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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교사 Jun 06. 2020

지난 100년간 한국에는 반교육만 있었나?

김누리 교수 반교육 100년 담론 비판 (1) 서설

얼마 전, 세바시 영상으로 소개된 김누리 '독문학 교수'의 "한국교육 반교육 100년 담론"에 대한 반박 동영상을 올렸고, 조회수에 비해 상당히 격렬한 반응을 받았다. 지지와 격려도 있었고, 반발하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해당 동영상은 다음 링크를 참고하기 바란다. 20분 정도로 길기 때문에 글을 다 읽고 나서 보는 편이 낫겠다.

https://youtu.be/WW85BWiBEac


사실 나는 김누리 교수가 한 말 중 공감하는 바가 적지 않으며, 많은 부분 옳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가 대학교육에 대해 비판한 강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더 보태거나 반박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문제삼는 부분은 그가 종사하거나 연구한 바 없는 유초중등교육까지 포괄하는 '한국교육'이라는 표현, 그것이 지난 100년 동안 교육이라 부를 수 없고, 반교육이라 불러 마땅하다는 단언, 그리고 끊임없이 이를 독일교육과 대비하는 태도였다.  


사실 반교육이라는 표현은 김누리 교수의 세바시 강연 보다 무려 30년 전에 이미 널리 사용된 말이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적지 않은 월급을 받으며 교육이 아니라 반교육을 행하던 한국 교사들에 의해서 말이다. 그 증거를 보여 주겠다. 바로 전교조의 조합가라고 할 수 있는 노래  '참교육의 함성으로'이다. 가사를 소개해 본다.   


굴종의 삶을 떨쳐 반교육의 벽 부수고
침묵의 교단을 딛고서 참교육 외치니
굴종의 삶을 떨쳐 기만의 산을 옮기고
너와 나의 눈물 뜻 모아 진실을 외친다


이번에는 노래를 한 번 들어보자. 이게 바로 1980년대 분위기다.

https://youtu.be/2b4XRFAAcNA


이때 이들은 분명히 외쳤다. 반교육의 벽을 부수기 위해, 침묵하지 않겠다고. 그리고 실제로 침묵하지 않고 나섰으며, 그 댓가로 일자리를 잃었다. 그럴듯한 목소리를 외친 '진보 교수'들 중에 이토록 과감하게 '목을 내건' 사례가 얼마나 있을까? 그래서 김누리 교수의 '반교육 100년' 발언은 틀리기도 했거니와 대단히 무례한 발언이기도 한 것이다.


당시 이들이 '반교육'의 반대말로 제시한 것이 바로 '참교육'이다. 요즘 아무리 전교조가 인기가 없고, 초심을 잃었니 어쨌니, 참교육은 어디 가고 이념교육만 남았니 어쩌니 하며 욕을 먹어도, 이들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소위 '반교육'에 대해 집단적으로 문제제기하고 이를 개혁하기 위해 목을 내걸고 싸웠다는 사실만큼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존경받아야 할 점이다.


그런데 김누리 씨의  '반교육 론'은 그 내용 자체도 빈약하다.  그는 지난 100년간  황국신민교육, 반공교육, 산업역군교육, 나아가 신자유주의 인적자원개발교육이 이루어져 왔기에  한국에서는 '반교육'이 이루어져 왔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한국교육 100년'이라고 특정하기어렵다. 이런 것들은 한국뿐 아니라 독일을 포함한 모 든  '근대 공교육'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사실 공교육 자체가 구획과 통제, 그리고 경쟁이라는 근대 사회의 특징이다.  


18세기 부터 등장한 근대 공교육은 일부 지식인, 성직자,귀족에게만 허용되던 교육을 평민들에게까지 확대하였다. 그런데 그 확대의 이면에는 권력이 있었다. 교육의 기회 확대는 곧 교육의 의무로 바뀌었고, 민간에서 다양하게 운영되던 학교마저 모두 통일하여 국가가 독점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 목적은 당연히 평민 자녀들의 지성과 행복이 아니었다. 각 지역으로 신분으로 분산된 영토내의 사람들을 국왕을 정점으로 하는 '국민'으로 통합하고, 나아가 이들을 징집하여 토지나 댓가를 요구하는 기사와 달리 자발적 애국심을 동기로 기꺼이 싸우는 국군으로 양성하는 것이었다.


국민학교는 곧 군인학교다. 근대식 군대는 무술과 용기가 아니라 충성심와 규율로 싸우기 때문이다. 실제로 18세기에는 초등교육만 마치면 청소년기에 군에 입대하는 경우도 많았다. 달타냥도 청소년이다.


이러한 근대 공교육의 원조가 다름아닌 독일이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이 모든 교육기관과 학교를 국가가 관리하는 국민학교(Volkesschule)로 통합 강제함으로써 근대 공교육을 개시했다. 이때 만들어진 분리형 학제는 이직도 독일 학제의 근간이 되고 있다.


