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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교사 May 15. 2020

미러링 수업? 블렌딩 수업?

(이 글은 정돈된 글이 아니라 떠오르는 생각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고민을 제기하는 목적에서 쓴 것이지, 어떤 해결책을 제안하려는 것이 아니다)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이 단어들은 등교개학을 강행하려는 교육부에 학생수가 많은 대도시 학교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자, 학급을 분반하겠다고 하면서 꺼낸 말들이다. 이렇게 생소한 수업을 이야기 하면 뭔가 있을 것 같지만 알고보면 별거 아니다. 그리고 그 별거 아닌것조차 제대로 구현되기 어려운 것이 우리나라 학교의 현실이다.


우선 미러링 수업이라는 것은 학급을 둘 이상의 교실에 분산시키고, 그 중 한 교실에서 교사가 수업을 하면, 그 수업을 마치 거울처럼 다른 교실에서도 보고 들을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뭐 멀리 생각할 것 없다. 대형 예식장이나 교회에서 중간 중간에 걸려있는 모니터들 생각하면 된다.


얼른 들으면 쉬워 보인다. 실제로 어렵지 않다. 교실 A 에 삼각대와 스마트 폰만 있으면 된다. 그럼 교사가 수업하면서 그걸 유튜브 스트림, 밴드 라이브(이 둘이 이런 저런 프로그램 쓰는 것 보다 훨씬 간편하다) 등을 이용하여 송출하면, 교실 B나 C는 그걸 받아 대형 디스플레이로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주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교실 A 에서 하는 수업을 교실 B, C 보낼 방법이 없다. 우리나라 교실에는 와이파이가 없다. 이 문제가 벌써 한 달 전부터 계속 제기되었는데, 기껏 교무실에 와이파이 AP한 두개 설치한 몇몇 학교 외에는 조치된게 없다. 아니 교무실에 와이파이가 왜 필요한가? 학교에 AP 두어개 설치한 다음 분명 통계에는 와이파이 설치 유무 (유)에 체크한 뒤 보급율 높다고 보고했을 것이다. 안봐도 비디오다.


설사 보낼 수 있다고 해도 문제가 있다. 교실 B나 C 에 있는 학생들이 받는 교육의 질이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  다음의 세 장면을 보기 바란다.


첫번째 장면은 칠판에 마커로 판서해 가면서 진행하는 수업이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수업이며, 실제로 나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교사들은 이런 방식의 수업에서 가장 활발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문제는 이 칠판이라는 매체의 해상도다. 칠판에 마커나 분필로 판서한 글씨는 같은 교실에 있는 학생들에게는 잘 보이지만, 사진이나 영상으로 옮겨가면 현저히 가독성이 떨어진다.  칠판 사이즈만한 디스플레이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큰 모니터로 재생한다 할지라도 원래 사이즈의 1/4 이하로 줄어들게 된다.  


다음 장면은 대형 TV 프로젝터에 판서 대신 슬라이드를 띄워서 수업하는 장면이다. 이 경우에는 넓은 칠판 대신 작은 모니타에 모든 내용을 집어넣어 화면이 아주 번잡해지거나, 그림과 도표만 띄우고 교사가 설명하는 방식으로 수업이 이루어진다. 판서할 공간이 없기 때문에 학생은 교사의 목소리와 모니터 상의 몇몇 그림들을 바탕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 경우 수업은 마치 연극 공연 같은 성격을 띠게 된다. 당연히 교사와 직접 상호작용 할 수 있는 공간의 학생들이 훨씬 유리하다. 객석에서 무대를 직접 보는 관객과 중계되는 화면을 보는 관객간의 체험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생각해 보면 된다. 또 슬라이드를 재생하는 모니터가 다시 다른 교실의 모니터로 재생된다면 거의 볼 수 없을 정도로 화면이 축소될 수 있다. 따라서 카메라는 이 모니터가 화면 전체를 차지하도록 프레임을 잡을 수 밖에 없고, 그 결과 교사의 활동폭이 극도로 제한된다.   


