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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교사 May 24. 2020

정년 퇴직의 꿈을 버리세요

젊은 교사에게 드리는 두번째 편지(3)

평교사 정년퇴직은 교사의 로망?


처음 부터 이런 이야기부터 해서 미안합니다. 하지만 시작과 끝을 알아야 그 사이에서 적절한 행동의 지침, 즉 중용의 도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곧 교직에 발을 디디게 될테니 그 시작은 분명합니다. 그러니 그 끝을 어디로 잡을지 알아야, 그 사이에 여러분이 어떤 교사로서 어떤 경력을 쌓아 갈 것인지 개략적인 계획이라도 세울 수 있게 됩니다.


저는 '정년 퇴임' 아예 선택지에서 빼라고 제안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 정년까지 고용이 안정된 직장에서 정년을 포기 하라니 하는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심지어 정년이 보장되어 있다는 것이 교직을 선택한 중요한 이유였던 분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실제로 정년퇴직하는 교사가 매우 드물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게다가 나는 그게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혹시 이런 로망을 가지고 계시나요? 승진이나 다른데 한 눈 팔지 않고, 오직 아이들 가르치는 일에만 모든 힘을 다 쏟아 붓고, 평교사로 정년퇴임하는 백발이 성성한 참교사 이야기. 그깟, 교감, 교장 자리, 애들 가르치는 자리에서 밀려나는 것이니 줘도 안한다.  이런 자존심과 사명감으로 거의 반세기를 지켜왔던 정든 교단을 떠나는 선생님. 백발이 성성하고 주름 하나하나에 세월이 아로새긴 지혜가 숨어 있을 것 같은, 노교사가 후련함과 서운함이 섞인 착잡한 모습으로 후배들의 박수를 받으며 정든 교단을 떠나는 모습. 생각만 해도 뭉클해집니다.


그런데요, 학교에는 그딴 거 없습니다.


당장 저만 해도 지난 10년 사이에 평교사의 정년퇴임식은 딱 한 번 봤습니다. 그 밖에는 교장의 정년퇴임식을 두 번 봤을 뿐입니다. 심지어 교감도 정년퇴임 하는 거 못 봤습니다. 그러나 퇴임하는 교사는 많이 봤습니다. 그 퇴임은 거의 대부분 명예퇴직이었습니다. 정년을 2년 남겨두고 명예퇴직하는 분은 꽤 오래 버틴 분입니다. 대개는 5년, 심지어 10년 씩 남겨두고 명예퇴직으로 교단을 떠났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할 노릇입니다. 그냥 퇴직이 아니라 '명예'가 붙은 퇴직이니, 뭔가 특별한 것이라야 하는데, 이미 학교 현실은 명예퇴직이 정상적인 퇴직이고 정년퇴직이 매우 특별한 그야말로 ;명예로운' 퇴직이 되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정년을 남겨두고 명예퇴직하는 교장은 28년동안 같이 근무했던 교장 중에 단 한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정말입니다. 단 한 명도 못봤습니다. 교사가 정년을 한참 남겨두고 명예퇴직하는 것은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교장이 만약 명예퇴직을 하면 "무슨 일 있는거지?" 하며 궁금해 합니다.  교장은 정년까지 채우는데 교사는 정년을 한참 남겨두고 물러나는 이 기묘한 대비 속에 어쩌면 우리나라 학교의 중요한 근본 문제가 숨어 있는게 아닐까 의심해 봅니다.


정년은 족쇄


옛날에는  교사의 정년퇴임식이 드물지 않았습니다. 저도 지난 10년 사이에 교사 정년 퇴임을 단 한번 봤을 뿐, 처음 발령 받았던 1992년부터 2000년 사이에는 거의 한 해 건너 한 번씩 정년 퇴임하는 교사를 봤습니다. 더구나 1997년 이전에는 정년이 62세가 아니라 65세였습니다. 굉장한 나이입니다. 그야 말로 할머니 할아버지 아닙니까?


왜 이런 차이가 일어난 것일까요?  그 시절 선생님들이 요즘 보다 사명감이 더 높아서였을까요? 아니면 지금보다 그때가 교직이 덜 고달파서였을까요? 혹은 이도 저도 아닌 또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요?  가서 물어 보기 전에는 알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그 당시 정년 퇴직한 분들중 지금 생존해 계신분들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 시절 정년퇴직한 교사들의 잔여 수명은 평균 10년을 넘지 못했습니다. 정년 퇴직하면 그 동안 잊고 있었던 질병들이 쏟어져 내리면서 생명을 앗아가 버렸던 것이죠.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요? 그 시대는 그렇게 아름다운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과거를 미화합니다. 심지어 군대 경험마저 미화합니다. 제대한 사람들의 무용담만 듣다 보면 군 생활은 물론 심지어 전쟁까지 낭만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사람은 나쁜 기억보다는 좋은 기억을 선별적으로 보존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사실 그게 정신 건강에는 훨씬 유리할테니까요.


