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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교사 May 06. 2020

얼렁뚱땅 강제로 유튜버 데뷔하기


기록을 보니 나의 첫 유튜브 업로드가 2020년, 3월 17일이다. 그러니까 어느새 유튜버로 데뷔한지 50일이 넘은 것이다.

원해서 한 데뷔도 준비된 데뷔도 아니었다. 나의 유튜버 데뷔는 얼떨결에 이루어졌다. 물론 이 때 유튜버는 유튜브 생태계에 일익을 담당하는 그런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유튜브에 그 수준이야 뭐가 되었건 어쨌든 자기가 제작한 콘텐츠를 올리는 사람을 말한다.


원래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유튜브 하고는 인연이 멀다..나는 글 쓰는 것이 말하는 것보다 편하다. 심지어 생각이 글로 바뀌는 속도가 말하는 속도보다 더 빠르기까지 하다. 생각과 동시에 글이 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생각 자체를 아예 말이 아니라 글로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키보드를 두드릴 뿐이다. 오히려 말이 번거롭다. 발성기관을 움직이는 것은 손가락으로 키보드 두드리는것 보다 힘도 더 들고 유연하지도 못하다. 그래서 나는 발성기관이 생각을 따라가지 못해 말을 더듬거나 할 말을 빼먹는 경우가 많다. 하물며 말하는 것을 영상으로 찍고 또 후속작업까지? 됐다 됐어. 난 그냥 글만 쓸란다. 이게 올 3월까지 반세기 이상 지켜온 내 입장이었다.


그러니 유튜브를 중심으로 콘텐츠 생태계가 빠르게 바뀌어 가는 것이 못마땅할 수 밖에 없었다. 한때 글 한 편에 조회수 30만을 기록하기도 했던 블로그마저 눈에 띄게 독자가 줄어들었다. 인터넷 생태계는 유튜브를 중심으로  동영상 위주로 빠르게 개편되었고, 텍스트의 위축은 대세가 되고 말았다. 안 읽히는 글, 전해지지 않는 메시지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유튜브를 어떻게든 뚫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섵불리 손을 내밀지 못했다. 우선 동영상 클립 하나 만드는데 들어가는 시간과 공이 너무 많았다.  2011년부터 스마트 폰을 사용했지만, 유튜브 업로드는 커녕 동영상이란 것 자체를 거의 찍지 않았으니, 그 진입 장벽이 얼마나 높았을까? 게다가 아이무비나 브루 같은 프로그램도 어떻게 쓰는지 선뜻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이른바 코시국(코로나 시국)이 왔다. 개학이 3월 9일로 일주일 미뤄졌을 때 까지는 그냥 그러나보다 했다. 다시 3월 23일로 2주 더 미뤄지자 이건 뭔가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한 달 가까이 선생 얼굴도 못 보는 아이들이 안스럽게 느껴져서 동영상으로라도 수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유튜브 생각이 났다. 동영상을 유튜브로 올린 다음 그 링크를 학급 밴드, 톡방을 통해 돌릴 생각이었다.


자, 이제 뭘로 찍을까? 이때 까지만 해도 4월 6일에 개학 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거창한 장비를 따로 돈 들여 사기에는 아까웠다. 작년 한해 무급 휴직을 했고, 코로나 때문에 펀드도 박살이 나서 그럴 돈도 없었다. 그래서 일단 2년 반 된 아이폰 8 플러스를 노인 학대 수준으로 굴리기로 했다. 2년 전에 샀지만 거의 사용하지 않아 먼지가 잔뜩 낀 셀카봉을 찾아 최대 길이로 잡아 늘렸다.얼추 삼각대 모양이 나왔다.

그렇게 첫번째 동영상 수업을 찍었다. 단 8분밖에 안되는 짧은 수업이었지만, 제작하는데 거의 세시간 넘게 걸렸다. 그리고 유튜브에 올렸더니 뜻밖에도 조회수가 1000 이상이 나왔다. 학생들은 별로 보지 않았다. 시청자 분석을 보니 30대가 많았다. 교사들이다. 그 동안 '명성'(?)으로만 듣고, 그 실체가 궁금했던 권재원이라는 교사의 수업이 만방에 공개된다 하니  30대 교사들이 많이 본 것이다. 댓글도 많이 붙었다.


그런데 그들의 우호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영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향성 없는 아이폰 마이크로 녹음을 해서 소리가 선명하지 않았다.  무선 핀마이크를  알아 보니 가격 때문에 선뜻 손이 나가지 않았다. 결국 선택한 것이 유선 핀마이크에 아주 긴 선의 조합.  핀 마이크를 연결한 상태에서 교실 안을 돌아다녀도 될 정도니 무선이나 다름없었고 가격도 3만원 이내로 저렴했다. 여기에 3000원짜리 셀카 리모콘으로 카메라를 조작하면서 수업을 찍었다.


