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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교사 Jun 11. 2020

독일 교육의 반성과 대안

카를 게바우어의 책 리뷰

이 글은 Karl Gebauer가 편집한 <Anders lernen: Modelle für die Zukunft> (대안적 학습: 미래를 위한 모델) 에 대한 서평이다. 2013년 1월에 썼다.  당초 이 책을 번역하려던 송순재 교수가 검토를 부탁했고,  검토해 본 뒤 이 리뷰를 작성했다. 이 리뷰에 따라 송교수와 출판사는 시장성이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고 판단하여 프로젝트를 엎었다.  그런데, 요즘 난데없이 튀어나오는 독일교육 사대주의 강연들을 보니, 엎지 말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때 작성한 리뷰를 조금 다음어 다시 공유한다.


이 책을 구해 보고 싶으신 분은 독일 아마존에서 중고 구입이 가능하다.

https://www.amazon.de/Anders-lernen-Modelle-f%C3%BCr-Zukunft/dp/3530401811

15년 전 책이지만, 워낙 독일이란 나라가 오랫동안 토론하고 천천히 바뀌는 나라라서 이제야 여기서 논의된 내용이 반영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런데 그 방향은 김누리 씨 등이 예찬하던 '그 독일 교육'에서, 그의 관점에서는 '반교육'에 가까운 한국교육쪽으로 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미 진행중이라는 전언도 있다.


카를 게바우어  <미래를 위한 학습모델의 대안>에 대한 간단한 서평


미리 한 줄 요약: “피사 충격이 드러낸 독일 교육의 진솔한 반성과 대안”


우리나라에서 독일이라는 나라가 널리 알려진 것에 비해 독일 교육에 대해서는 그렇게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독일 교육의 체제가 꽤나 복잡하고, 또 우리나라 학제와는 상당히 다른 전통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학제는 철저한 분리학제입니다. 우리 나이로 초등학교 4학년 때 이미 대학으로 진학할 아카데미 트랙 30%와 실업교육 트랙이 분리되는 독일 교육제도는 내신성적 98%인 학생까지 대학을 목표로 하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우리나라와는 크게 다릅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에는 주로 김나지움이나 김나지움( 인문고)과 레알 슐레(같이 다니다 나중에 인문고와 실업학교로 분리)가 통합한 게잠트 슐레(종합학교)를 중심으로 독일 교육이 알려지면서, 독일교육의 지적이고 진지한 측면이 과대 대표된 경향이 큽니다. 그러나 학생의 절반 이상이 진학하는 5년제 직업학교인 하우프트 슐레의 실상은 우리나라는 물론 독일인들에게까지도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교육제도를 독일인들의 논쟁의 중심으로 만들어 낸 사건이 바로 PISA입니다. 널리 알려진대로 독일은 PISA에서 그리 높은 순위를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여기에 대해 독일의 교육전문가들은 의연한 모습으로 피사의 지표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사에서 우수한 성과를 보여준 핀란드, 우리나라,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등에 조사단을 보내어 상당히 꼼꼼한 리뷰를 했습니다.

그 결과 우수한 성과를 보여준 나라들의 교육제도, 방법, 가치 등등이 모두 제각각이라서 이들 나라들에게서 피사에서 우수한 결과를 보여줄 특효약 같은 것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그들은 독일교육에 던져주는 두 가지 시사점을 찾았습니다.


1)하나는 피사 우수 국가들은 학교 수업일이 길다는 것입니다. 독일의 경우는 기본적으로 오후수업이란 개념이 없는 반일제 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학교 수업일과는 큰 차이를 보여줍니다.


2)다른 하나는 모든 학생들이 분리되지 않고 통합된 학교에 다니는 기간이 길다는 입니다. 최하 6년 최장 10년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9년을 우열반이나 분리학급이 인정되지 않는 통합형 학급에서 공부합니다. 심지어 특수교육대상자들도 일반학급에 편성됩니다.


