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관계에서는 첫 인상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특히 어떤 직종에 처음 입직했을 때 처음 만난 선배에 각인 효과가 있다는 말도 있다. 첫 인상이 평생 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24세 임시 교사에게 선배 남자 교사들이 남긴 첫 인상은 그리 상큼한 것이 아니었고, 이후 33년간 계속 영향을 주었다.
물론 남교사들 중에 훌륭한 분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특히 전교조 지회에서 만나는 남교사들은 대체로 훌륭한 분들이었다. 문제는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지회 선생님들의 좋은 이미지로 상쇄하기에는 매일 출근해서 만나는 같은 학교 남교사들의 이미지가 너무 나빴다. 다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쁘지 않으면 무색 무취였다. 그 중에는 나도 나이 먹으면 저렇게 되는 거 아닐까 걱정될 수준의 분들도 드물지 않았다.
학교에는 남교사 휴게실이라는 곳이 있었다. 요즘도 있기는 할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남교사 자체가 그때보다 훨씬 줄어들어 한산 하거나 이름만 걸려 있고 전혀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을 것이다. 당시 그 학교는 교사 수가 70명에 남교사가 30%가 넘었기 때문에 아침마다 남교사 휴게실이 바글바글했다.
나는 매일 아침 다섯시 반에 일어나 좌석버스를 종점-기점 기점-종점 이렇게 한시간 반에 걸쳐 갈아타며 출근했기 때문에 학교에 도착할 때는 이미 진이 다 빠져 있는 경우가 많았고, 또 젊다 보니 새벽잠도 많아 출근하자 마자 남교사 휴게실에서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 날이 많았다.
당시 남교사 휴게실은 사실상 남교사 흡연실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학교 남교사들 중 비흡연자였던 두 분을 제외하면 다들 수업 시작전에 모여 담배를 피우며 잡담을 나누었다. 나도 그때는 흡연자였기 때문에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 잡담들이 남교사에 대한 첫인상을 완전히 망가뜨리고 말았다. 모여서 하는 이야기의 수준이 교육자는 고사하고 그냥 저잣거리 아저씨라고 쳐도 너무 질이 낮았기 때문이다. 대화 내용이 온통 고스톱이었다. 어쩌다 한 번 치는 고스톱이 아니라는 것을 대화 내용을 통해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거의 하루 건너 하루씩 밤 늦게까지 고스톱들을 치는 모양이었는데, 휴게실 멤버 중 절반 이상이 거의 고정 멤버였다. 그 중 돈을 잘 따가는 사람들에게는 뱀과 관련된 별칭을 붙여 불렀다.
빙글빙글 웃으면서 잃는 척하면서 은근히 많이 따가는 사람은 능사, 승부를 지독하게 해서 기어코 털어가는 사람은 독사, 그 중에서 더 지독하게 돈 따가는 사람은 살무사, 그리고 이름에 칠자가 들어가는 사람은 칠점사, 얼굴이 하얀 사람은 백사였다.
도대체 어디서 그렇게 고스톱들을 치나 했더니 학교 숙직실에서 쳤다. 당시에는 학교 숙직이 아직 남아 있었다. 남자교사들이 돌아가면서 숙직을 했는데, 멤버 중 한 사람이 숙직이면 다른 사람들이 와서 밤 늦게까지 고스톱을 쳤던 모양이다. 고스톱 치고, 술마시고, 담배 피우고. 하여간 나쁜 일의 삼종 종합 세트였다.
물론 나는 사람이 취향에 따라 고스톱도 치고,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지금보다는 훨씬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교사라면 그 셋 말고도 교사다운 지적인 취향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런 취향들이 대화의 주된 소재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면을 눈을 비비고 억지로 찾으려 애를 써도 그들에게서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은 학생들 이야기도 거의 하지 않았고, 교육을 고민하는 모습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간혹 월급이 너무 작아서 쪽팔린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 자기 대학 동창들이 지금 민간기업에 다니는데 돈을 얼마나 많이 버는지 아느냐 등등의 이야기만 오갈 뿐이었다.