그래서일까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를  옛날에는 이렇게 좋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걸 망쳐버린 인류가 다시 그 멋진 과거로 돌아가는 과정으로 보는 관점이 많습니다. 유교나 기독교, 심지어  헤겔의 역사관 조차 그렇습니다.  여기서 역사는 일단 한번의 타락 이후 다시 원점을 찾아가는 거대한 원환 운동의 과정입니다. 그리고 적어도 그 원환운동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멈추지 않기 때문에 그 순간을 살아가는 사람은 역사를 계속되는 진보의 과정으로 느낍니다.  그 진보의 종점이 원점이지만 말입니다. 심지어  마르크스주의의 역사관 역시 사적소유라는 원죄로 더럽혀진 인간의 삶이 다시 사적소유의 종말로 돌아가는 원점회귀의 진보입니다.


이런 사변적인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사실 진보의 동력이 되는  원점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들이기 때문입니다. 에덴 동산은 존재하지 않았고, 삼황오제 시대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원시 공산주의 역시 마르크스가 생각하는 그런 목가적인 풍경이 아니었을 것이며, 그 안에 계급과 차별 역시 존재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사가 65세까지 근무하다 정년퇴직하던 시대 역시,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정년까지 교직생활을 완주했다기 보다는 다른 길을 찾아나서지 못해 정년까지 가고 말았다고 보는 쪽이 나을 것입니다. 심지어 명예퇴직조차 주어진 길을 이탈하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선택하기 어려웠을수 있습니다.  

다른 길을 돌아보지 않고, 한 눈 팔지 않고 교육의 외길을 걸었다는 찬사도 오히려 달리 들으면 불쾌합니다. 결국 다른 삶을 생각하지 못해  이상 다니지 못하는 나이가 될때까지 학교에 머물렀다는 뜻으로 들리니까요. 요컨대 정년은 교사에게 주어진 선물이 아니라 오히려 족쇄에 가까울  있었다는 것입니다. 중간에 그만두고 싶어도 잔뜩 남은 정년이 아까워서 그만두지 못하는.


열린 결말 속에 풍부해지는 이야기


그런데 과연 그런 인생이 풍부하고 행복했을까요? 사람들은 너무도 당연히 그렇게 한 평생을 헌신했으면 후련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정년퇴직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동안 내가 봐왔던 교사의 정년퇴임식은 늘 쓸쓸했습니다. 그 분들은 퇴임 하기도 전에 이미 심한 무기력 상태에 있었고, 정년을 그리 명예롭게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학교에서 퇴임식 해준다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인 경우도 한 번 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최근의 일입니다. 1990년대에는 그냥 손 한 번 흔들고 박수 한번 받고 퇴근하면 그걸로 끝인 경우도 많았습니다. 본인들이 고사한 것이죠. 그리고 몇년 지나지 않아 부고가 날아옵니다. 돌아가시다니.


흔히 교사가 너무 힘든 직업이라 정년 퇴직하고 나면 그 동안의 소진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때이른 죽음을 맞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그 분들이 생각보다 빨리 유명을 달리한 까닭은  동안의 교직생활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만약 그런 이유였다면 퇴직 교사의 잔여 수명은 해가 갈수록 짧아져야 했습니다. 교직은 점점 고달펴 지고 있거든요- 교사 의외의 삶을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분들에게는 정년 퇴직이 삶의 종점이었던 것입니다. 정년이라는 족쇄 때문에 삶의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오다 보니, 교사가 아니게 된 순간 그냥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처음에는 퇴직 교사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살았겠죠. 그리고 우리나라가 퇴직 교사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나라는 아닙니다. 어딜 가나 정년한 교사입니다 하고 자기를 소개하면 제법 존중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한 두해입니다.

그리고 나면? 사람은 자신을 계내 존재로 자각하지 않으면 급격한 심리적 위축을 경험하며 건강도 크게 나빠집니다. 사람뿐 아니라 개나 침팬지 같은 다른 사회성 동물에게서도 흔히 나타나는 일입니다. 개는 장난치다 주인에게 상처를 입히면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고 합니다. 자신의 사회적 가치가 상실되었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처음부터 정년을 목표로 삼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정년이란 것 자체를 의식하지 않는게 좋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 분야, 저 분야로 관심과 능력을 넓힐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러면 그때마다 그 쪽으로 새로운 전망을 모색해 보십시오.

그렇다고 꼭 그 쪽으로 진출하라는 건 아닙니다. 다만 가능성을 여러개 만들어 놓는 것이죠. 그것만으로도 인생은 매우 풍부해 지고,  종점에는 정년퇴임이라는 막다른 외통수가 아닌 다양한 갈래길이 펼쳐져 있게  것입니다. 그러다 정년에 이르면 퇴직이 삶의 끝이 아니라 갈림길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정년퇴직을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같은 모양으로 맞이하지 맙시다. 그리스도는 부활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기회가 없습니다. 퇴직은 가능하면 다른 길을 충분히 모색한 가운데 내 발로 걸어내려 갑시다. 사실 아이들을 제대로 열심히 가르친 교사일수록 오히려 퇴직을 새로운 갈림길로 맞이합니다.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불성실한 교사일수록 퇴직이 다가올수록 모든 길이 끝나 버리는 외퉁수로 몰립니다. 교사가 삶을 기울여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말이 공연한 말이 아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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