반면 독일은 이런 통합형 교육을 받는 기간이 4년에 불과합니다.  독일의 교육은 매우 이른 학년에 분리교육이 이루어집니다. 독일의 학제는 이른바 능력과 적성에 따른 분리형 학제입니다. 학생들은 4학년까지만 초등학교에 같이 다니며(우리 나라로는 초등 3학년 나이), 우리 나이로 11살부터 대학에 진학할 인문교양학교인 김나지움, 고등가술학교인 레알슐레, 그리고 직업학교인 하우프트 슐레에 진학합니다.  말이 적성과 소질이지 실제로는 학업성취도에 따라 갈라집니다.


진학하게 되는 학교에 따라 교육 기간도 다릅니다. 말로는 평등하다고 하지만 명백히 학교급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김나지움은 9년제이며, 우리나이로 고3때까지 다닙니다. 레알 슐레는 6년제로 우리 나이로 중3때까지 다니며, 이후 전문적인 도제교육이나, 대학 진학반으로 갈라집니다. 여기까지는 우리 나이로 초등학교 3학년 당시에 상위 1/3에 들어야 진학할 수 있는 학교이며, 최근에는 김나지움과 레알 슐레가 통합되는 추세입니다.


흔히 독일의 인문계 고등학교는 우리나라 대학원 같고, 실업계 학교는 거의 공대를 방불케 한다면서 감탄하지만 이 학교들은 2/3에 달하는 보통 학생들에게는 해당 없는 일입니다.


보통 학생들이 진학하는 학교는 하우프트 슐레로 직업학교로 불리는 학교인데, 우리 나이로 2정도까지만 다니며, 이후는 실질적인 직업교육으로 충당됩니다. 이론적으로야 공부에 흥미가 없는 아이들을 억지로 인문계에 진학시켜 수업시간에 2/3가 자고 있는 우리나라보다 합리적일수 있지만, 문제는 우리 나이로 초등학교 3학년에 불과한 어린 나이에 공부해서 대학에 진학할 루트와 직업교육 루트가 거의 결정적으로 갈라지는 입니다.


게바우어는 피사 우수국가들은 물론이려니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독일처럼 빠른 학년에 트랙이 분리되는 나라는 없다며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빨리 학업경로가 결정되어버리는  독일에서는 초등학교 1학년  일단 불리한 처지에서 시작하는 학생은  격차를 미처 따라잡거나 돌이킬 틈도 없는 것입니다.  점에서 게바우어는 독일의 학제가 너무도 불평등하며, 학생들의 잠재력을 일찌감치 소진시킨다며 비판합니다.


이러한 문제제기로부터 독일 교육의 문제점과 지향점에 대한 아직도 끝나지 않은 10년여의 토론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이 논쟁을 이루는 다양한 문헌들 중 하나로, 앞에서 상술한 독일 교육의 문제에 대한 대안적인 교육개혁 실천 사례들을 소개한 책입니다.


이 책의 편집 동기는 매우 단순한 명제에서 출발합니다. 그것은 바로 “자녀가 학교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좋은 학습 성과와 학점을 받아서 집에 오는 것이야말로 부모의 진정한 기쁨이다.”입니다. 문제는 이 기쁨의 지속기간이 너무 짧다는 것입니다. 학교의 첫 주가 지나기도 전에 이 기쁨은 끝나며, 많은 학생들은 학교로 되돌아가지 않으려 합니다. 학창시절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상실로 가는 경로와 재미없는 시기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의 행복과 배움의 기쁨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 중 상당수를 교사와 부모가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 교육은 관료제의 미로 속에서 이런 노력을 하기 보다는 기쁨을 잃어버린 아이들을 탈락시키는 조기 선발제도에 안주해 습니다.


그러니 15 학생들을 대상으로 치루어지는 피사에서 독일의 성적이 저조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실용기술교육이라는 미명하에  2/3 되는 학생들이 사실상 학업, 배움의 기쁨에서 배제된지 7년이나 지난 시점이니 말입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이미 2/3가 “찌질이”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반면 우리나라나 핀란드 같은 경우는 만15세까지 적어도 제도적으로는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동질의 교육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들은 묻습니다. “독일은 학생들에게 발달의 기회를 충분히 부여하고 있는가?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유감스럽게도 답은 “그렇지 않다입니다. 너무도 빠른 나이에 아카데믹한 공부가 아니라 직업 교육을 선택하도록 하는 분리형 학제 때문이입니다.


