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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교사 Mar 10. 2020

어린이집 교사가 신종 코로나 확진받은  날


2020년 3월 8일, 포항의 어느 어린이집 교사가 신종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더구나 증상이 있는 상태에서 6일간이나 계속 근무를 했다고 하여 더욱 큰 파문을 일으켰다. 해당 어린이집은 즉시 격리 처분되었고, 6일간 그 교사의 지도를 받은 어린이들이 격리되었다. 여기까지는 이미 각종 뉴스와 신문을 통해 다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보도되지 않은 사실이 있다. 바로 그 뉴스에 붙은 댓글들이다.


당연히 댓글들은 비난 일색이었다. 20대 중반의 젊은이를 거의 산채로 매장할 기세. 그런데 그 악플들이 한결같이 어린이집 교사가 아니라 ‘젊은’, ‘여교사’를 공격하고 있었다. “아이고, 이 아가씨야, 제정신이냐?”라는 베스트 댓글은 그중 압권이었다. 그 밖에도 “신천 지지?”, “사회 혼란을 위해 일부러 바이러스 배달한 거다. 마녀 바이러스 배달부”, “20대 여자면 일단 신천지” 등과 같은 종류의 악플들이 거의 1초 간격으로 몇 개씩 붙었다. 물론  그 어린이집 교사가 잘한 것은 없다. 그 시시비비는 다른 데서 따지기로 하고, 설사 잘못했다 하더라도 그 잘못에 해당되는 응분의 법적인 처벌 이외에, 인터넷 상에서 인격 살해에 해당되는 린치를 받을 이유가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네티즌 중에는 양식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확진자를 공격하기 전에, 증상이 있는데도 출근해야 하는 사정이 뭔지 따져야 하는 것 아니냐?”,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휴교까지 하는데, 돌봄 교실을 계속하면 차라리 개학하는 게 났지 이게 뭐냐?”, “긴급 돌봄이면 긴급 인력도 충원해야 하는 거 아닌가?” 등등의 상식적인 댓글도 붙었고, 그게 대중들에게 더 설득력이 있었는지, 교사 개인을 공격하는 악플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여기서 반전이 일어났다. 


“전염병이 도는데 엄마가 애들을 데리고 있어야지, 왜 내 보네?”, “애들은 공짜 도시락 먹이고 자기네는 어디 가서 수다나 떨겠지.” “하여간 요즘 엄마들 약아가지고선, 애를 안 챙겨” 등, 비난의 대상이 어린이집 교사에서 엄마들에게 넘어갔다. “아니 원장X은 뭐하는 X길래 아픈 직원을 계속 출근시켜?” 이런 친노동성 악플까지 붙었다. 이렇게 악플의 공격 대상이 바뀌었지만, 그 본질은 그대로였다. 그건 바로 ‘여자’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정작 그 날은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상당히 평온한 날에 속했다. 날마다 500명 이상 늘어나던 확진자 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그러자 보건복지부 장관이 마이크를 잡고 이제 COVID19의 기세가 꺾였다며 희망의 목소리를 내면서 "우리나라의 방역대응이 다른 나라의 모범 사례가 되고 있으며, 세계적 표준이 될 것이다"라고 자화자찬했다. 어쨌든 열심히 했고, 헌신적으로 막았고, 실제로 확진자 증가 추세가 꺾였으니 박수를 쳐주자.  


박수를 치다 보니 뭔가 이상하다. 확진자가 하루에 500명 이상 쏟아지고, 국민들이 마스크 대란으로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기간에 늘 마이크 앞에 서서 난감한 상황을 전하고, 기자들의 까다로운 질문공세에 대응했던 분은 저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분의 얼굴이 갑자기 언론에 노출되는 빈도가 줄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달에도 그랬다. ‘코로나 사태 종식’이라며 축포 분위기로 전환하던 2월 15일 경부터 늘 보던 얼굴이 아닌 다른 얼굴들이 너도 나도 튀어나와 우리나라의 훌륭한 방역에 대해 자화자찬했다. 


절대 그것 때문은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그분은 여성이고 다른 분들은 남성이다. 어려울 때 난감한 말을 전하기 위해 카메라 앞에 선 것은 여성이었고, 어려움이 끝난 것처럼 보여 공치사하고 자화자찬할 자리에 선 것은 남성이었다. 


3월 8일. 포항의 어느 어린이집 교사가 아픈 상태로 계속 출근하다 마침내 신종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던 날, 아픈 상태로 출근했던 여성이 차마 다시 인터넷에 접속하지 못할 정도의 린치를 당하고, 그게 너무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자, 이번에는 ‘요즘 엄마들’이 그 욕을 대신 받아먹었던 날. 코로나 전선에 대한 보고는 “적의 기세가 꺾였고 이제 우리가 승기를 잡았다”는 식으로 올라간 모양이다. 그동안 전선을 지휘하며 악전고투한 여성 사령관 대신 남성들이 다시 나타났다. 그들이 마이크를 잡고 외친다. 

“보라, 이 위대한 승리를! 세계에 자랑할 승리를.”


그냥 억측이기 바란다. 억측일 거다. 그 날이 바로 그 날이니만큼 그냥 최악의 상황을 한번 가정해 봤다. 너무 뭐라 하지 마라. 

포항 어린이집 교사가 코로나 확진을 받던 날, 남성들이 코로나 전쟁의 승리를 장담하며 자화자찬하던 날. 3월 8일.

그날은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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