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학번이라고 다 같은 세대는 아니다
60년대에 태어났다고 비슷한 청년기를 보낸 것은 아니라고 했다. 30%도 안되는 사람들만 대학에 진학했으며, 고졸학력으로 취업이나 다른 길을 간 60년대 출신들의 삶은 놀랄 정도로 알려진 바가 적고, 그들의 삶을 드러내고 재조명하지 않으면 세대로서 386은 의미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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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대학에 간 386들 역시 공통의 경험을 한 것이 아니며,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흔히 요즘 젊은이들, 그리고 특히 90년대 학번들에게 알려진것과 달리 386 세대 중 대학시절 민주화 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의 숫자는 의외로 적다.
요즘이야 민주화 운동이라고 부르지만 당시 어른들은 "데모한다"라고 했고, 대학생들은 "학생운동"이라고 했다. 여기서 미묘한 인식의 차이가 있는데, 어른들 입장에서는 길거리에 나와서 시위하는 것은 모두 한통속이었지만, 학생들 입장에서는 시위 한 두번 참가한 것 가지고는 참여라고 보지 않았다.
그렇다면 당시 "학생운동"에 참가한 대학생은 얼마나 되었을까? 여기에도 다양한 층위가 있었다. 명칭은 편의상 붙였는데, 80년대 대학생들 중에는 최소한 다음과 같은 다섯 유형이 있었다. 386 세대라고 다 운동권 혹은 운동권 동조자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니 386세대는 민주화 세대, 386 세대는 진보적인 세대라는 식의 단순화는 매우 위험하다.
이 명칭은 내가 임의로 붙인 것이며, 대부분은 나의 경험과 기억을 근거로 쓴 것이니, 과도하게 믿지 않기 바란다. 참고로 나는 여기서 운동권, 다시 PD라는 전위조직에서 대중활동가였다.
운동권에 다시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학생운동의 이념, 정책, 투쟁방향을 결정하고 이를 내려 보내는 말하자면 머리 역할을 하는 집단이다. 이들은 대중에게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80년대 초반까지는 흔히 타워라고 불렀으며, 레닌주의가 보급된 이후에는 vg(vanguard의 약자)라고 불렀다.
다른 하나는 대중과의 접촉면을 이루는 오픈활동가들이다. 흔히 알려진 명망가들이 여기 속한다. 이들은 작게는 과나 동아리에서 학회장, 과회장 등을 맡으며, 크게는 단대, 총학 단위 학생회 간부를 맡으면서 "겉보기에는" 학생운동의 지도부를 이룬다. 그러나 이들은 철저히 나름의 VO(Vanguard Organization), 즉 지하조직에 속해 있으며,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전위들과 소통하면서 활동방향을 정한다(말이 좋아 소통이지 사실상 지령에 가깝다).
운동권에서 학생회 등 겉으로 드러난 조직의 위계체계는 별 의미가 없다. 학생회 간부가 학생회장과 다른 전위조직에 속해 있다면 학생회장을 보좌하거나 명을 받는 대신 견제하기도 하며, 낮에는 학생회 하급간부가 밤에는 학생회장보다 상급 조직원으로서 지도편달을 하기도 한다. 하여간 겉보기와 다르다.
이 운동권에 대해서는 따로 시간을 내어 포스팅 하기로 하겠다. 이들이 어떻게 발탁되고 만들어지고 어떤 문화를 이루었는지. 또 소위 말하는 엔엘과 피디는 어떤 조직이며 무엇이 다른지.
그럼, 이 운동권은 얼마나 될까? 10% 이내다. 아니 이것도 너무 많이 잡았다. 과회장 숫자보다 적다. 과회장이라고 다 운동권은 아니니. 가령 내가 몸담고 있던 서울대학교의 경우 전체 학생이 18000명 정도 되었는데, 약 300명 정도의 엔엘, 150명 정도의 피디 활동가가 지하에서 암투를 벌여가며 움직이고 있었다. 이것도 넉넉잡은 숫자다. 사범대학의 경우는 전체 학생이 2000명 정도였는데 전위조직에 속한 활동가는 엔엘이고 피디고 합쳐서 100명을 넘지 않았다.
