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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교사 May 06. 2022

디지털 인재 양성이라는 반디지털 교육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로 교육과정을 개정하여 소프트웨어 인공지능 시수를 확대하겠다는 주장이 나왔다. 여기에 교사에게 디지털 연수를 강화하여 궁극적으로 디지털 인재 100만명을 양성하겠다는 목표까지 제시하고 있다. ​

 이 말을 보고 떠오르는 생각은 딱 하나다.

"이 사람들, 디지털, SW, AI 시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디지털, SW, AI가 21세기 사회 변화의 핵심적인 기술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 기술을 움켜쥔 애플과 같은 기업이 해마다 우리나라 기업 전체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것은 확실히 부러운 일이다. 하지만 100만이라는 숫자에서 볼 수 있듯 기술이라는 것이 기술자들을 갈아 넣음으로써 개발할 수 있다고 믿는 한 애플 같은 기업은, 스티브 잡스 같은 인물은 절대 나오지 못할 것이다.  기술은 어디까지나 기술, 즉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 기술이 힘을 발휘하려면 "그 기술을 이용하여 뭔가 더 잘 할 수 있다."는 생각, 그럼으로써 "변화를 일으키겠다."는 동기와 유인이 있어야 한다. 인수위에서는 그 유인으로 정보, 소프트웨어 교과를 수능과목에 넣은 것을 고려했다는데, 디지털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목적이 고작 "대학입시"라면, 그렇게 기술을 익힌 학생은 100만명이 아니라 1000만명이 있어도 하청업자 이상은 되지 못할 것이다.

14년 동안 애플의 교육혁신 프로그램(Apple Classroom of Tommorow 21)을 이끌었던 카우치 부사장은 새로운 교육의 목표를 "학생과 관계가 있는 도전할만한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결과물을 만들어 공유하는 과정에서 기술을 응용하고, 창의성을 발휘하고, 협동과 팀웍을 배우면서 세상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 이라고 하였다. 이런 학생이라면 수능 같은 지엽적이고 하찮은 이유 때문에 디지털 기술을 공부하지는 않을 것이다. 당장 애플만 해도 차고에 모인 컴퓨터 동호회에 가까운 몽상가들의 취미생활에서 출발했으니 말이다. ​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메타 등의 협찬을 받아 오바마 정부가 실시했던 교육혁신 ConnectED 의 목표도 디지털 기술자 1000만명 양성이 아니었다. 일상 생활에서 디지털 도구를  다루며 능동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일반인을 키우는 것이었다. 1000만명의 엔지니어가 아니라 2억의 동호인을 키우는 것이다. 이들은 자바, 파이선 따위의 언어는 몰라도 코딩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논리는 이해할 수 있고, 그 논리에 따라 자신의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코딩은 전문가들이 하면 된다.

실제로 구글플레이스토어와 애플앱스토어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코딩 교육 프로그램은 코딩적으로 생각하기, 즉 컴퓨팅 사고능력을 익히는데 주안점을 두고 자바든, 파이선이든 구체적인 언어 자체는 굳이 배우지 않게 구성되어 있다. 코딩을 배우기 전에 컴퓨터, 기계(비록 모니터 상의 기계지만)를 실제로 움직이게 프로그램하는 경험부터 제공하는 것이다.   


  생애주기별로 교사에게 디지털 연수를 의무화 하겠다는 발상도 정말 한심하다. 다들 알다시피 나는 5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은 세대보다도 디지털 역량이 오히려 뛰어나다. 하지만 나는 디지털 기술에 대해 어디 가서 배운 바 없다. 그럼 이걸 다 어디서 익혔을까? 필요한 일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필요했고, 그래서 기술을 사용하다 보니 그냥 익혀진 것이다. 기술은 그렇게 익혀지는 것이다.​


교사의 디지털 역량을 강화하고 싶은가? 그럼 교사가 디지털 역량을 발휘할수록 보람이 느껴지고 업무가 효율적이 되도록 조건을 조성하면 된다. 그러면 교사들은 알아서 배우고 익혀서 디지털 고수가 될 것이다. 교사가 인공지능 코딩을 짜서 적용하면 생활기록부 작성 업무가 1/10로 간소화 된다면 누가 그걸 공부 안하겠는가? 그런데  업무 환경과 조직 체계는 조선시대 겨우 면한 수준으로 해 놓고, 교육과정 제일 마지막에 반복패턴 연습의 끝판왕인 수능정시를 배치해 놓고 디지털 역량 강화 연수만 시키면 무슨 소용인가? 그냥 업무만 추가되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로 할 수 있는게 없고, 한다고 해도 학생들의 필요와 만나지 못하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문재인 정부는 디지털 기술에 무관심해서, 그래서 흙냄새나는 중세 복고론자라 문제, 윤석열 정부는 디지털 기술에 대해 산업입국 식으로 관심을 가져서 문제. 이런식이면 미국은 커녕 대만마저 넘사벽으로 멀어질 가능성이 크다. ​


어째서 발명교육이 메이커교육으로 이름이 바뀌었는지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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