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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교사 Jun 09. 2020

대치맘의 성지였던 어느 카페의 쇠망기

대치역에서 출구를 나오면 아주 건방진 이름을 가진 빌딩이 있다. 많은 학원들이 몰려 있고,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들까지 수없이 드나들면서 빌딩 자체가 제법 큰 상권을 이룬 곳이다. 학원은 물론 학부모를 상대로 하는 피트니스, 미용실, 여행사, 보석상, 그리고 카페도 네개 이상 들어와 있다.


그 중 단연 이 구역의 맹주 노릇을 하던 카페B는 한때 이 구역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브런치 장소로 많은 단골을 보유하고 있었다. 대치동에만 매장이 두개, 그 밖에 잠실과 분당에 매장을 두고 있는, 타겟이 분명한 그런 카페였다.


사실 메뉴가 특별하지도 맛이 특별하지도 않았다. 커피는 싱겁고, 브런치 메뉴도 오믈렛, 클럽샌드위치, 브리오슈, 에그 베네딕트 정도였는데, 그냥저냥했다. 심지어 가격도 비쌌다. 한 마디로 가성비가 매우 떨어지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카페가 한동안 대치동을 주름잡을 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홀 매니저 덕분이었다.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약간  고양이 같은 느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앤 해서웨이 같은 느낌의 고양이 말고, 일본 식당에 가면 있는 통통한 복고양이.

이 고양이 매니저(혹은 홀캡틴이었는지도)는 찾아오는 고객들 하나하나를 기억하려고 노력했고, 늘 웃는 얼굴로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의 취향을 자신이 기억하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매장 인테리어도 신경써서, 비록 가구를 새로 들이거나 하지는 못해도, 팝업 하나, 블라인더 하나도  위치, 배색 등을 따져가며 꼼꼼히 세웠다.


직원 관리도 철저했다. 알바생 한 명을 뽑아도도 정중하고 예의바른 직원을 뽑았다. 특히 용모가 깔끔하고 매너 좋은 남자 직원들 위주로 뽑아, 주요고객인 학부모 응대를 부드럽게 했다. 직원들을 엄격하게 통솔하는 편이지만 때로는 카운터에서 직원들과 수다를 떨거나, 푼수 언니,누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어쩌면 그것도 연출일지 모르겠지만.


고객들은 매장에 가면 언제나 특별한 케어를 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매니저 뿐 아니라 직원들이 모두 그렇게 훈련 되었는지, 포인트를 적립할때 전화번호 뒷자리를 굳이 누르지 않아도 본인이 기억해서 입력해 주었고, 주문할 때도 평소 자주 먹는 메뉴들을 기억하고 있으면서 선택지를 줄여 주었다. "오늘도 ** 로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다른~~ " 이런 식으로.


덕분에 신통치 않은 메뉴,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편안하고 대접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면, 그 정도 가격은 얼마든지 지불할 용의가 있는 고객들을 단골로 확보했다. 대치맘들의 성지 같은 곳이었고,주말에는 빈틈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2020년 6월. 이 카페는 문 닫지 않는게 신기하다 느껴질 정도로 손님이 확 줄었다. 한창 브런치 손님이 많아야 할 일요일 오전 10시 30분에도 이 모양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일단 겉으로 드러난 계기는 바로 건너편에  규모의 스타벅스 리저브 매장이 들어선 이다. 스타벅스 리저브 매장으로 꽤 많은 손님들이 옮겨가면서 빈자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리저브 매장이 들어서기 전에 문제는 불거지고 있었다.   고양이 매니저가 떠나고, 한 동안 그 매니저가 채용해서 키웠던 직원들이 매니저 역할을 맡아 가게를 운영했다. 문제는 고참 직원이 매니저가 되면서 새로 채용한 직원이  이전과 달리 몹시 수다스럽고, 거칠고, 무식했다는 .


 얼마 지나지 않아 새 매니저가 떠나고, 새로 채용한 직원  역시 비슷한 부류가 들어왔다. 그런 식으로 하나 둘, 직원이 바뀌었고, 마침내 그 '황금세대' 직원은 모두 떠나고 손님이 오면 "아 놔, 꿀 빨고 있는데, 왜 와서 귀찮게 굴어?" 하는 기색이 얼굴에 감춤없이 드러나는 그런 직원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브리오슈와 따뜻한 아메리카도 한 잔 부탁드립니다."라고 손님이 정중하게 말을 하면 "단품이요 세트요?" 하고 퉁명스러운 대답을 듣는 어이없는 경우도 생겼다.


오래 다니던 카페는 어떤 면에서는 자기 집 거실이나 다름 없다. 그래서 직원이 바뀌고 분위기가 좀 달라져도 꾸준히 주말 아침이면 찾아오던 손님들이 있기 마련이다. 카페 B 는 순전히 그 힘으로 버텼지만, 결국 그들 마저 하나 둘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스타벅스 리저브 매장이 길 건너편에 생겼다.


이러니 버텨낼 재간이 있나?


그나마 손님이 많이 줄어들어 조용해지자, 왁자지껄한 스타벅스 분위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몇몇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손님은 줄어도 왁자지껄은  심해졌다. 직원들끼리 거친 단어를 사용하며 떨어대는 엄청난 수다, 빵터지는 웃음이 데시벨을 과시했다.  심지어 주방에서는 음악을 틀어놓고 일을 하는지, 최대 볼륨으로 틀어 놓은 음악이 홀까지 흘러나와  매장 BGM과 멋대로 뒤엉켜 엄청난 소음을 만들어 댔다.


결국 이곳은 스타벅스 리저브에 자리가 하나도 없을 때 할 수 없이 가는 곳으로 전락하고 말았다.그나마 오후 시간의 경우고, 주말 오전에는 차라리 집에서 커피를 내려 먹는 쪽을 선택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직원의 질이 크게 떨어진 탓이다. 그건 또 왜? 아무래도 주인이 비용을 절감하려 들었기 때문이리라. 물론 키오스크를 설치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랬다면 그 비싼 돈을 받는 기존 이미지를 지킬수 없다는 딜레마가 있었을 것이다. 비용은 줄이고 싶고, 고급 이미지는 유지하고 싶고. 그 주인은 그 동안 그 매장의 고급 이미지를 지켜온 동력이 매장이 아니라 직원이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이렇게 죽도 밥도 아닌 애매한 위치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한때 대치맘의 성지로 여겨졌던 이곳의 이 형편없는 몰락을 보며, 이른바 4차산업혁명 시대에 무엇이 상품에 가치를 추가하며, 기계가 사람의 자리를 잠식하는 시대에 무엇이 진정한 경쟁력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차라리 키오스크를 상대하는게 속편할 지경이라면 구태여 사람 직원이 응대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제품의 단가를 높여놓는다는 것 외에? 그렇다면 자녀가 앞으로 경쟁력 있는 존재로 성장하기 위해 진정 신경써서 갖춰주어야 할 능력이 과연 무엇일까? 기출문제 연습 부지런히 해서 점수 높이는 능력일까? 아니면 몸에 밴 공감과 친절일까?



이 와중에 교사 및 동료 학생들과의 관계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학종을 축소하고 고독한 시험맨들을 양성하는(문제의 핵심은 문항이 선택형이다 논술형이다가 아니다. 혼자 하는 활동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수능 정시를 확대하겠다는 정부는, 심지어 그걸 교육개혁이라고 말하는 정부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진다.


그리고 결심한다. 여기 다시 안간다.  차라리 햄버거 집을 갔으면 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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