운동권 조직에는 속하지 않지만, 시쳇말로 '데모 깨나 하는' 학생들이다. 사실은 운동권보다 이들이 숫자가 더 많다. 그리고 그 성향도 운동권보다 더 진보적인 경우가 많다. 이들은 성실하게 후배 챙겨가며 시위현장으로 안내하고, 교양교육(좌편향의 역사, 경제, 정치, 이념 도서 세미나 진행) 시키고, 과나 동아리의 이런 저런 자치활동 담당하는 사실상 "학생운동의 중추세력"이나 다름 없다. 이들은 사실상 운동권이나 다름 없으며, 실제로 운동권들과 상당한 연결망을 가지고 있고, 정파에 속해있지는 않아도 나름의 정파 성향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런 역할을 담당하던 학생들은 대체로 여학생들이었다. 조직에 속한 운동권과 이들을 모두 합쳐면 대체로 10% 정도가 나온다.
이들은 평소에는 일반적인 학생이지만, 사안이 발생하면 기꺼이 집회와 시위에 뛰어드는 집단이다. 사실상 이들이 숫자가 제일 많고, 흔히 386 하면 떠오르는 사람들의 이미지도 대부분 여기서 비롯된다. 이들은 주로 1학년때는 선배 따라 집회, 시위 자주 나가고 이념교육 세미나에도 참석하지만, 2학년때 부터는 전공공부나 취업준비쪽으로 슬슬 빠지고 3학년 때는 때때로 아주 큰 이슈가 터지면 시위에 참가하고 4학년때는 사실상 운동과 상관없는 삶을 산다. 즉 1,2학년때 좀 하고 3, 4학년때는 거의 안한다.
이들은 나름 이념 교육을 좀 받기는 했지만 존재론적인 고뇌가 느껴질 정도로 진지하고 깊게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섵부른 정의감, 선악이분법 수준에서 울컥하며 투쟁에 참가했던 1, 2학년, 그리고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운동과 거리를 둔 3, 4학년 이후로 대학생활이 나뉘어진다.
그런데 흔히 PX병이 군대 이야기는 제일 열심히 한다는 속설처럼, 80년대 시절 "나 때는 말이야"를 제일 자주 시전하는 사람들도 대체로 여기 속하는 "남자들"이다. 그러니 회사나 가정에서 50대 아저씨들이 민주화 운동 시절 이야기 늘어 놓으면 그냥 라테 마시며 흘려듣자. 대부분 1, 2학년때 선배 따라 몇번 나간 게 전부이며, 무시무시한 이념서적도 한권을 제대로 못 끝낸 경우가 대부분이다.
운동권, 대중활동가, 진보대중을 모두 합쳐도 30% 정도에 불과하다. 가령 어느 학과 학생이 모두 100명이라고 치면(학년당 25명) 3,4학년 중에는 운동권과 대중활동가까지 5명 정도, 그리고 2학년 10명, 1학년 15명 해서 30명 정도가 학생운동이 포괄할 수 있는 전체, 그러니까 데모에 나서는 학생들의 전체집합이다.
그러니 당시 20대를 보낸 사람들을 700만명 정도라고 잡는다면 이 중 대학진학자 200만명, 그리고 다시 그 중에서 30%인 60만명 정도만이 데모 좀 해 본 사람들이다. 생각보다 훨씬 적지 않은가? 전체 10%도 안되는 사람들의 경험과 문화, 그것도 그 10% 중에 3% 정도의 문화가 이 시대를 대표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나머지 90%는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았는지, 그 시대를 살았던 성실한 지식인들이라면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형상화 하고 복원해 놓아야 할 것이다.
당시 서울대학교 중앙광장(아크로광장)에는 두개의 큰 계단이 있었다. 그 계단 사이에는 잔디밭이 있었는데, 계단 하나를 가득 채우면 700-800명 정도였다.(이건 직접 세어 본 것이니 틀림없다). 계단 하나와 사이 잔디밭까지 조금 침범하면 1000명. 계단 두개를 다 채우고 가운데 잔디밭까지 채우면 3000명. 광장 전체를 다 채우면 5000명. 그런데 저 광장에 5000명이 모이는 경우는 총학생회장 선거가 아니면 6월항쟁 정도였고, 보통 집회 된다 싶으면 1000명, 크다 싶으면 2000-3000명이었다. 전체 학생을 18000명 정도로 잡고 앞의 비율을 곱해보면 바로 들어맞는다.
그럼 나머지 70%의 학생들은 운동권에 반대하는 보수적인 학생들이었을까? 그렇지는 않다. 그들을 대체로 이렇게 나눠볼 수 있다.
3) 심정적 동조자
4) 방관자
5) 회의적 방관자
이들에 대해서는 다음에 계속 다뤄 보기로 하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