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을 이해하는 토막 생각
5년마다 돌아오는 대통령 선거. 그 때 마다 후보들이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자신의 어린시절 가난을 자랑한다. 누가봐도 부유층이 아닌 다음에는 한결같이 어린시절 넉넉하지 못한 살림 속에서 고생한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을 피력하고,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음을 과시한다.
역대 대통령 당선자 중 "어려서부터 우리집은 가난했었고"를 노래하지 않은 사람은 김영삼 대통령 정도일까? 확실히 '작은 거인'이라는 별칭답게 부유하게 자란 성장배경에 대해 추호도 거리낌 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막상 세상에 비춰지는 본인의 삶은 도리어 김대중 대통령보다 소박했고, 특히 부인이 더 그랬다.
어려서부터 가난하지 않았을뿐더러 현재 삶의 모습도 소박해 보이지 않은 후보는 어김없이 낙선했다. 이회창이 그랬고, 정동영이 그랬으며, 정몽준이 그랬고, 안철수가 그랬다. 그들은 모두 상대적으로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주장하거나 그렇게 보이는 경쟁자에게 패했다. 문재인 역시 "생각보다 부유하다"는 것이 밝혀지자(수백만원짜리 안경테와 의자) 우수수 표가 떨어져 나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난을 높이 평가하는 청빈의 판타지라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막상 현실 속에서 그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어떻게든 실제보다 부유해 보이려 애 쓰는 기색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자동차 크기로 등급을 나누는 저열한 문화를 보라. 한국인의 디엔에이에는 조금이라도 가난의 흔적이 엿보이면 푸대접 받고 모욕당할 수 있다는 공포감이 새겨져 있는 것 같다. 물론 그 디엔에이는 상대가 조금이라도 자신보다 가난하다고 느껴지면 모욕하고 갑질할 준비가 되어 있기도 하다.
그렇다고 자신보다 부유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가난할 수 없고, 가난해 보여서도 안되지만, 나 보다 부유한 사람들을 인정할수도 존경할수도 없다. 내가 가난한 것은 사회 부조리 탓이며, 남이 가난한 것은 그들의 무능함과 열등함 때문이다. 내가 부유한 것은 나의 능력과 노력 때문이며 남이 부유한 것은 물려받은 재산과 부정한 방법 덕분이다. 바로 이 심리가 "어려서는 가난했지만, 지금은 가난하지 않고, 그렇다고 나 보다 지나치게 부유하지 않은" 그런 후보를 선호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여기에 중요한 것을 하나 보태야 한다. 믿을 수 없겠지만 한 때 가난이 권력의 기반이 된 시대를 경험했다는 것. 바로 1980년대다. 그 때는 정말 가난이 권력기반이었다. 집안이 가난할수록, 고향이 광주전남에 가까울수록(그리고 남자일수록) 학생운동 판에서는 출신성분이 좋은 것으로 쳤다. 그리고 1980년대 주요 대학 학생회는 총학생회는 물론 과 학생회까지 학생운동권이 아니면 아예 얼씬도 하지 못했다. 운동권에서의 서열이 곧 캠퍼스에서의 서열이었다. 그래서인지 당시 학생들(특히 남자 운동권)은 가능하면 가난해 보이려고 애썼다. 그런가 하면 마음의 다른 한편에서는 부유한 집안 출신의 학생들을 선망하기도 했다.
가난을 과시하면서 부를 선망하는 이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마음. 이 둘이 결합하면 기괴한 마음의 괴물이 만들어진다. 어쩌면 여기서 *86 세대의, 특히 운동권 출신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의 동기가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국으로 대표되고 이재명으로 화룡점정을 찍는 바로 그것. 그 마음은 일그러진 괴물이기 때문에 의식적인 동기가 아니라 무의식적인 동기이며, 따라서 본인들도 모를 수 있다. 아니 모를 것이다. 그러면서 방어기제로 정의감의 외피를 덮고, 가공의 적을 만들어 자신의 부끄러움과 당혹감을 적개심으로 바꾸어 투사한다.
부끄러움과 당혹감을 덮기 위한 적개심이기에 그것은 화해불가능하며 적이 아니라 자신이 쓰러질 때 까지 계속된다. 내가 부유한 것은 단지 정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수적인 현상이지만 저들이 나보다 부유한 것은 사악한 무리들에게 부역했기 때문이라는.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적, 새로운 악당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해치워도 해치워도 악의 무리는 계속해서 나온다. 그 뿌리인 자신의 뒤틀린 마음이 해결되지 않는 한 끝 없는 선악의 갈라치기가 계속된다.
무섭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