이는 공부에 흥미를 느끼는 학생들은 소수에 불과하며 선천적이라는 그릇된 전제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하우프트 슐레에 간 학생들 역시 김나지움에 간 학생들 못지않게 학업에 열정이 있고, 또 뒤늦게 지적인 능력이 만개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분리형 학제에서는 이를 감안하지 않습니다.


결국 하우프트 슐레의 실상은 실용적인 직업교육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학습과 행동에서 어려움을 가진 학생들을 스스로 길러내는 꼴이 되고 맙니다. 이들은 흥미가 마비되고 어떤 기회도 보지 못하는 학생들로 전락하기 쉽습니다. 직업이 공부보다 좋아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공부를 못해 직업으로 밀려난 학생들, 그리고 돌이킬 수 없게 된 학생들은 이제 이해와 관심뿐 아니라 특별한 방식의 지원과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입니다. 그들은 자아 존중감을 높일 수  있는 특별한 격려와 조건이 필요합니다.


반면 피사 최우수국인 핀란드는 그들의 교사헌장에서 보여주듯 모든 학생들의 가능성을 놓치지 않습니다. 그 헌장은 단 두 문장으로 “1. 모든 개개의 학생이 중요하다. 2.우리는 학생들이 부끄럽지 않게 해야 한다.”입니다. 세계의 모범이 되고 있는 핀란드 교육의 여러 구조와 제도들은 이 두 개의 단순한 명제에서 갈래쳐 나옵니다.


여기에 교육개혁의 열쇄가 있습니다. 독일은 학업능력이 불충분하고, 배움의 가능성이 날이 갈수록 사라져 가고 있지만, 결코 포기해서는 안되는 12세-16세 사이의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배려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는 분리형 학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이며, 하우프트 슐레의 교육과정과 교육활동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지금 하우프트 슐레는 직업세계에서 요구하는 기본적인 능력조차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갈수록 직업의 세계도 복잡해지고 지식·정보와 창의성의 중요성이 높아지지만 기존의 직업교육은 이를 반영하지 못합니다.  결국 기업가들이 교육에 개입하여 많은 대안적 실천을 했습니다. 이 책에서는 틸레 한, 그리고 루디거 이반 같은 기업가들의 노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틸레 한의 모토는 “우리는 아이들을 믿는다”입니다. 그녀는 무엇보다 이들 청소년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효능감과 수행능력을 강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학업을 할 의욕과 동기가 발생합니다. 루디거 이반은 하우프트 슐레에 실제 직업 현장에서 요구되는 지식과 능력을 교육할 수 있는 다양한 산학협동 교육프로그램을 실시하였습니다.


그 밖에 어린 나이에 경로가 갈라지는 독일 교육의 특성상 초등 1학년 때의 학업 능력의 평등한 출발을 위한 유아교육의 개혁적 실천 사례도 소개되는 등 몇몇 흥미있는 실천 사례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초 책의 서두에서 공언한 것처럼 대안적인 실천 사례들이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소개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앞에서 논의했던 문제제기만 다시 반복하고 있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습니다. 기대를 모았던 기업가들의 실천사례는 다소 밋밋한 인터뷰 형식으로 되어 있어 어떤 구체적 모델까지 기대했던 독자를 실망시킵니다.


이 책은 독일인들이 교육문제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반성하고 고민하며 토론하는지 보여주고,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독일 교육의 그림자를 보여주고, 분리형 학제를 부러워하며 은근히 지향하던 일부 보수진영에 경종을 울릴  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분명히 있는 책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보수진영은 9년간, 사실상 12년간 통합형 학급에서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분리형 학제를 만들고자 해왔습니다. 각종 특목고, 자사고의 신설, 평준화에 대한 공격, 그리고 여기에 더해 이런 저런 명목의 특목 중학교를 세우고자 했고, 중학교까지 국영수과 과목에 대한 우열반 수업을 강요했습니다.


그러나 독일인들은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분리형 학제를 문제삼고 있습니다. 그리고 9년간 통합형 학급에서 공부하는 우리나라를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이러니라   있으며,  책은  아이러니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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