국민, 즉 장차 군인을 기르는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성적에 따라 장차 대학까지 진학하여 관료, 교수, 성직자,교사가 될 그룹과 대학에 가지 않고 그 이전에 취업하여 산업역군(!)이 될 그룹을 나누어 인문학교와 실업학교로 나누는 것이다. 대입 수능이 모든 고등학교 졸업생들에게 개방된 우리나라와 달리 독일은 실업학교 졸업장을 가지고는 대입 시험조차 볼 수 없다. 그래서 분리형이다.


이 분리가 이루어지는  시기는 우리 나이로 겨우 10살때다. 이 중차대한 진로 분리는 시험 등으로 공정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담임교사 마음”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초등학교 마지막 학년 담임이 “너는 대학까지 갈 놈”, “넌 대학은 무슨 대학” 하고 결정해버리는 것이다. 이때 담임교사들은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철저히 나라 전체의 관점에서 학생들을 냉정하게 분류할 수 있어야 한다.  심지어 이런 냉정하고 합리적인 마음은 부모에게도 요구된다. “아니, 내 새끼가 왜?” 이게 아니라 “나라를 위해 내 아이에게 적합한 진로를 할당받은거다.”이렇게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독일 병정이 괜히 나온게 아니다.


 그 위력은 실로 대단하여  이후 프로이센은 유럽의 다른 나라보다 강한 단결력과 군사력으로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이후 프랑스 자코뱅당이 이를 받아들여 교회나 수도원(주로 예수회)의 성직자의 교육권을 박탈하여 국민학교로 통일하였고, 이를 나폴레옹이 받아들였다. 이렇게 형성된 민족국가의 힘은 봉건국가를 압도했고, 스페인, 오스트리아, 러시아 등의 구 제국과 신성로마제국 안의 수많은 영방국가들을 순식간에 무너뜨렸다.이것이 다시 독일인들을 자극하였고, 피히테의 유명한 <독일민족에게 고함>이라는 연설과 함께 민족주의 색채가 한결 강해진 ‘국민교육’ 운동이 일어났다. 이렇게 더 강력하게 단합한 독일이 다시 프랑스를 격파하고, 여기 다시 자극받은 프랑스가 국가가 초중등 교육을 전면적으로 국가가 설계하는 국민공교육 제도를 도입하고, 이런 식으로 경쟁적으로 유럽의 공교육 체제가 만들어졌다. 여기서 더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이 “전쟁의 교육”이야 말로 그 어떤  미사여구를 가져다 붙여도 ‘반교육’중의 ‘반교육’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주제는 이거다. 그렇다고 19세기 유럽의 교사들이 ‘반교육’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 페스탈로치가 활동한 것도 이 시기이며, 그 뒤를 이은 수많은 ‘박애주의’ 교육자들이 곳곳에 그의 정신을 계승한 학교를 세운 것 역시 이 무렵이다. 심지어 이들은 ‘대안학교’ 가 아니라 저 ‘전쟁의 반교육 기계’인 공교육 체체를 충분히 이용하면서 그러한 교육을 했다. 국가가 ‘반교육’을 목표로 하는 학제를 세우고, 교육과정을 정하고 이를 전국에 실시한다 하더라도, 실제 그것을 담당하는 교사들은 ‘교육’을 하며, 그것을 가로막는 각종 반교육적 조치에 대해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저항한다는 것이다.


이는 교육은 교사와 학생이라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 관계를 매개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스가 아닌 다음에야 사람으로서 학생을 만나는 사람으로서 교사가 단지 국가가 정하고 요구한다고 하여 ‘반교육’을 기계적으로 시행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20세기 이후 사회학에서 거대담론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미시사회학의 시대, 맥락적 이해의 사회학, 민속지적 사회학의 시대가 막을 올린 것이다. 김누리씨는 바로 이 부분을 간과하였다.


물론 한국 공교육의 목표가 그 동안 ‘반교육적’이었다고 비판할 수는 있다. 실제로 그 동안 한국 공교육의 공식적인 목표가 반공, 산업역군, 인적자원개발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이 분은 국가고시 교육과정 총론을 한번도 읽어보지 않았음에 틀림없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국가가 공교육을 그렇게 규정한것과 실제 교사와 학생이 만나는 현장의 교육현상은 다르다. 또 50대 진보지식인들이 느끼는 교사 학생의 관계와, 현재 학생들이 느끼는 관계 역시 다르다. 이런 다양한 맥락과 현상을 무시한채, 심지어 국가가 공식적으로 공표한 <국가수준 교육과정> 총론조차 제대로 읽지 않은채, 그 동안 교육비판이라며 떠돌아다니던 담론들을 얼기설기 엮어서 호소력 있는 문장과 표정으로 퍼뜨리는 ‘반교육 담론”은 위험하다. 자칫 반교육에 맞서 그 동안 분투해 온 수많은 교사들까지 한꺼번에 포기하거나 적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자는 “교언영색에는 선함이 드물다”라고 한 것이다.



온라인 수업, 등교수업, 방역, 학생관리에 각종 공문서 처리까지 해야하는 교사는 교수만큼 시간이 많지 않아 여기서 더 긴 글을 쓰기 어렵다. 또 생각이 모이면 다시 작성하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서 일단 글을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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