세번재 장면은 슬라이드를 PNG 포맷으로 바꾼 , 블루 스크린에서 교사가 따로 수업을 진행하고  둘을 크로마키 기법으로 합성한 이다. 당연히 실시간으로는 진행될 수 없고, 사전 제작한 영상물을 재생하는 수업이다. 이 경우는 교실 A, B, C 모두 동일한 품질의 영상물을 시청하며 수업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떠오르는 의문은 이거다.  모든 학생이 교실에서  영상물을 시청할 거라면 대체 등교는  하는데? 그리고 이 기법으로 수업을 제작할 경우 교사는 아무것도 없는 녹색 천을 배경으로 마치 자기 등 뒤에 이런 저런 슬라이드들이 있는 척 하며 수업을 해야 한다. 즉 교사가 연기력을 갖추어야 가능한 수업인데, 교사마다 개성과 특기가 다른데, 과연 모든 교사가 이걸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오는 말이 블렌딩 수업이다.

이것도 괜히 그럴듯해 보이게 만드는 신조어다. 그냥 온오프 혼합수업이라고 하면 될 일이다. 무슨 수업이 위스키나 커피도 아니고 뭔 블렌딩.


이건 교육과정에서 온라인으로 할 부분과 등교해서 할 부분을 나누어서 학생을 절반씩 나누어 등교시키겠다는 것이다. 대체로 내용을 전달하고 단순한 지식과 정보를 획득하는 활동은 온라인으로, 그 보다 더 고차적인 활동 혹은 피드백과 점검은 등교해서 실시한다. 그렇게 되면 학급을 A조 B조로 나누고 교대로 등교하는데, 등교하지 않는 날은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보고, 등교해서는 피드백을 받는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문제가 있다. 교사가 쉴틈이 없다. 지금 온라인 수업은 학생이 등교하지 않기 때무에 그 빈교실에서 교사가 수업을 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절반이라 할지라도 학생이 계속 등교해서 교실과 시간표를 꿰차고 있다면, 결국 교사는 일과시간 이후에 등교하지 않은 학생들을 위한 온라인 수업을 제작해야 한다. 이 경우 온라인 수업에 대한 출결처리, 시간표처리 등에 대한 완화된 기준을 적용하지 않고 현행 시간표를 다 채우라고 요구한다면 교사의 수업시수가 순식간에 두배로 늘어날 것이다. 물론 임시로 강사를 채용하여 등교 학생들의 과제 점검, 피드백 등을 맡게 해 준다면 부담이 덜겠지만, 과연 그렇게 해 줄까?


물론 이 방식이 좀더 미래지향적이긴 하다. 단 학급을 A 조 B조 나누지 않아도 되는 정상적인 조건에서는. 그리고 숙제를 내는 것조차 금지하는 이 괴상한 규제가 풀린다는 조건하에서. 아니면 적어도 학생이 교실에서 와이파이와 개인별로 주어지는 태블릿이나 랩탑을 이용하여 검색과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조건 하에서. 뭐, 신뉴딜 정책 한다고 했으니 한번 기대해 보겠다. 단 과밀학급 분산 수업 방법으로 이놈의 블렌딩 수업 하라고는 하지 말기 바란다. 사람 잡는다.


그럼 어떻게 할까? 블렌딩 수업을 하긴 하되, 등교조 학생들이 시간표 내내 교실에 있는다는 전제를 버리면 된다. 이런 방법이 가능하다. 요일별로 등교 학년을 정한다. 중학교의 경우 월요일 1학년 화요일 2학년 수요일 3학년 목요일 2학년 금요일 3학년 (1학년 1회, 2, 3학년 2회 구체적인 회수는 알아서 하고). 그리고 다시 오전은 학번이 홀수인 학생, 오후는 학번이 짝수인 학생 이렇게 나누는 거다. 교과 선생님들은 각자 교실에서 대기하고 있으며, 학생들은 시간표와 관계 없이, 각 교과 선생님들을 찾아다니면서 2미터 간격의 줄서기를 유지하면서 점검을 받고 질문을 하는 등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시수니 시간표니 이런건 좀 따지지 말고, 등교한 날은 모든 교과에 1차시씩 인정 해주는 것으로 하고.  


이런 방법이 절대적이지는 않다. 어쨌든 굳이 학생들이 학교에 조금이라도 나오게 하려면(집에만 있는 것 보다는 조금은 학교에 나오는 게 좋다. 하지만 모조리 몰려나오는 일은 막아야 한다), 창조적이고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며, 그 발상의 전환은 책상머리에서 아무리 주름잡힌 머리 굴려봐야 나오지 않으며, 직접 수업을 담당할 교사들의 생각을 모아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이 정부가 초기에는 교사패싱으로 일관하더니 요즘은 거의 교사학대 수준이라 별로 기대는 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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