져 있다. 

나 역시 그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러니 지금부터 내가 말하려는 경험담 역시 매우 제한적이다. 나는 그들에 대해 모른다. 따라서 나는 386세대를 모른다. 모르는 것에 대해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앞으로 내가 말하려는 경험은 386세대 중 대학에 진학한, 그것도 문재인 대통령이 콕 찝어 공식화한 “서울지역 주요대학”에 진학한 소수 집단의 경험일 뿐이다. 어쩌면 그 소수 집단의 경험이 마치 한 시대를 대표하는 것 처럼 포장되고, 우리나라의 민주화가 그 소수 집단의 공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자체가 한국 사회의 모순을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음 편 부터는 세대라는 글자를 빼고 386 이야기로 제목이 변경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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