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교사 Apr 25. 2021

젊은 교사에게 드리는 편지: 교사의 보수

돈? 당당하게 받으세요

오랜만에 편지 드립니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사실 이 편지의 제목은 거의 1년 전에 써 놓고 있었는데, 이런 저런 일이 겹치다 보니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계속 미뤄두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민감할 수 있는 주제이니까요.


바로  이야기입니다.


이상하게 우리나라는 "돈"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면 도끼눈을 뜨고 쳐다 봅니다. 가령 어디서 원고의뢰나 강의 의뢰가 들어올때 원고료나 강사료를 얼마를 지급할 것인지 의뢰 메일에 명시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저는 이런 경우 반드시 물어봅니다. 하지만 그 마저도 "그래서 얼마를 주실 겁니까?"라고 물어보지 못하고 "좀 더 구체적인 정보를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렇게 물어보게 됩니다.


사실 우리 모두 돈을 좋아합니다. 세상에 돈 많이 버는 것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있습니까? 하지만 누구도 돈을 대놓고 거론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마치 더럽고 타락한 사람 취급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사회에는 자기도 모르게 "나의 노력에 대해서는 금전적 보상을 바라지만, 다른 사람의 노력에 대해서는 헌신과 봉사를 바라는" 이중적 태도가 뿌리깊게 박혀 있습니다. 특히 크건 작건간에 성직관의 영향을 받기 마련인 교사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박봉"의 이미지. 그 박봉에도 불구하고 오직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헌신으로 그 힘든 일을 묵묵히 수행하고, 심지어 자기 주머니를 털어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교사상이 아직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나라 교사들은 부수입은 커녕 정상적인 월급과 수당을 받으면서도 미안함을 느껴야 하는 이상한 사회적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이상한 압력은 언제나 교사들 스스로 동료 교사들의 결점을 찾도록 만듭니다. " 교직 사회에 월급 도둑이 이렇게 많다니."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나의 동료 교사들은 훌륭하다. 적어도 월급 값 만큼은 충분히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식의 말은 영 인기가 없습니다. "사회적으로 적지 않은 보수를 받고 있는 우리 교사들 중에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교직사회의 자정작용이 너무 미약합니다." 이런 식으로 말을 해야 언론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시민사회에서도 박수를 칩니다.


인구의 80%가 우을증이나 강박증의 위험요인을 가지고 있는  한국 사회의  특성상,  땅의 사람들은  자신의 자책감이나 불안을 달래줄 희생양을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그래, 저것들이 문제야" 하고 말할  있는 대상의 좌표를 찍어주면 박수치며 몰려가서 손가락질 하기 마련입니다. 교사가 교직사회 바깥의 시선을 끌고 언론의 스팟라잇을 받고 싶다면 "내탓이오"를 세련되게 말하는게 제일 빠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이렇게 말할겁니다. "교사들이 다 선생님 같은 분들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네 축하합니다. 셀럽이 되신겁니다.


하지만 문득 생각해 봅니다. 혹시 우리 사회는 자기가 한 일이 "월급 값어치" 를 하는지 판단하는 기준은 낮게 잡고, 상대방에 대해서는 높게 잡는 집단적 이율배반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닐까 말입니다. 이런 집단적 이율배반에 빠져 있는 비율이 유독 교사들만 좀 낮은 것은 아닌지? 그래서 유독 교사들만 "혹시 내가 월급 값어치에 미치지 못하는 퍼포먼스를 내는  아닐까?"라는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아닌지? 실제로 직종을 막론하고 "우리 동료들 중에 솔직히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 있는 게 사실입니다."라는 식의 고백이 내부에서 상당한 박수를 받는 경우는 없거든요. 오직 교직사회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런 말을 꺼낼 때 우리 사회가 "참 양심적이군요. 그렇지 않습니다. 힘내세요"라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사회가 아니라는 것은 다들 알고 있죠?  공연한 자책과 불안으로 스스로를 그리고 동료들을 먹잇감으로 던져주는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구나 그런 식의 자학적, 자책적 교직관을 설파하는 분들 중에 자기 자신을 "월급값 못하는 부류" 포함시켜 반성하고 자책하는 경우는 별로 못봤습니다. 그런 식의 담론은 항상 " 빼고 나머지 말입니다." 은연중에 전제하고 있죠.


물론 우리 주변에 제 역할 못하는 교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연공급이 주어지는 직종이라면 어디나 다 있는 현상이며, 교직에 그 비율이 특별히 높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오히려 더 낮을 것이라고 봅니다.사실 50대 이상 교사들의 정보화 지수가 원격수업이 요구하는 수준에 간당간당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른 직종 50대 이상의 정보화 지수와 비교해 보면 월등히 높습니다. 왜냐하면 어쨌든 실무를 뛰고 수업을 해야 하니까요. 50 넘어갔다고 실무에서 빠져 관리 업무만   있는 한가한 직종이 아니니까요.


자뻑도 자학도 모두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교사들은  동안 자학은 너무 많이 하고 자뻑은 너무 적게 한게 아닐까요? 이제는 자뻑 좀 해도 됩니다. 주변 동료 선생님들에게서  "이상한 교사"의 증거를 찾으려 하기 보다는, 배울 점과 이해할 점을 찾아보는 노력이 너무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흔히 교직사회더러 자꾸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합니다면,  안으로 굽은 팔이 자꾸 자기 뺨을 때린다면 아니 굽은만 못하겠죠.


말이 자꾸 엇나갑니다. 그냥 한 줄 정리하겠습니다. 교사의 보수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습니다. 세상이 뭐라고 질투의 말을 쏟아내건, 그냥 당당하게 받으세요. 방학도 당당하게 누리세요. 설사 우리가 스스로 세운 기준에 못미친다 할지라도 자책하지 마세요. 어쨌든 대한민국 모든 직종을 통틀어 그래도 가장 제대로 일하고 있는 직종임에는 틀림없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젊은 교사에게 드리는 편지: 교사의 소셜 미디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