카메라 잡아주는 사람 없이 혼자 모든 일을 다 하다 보니 어이없는 실수도 저질렀다. 리모콘을 눌러 녹화 개시 소리가 나는 것을 확인하고 수업을 시작했는데, 알고보니 그게 정지였던 것이다. 결국 30분간 열강을   아이폰을 열어보니 녹화된 것이라고는 리모콘을 조작하여 녹화 정지 신호를 하는 모습 뿐이었다. 멘탈이 터진다는 말이 바로 이럴  쓰는 것이리라.


핀마이크가 배터리를 사용한다는 것도 몰랐다. 배터리가 다 된 핀마이크를 옷깃에 끼우고 신나게 한 30분 수업을 녹화했다. 그런데 편집 하면서  들어보니 아무리 들어도 도무지 제대로 된 마이크 녹음이 아닌 그야말로 쌩 목소리인 것이다. 결국 그 부분을 다시 녹화했다. 너무 맥이 풀려 터질 멘탈조차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동영상 녹화와 편집이 꽤 익숙해졌다. 물론 제작해서 올리는 영상의 수준은 여전히 고퀼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그건 기술을 몰라서가 아니라 시간이 없어서다. 수업 영상 만드는 틈틈이 짜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교사 연수, 학부모 연수용 영상도 만들었다. 그렇게 꽤 많은 영상들이 누적된 상태에서 4월 16일 온라인 개학을 맞이했다. 유비무환을 이렇게 실감나게 느끼긴 처음이었다.


여기서 욕심이 더 생겼다. 그 동안 대형 텔레비젼에 파워포인트를 띄워놓고 수업을 진행하거나, 화이트 보드에 마커로 판서하면서 수업하는 것을 찍었다. 그 어느 경우도 화면에 판서 내용이나 슬라이드가 선명하게 나오지 않았다. 문득 원격연수에서 강사가 마치 파워포인트 화면 속에 들어가 있는 것 처럼 보이면서 수업하는 장면이 생각났다. 그 기법을 크로마키라고 했던가? 구글에서 크로마키 관련 자료를 모았다. 일단 원리를 알고 나니 혼자서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장 크로마키 천을 구입해서 교실 뒷 벽에 붙였다. 심하게 구겨진 상태로 배송되어 이 정도라도 펴는데 거의 반 나절이 걸렸다. 몇 차례의 연습 끝에 마침내 통일신라시대 경주안에 내가 들어가서 설명하는 영상을 찍는데 성공했다.


이후 모든 수업을 크로마키로 촬영했다. 파워포인트를 PNG 파일로 내보내기 한 뒤, 크로마키로 찍은 수업 영상을 합성하는 방식을 사용하니 파워포인트가 실행되는 텔레비젼을 찍는 것 보다 훨씬 선명하고 보기 좋았다. 크로마키에 맛을 들이면서 클립 하나 제작하는데 들어가는 시간은 두배로 늘었지만 재미는 네배로 늘었다.




이제는 내가 어디 까지 갈지 잘 모르겠다.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어떻게든 수업을 전달해 주고싶은 마음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는 동영상을 제작하고 유튜브로 보급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게 된 것 같다.


모르던 것을 알게되고, 할 수 없던 것을 하게될때 느끼는 기쁨, 그 스피노자적 기쁨이 바로 교육의 진정한 목적이라고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며 적지 않은 강사료를 챙겼었는데, 이제야 내 말에 내가 책임을 지게 된 것이다.


본의 아니게 유명세도 탔다. 방송국에서 와서 찍어가기도 했고, 뉴스에도 잠깐 나오고, 네이버 인명록에도 등재되었다. 아직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우리반 아이들 역시 이렇게라도 담임 얼굴이 자꾸 나오는 게 싫지 않은 느낌이다.


돌아보니 어느새 구독자는 1200명을 넘어섰고, 총 시청 시간도 2800시간을 넘어서 있다. 채널 오픈하고 한달 반인데, 어느새 크리에이터의 기준선 처럼 여겨지는 1,000 구독자, 4000 시청 시간을 얼마 남겨두지 않게 되었다. 유튜브의 대세라는 유머 코드 하나 없이, 오직 진지하게  사회와 역사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하는 영상들로만 말이다.


이제는 내 유튜브 채널이 아이들 수업용으로만 끝나는게 아니라, 다른 학교 아이들, 여러 선생님들과 학부모님들에게 널리 사랑받는 곳이 되었으면 하는 꿈도 가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이로그나 유머코드 같은 유행에 편승하고 싶지는 않다. 오직 우직하게 지적이고 진지한 콘텐츠만으로 그렇게 할 것이다. 오늘도 임진왜란에 대한 동영상을 편집 완료하여 유튜브에 올린다.


채널 이름은 <권교사 채널> 권교사는 '권재원의 교육과 사회'의 줄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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