“무능하고 바보 같은 사람들만 여기 남았어요.”
아직까지도 기억에 박혀 있는 이 말도 남교사 휴게실에서 들었다. 이 말은 40대 후반의 어느 과학 교사가 자조적으로 한 말이다.
그 때는 40대 후반이 정말 늙어 보였는데, 생각해 보니 지금 나보다도 한참 어린 나이에 불과했다. 나는 적어도 50대 초반까지는 나이 들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았고, 그렇게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는 왜 그렇게 늙어 보였을까? 아마 아무런 의욕도 생기도 없는 좀비같은 모습이라 그랬을 것이다.
차라리 고스톱 이야기하는 남교사들은 좀비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적어도 고스톱 이야기하는 순간만큼은 생기를 보여주었다. 교감 되겠다고 점수에 혈안이 된 사람들 역시 비록 방향은 잘못되었지만 그 나름대로 꿈틀거림이 있어 적어도 살아있다는 느낌은 주었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서는 아무런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고스톱 패거리 역시 고스톱 이야기가 아니면 즉시 생기없는 좀비가 되었다.
남교사들 중 다수가 그랬다. 그들은 승진에도 관심 없고, 그렇다고 전교조나 교육운동에도 관심 없었고, 그렇다고 수업이나 학생들에 큰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인생의 루저라고 생각하는 표정을 짓고 다녔고, 입만 열면 저런 자조적인 말을 쏟아내었다.
그런데 “바보들만 남았어요.”라고 한 그 40대 후반의 과학 선생님은객관적으로 보면 결코 바보가 아니었다. 서울대학교 물리교육과를 나온 분이었다. 당시 40대 후반이었으니 60년대 후반 학번이었을 것이다. 학벌이 반드시 지능을 대표하느냐고 따지고 들면 할 말은 없지만 어쨌든 ‘헛똑똑이’소리는 들을지언정 바보라고 자조할만한 위치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는 왜 그렇게 자신의 삶에 대해 그렇게 자조하고 있었을까? 그는 대체 삶에서 무슨 후회를 남긴 것일까?
그의 이야기 대로라면 ‘학교에 남았다는 것’, 그것이 바로 후회 거리였다. 나는 바보라서 학교에 남았다는 말인지 학교에 남았기 때문에 바보라는 말인지 궁금했다. 아무래도 두번째 의미로 한 말 같았다. 학교에 남기로 한 것이 어리석은 선택이었다는 뜻으로 그 말을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대체 삶의 어느 순간에 어떤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그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사회와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본능이 발동했다. 나는 시간을 돌려 머리 속에서 시물레이션을 돌려 봤다.
60년대 후반 학번이라면 대학 졸업할 무렵이 70년대 초중반이었을 것이다. 딱 우리나라의 산업구조가 가공무역과 경공업에서 중후장대형 중화학 공업으로 바뀌던 시절이었다. 기업의 규모가 커졌고, 고등교육을 받은 사무관리직 노동자의 수요가 급증하였다. 수요가 급증하면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 법, 대기업들은 높은 임금을 미끼로 주로 공공부문에 종사하고 있던 대졸자들을 빨아들였다. 물론 남성에 한정된 이야기다. 서울대 출신 교사들 중 상당수가 안정적인 교직을 그만두고 불확실한 기업으로 자리를 옮겼을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물리교육과 출신이라면 더 말할 나위 없었을 것이다.
그 선생님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사표 내고 월급이 많은 민간 기업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안정적인 직장을 지킬 것인가? 이 선택의 기로에서 불확실성을 두려워하여 안정을 선택했을 것이다.하지만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벌어지는 교직과 대기업 사이의 소득과 사회적 지위의 격차를 겪으며 자신의 선택을 계속 후회했을 것이다.
그는 나이에 비해 유난히도 이마에 주름살도 많은 편이었는데. 회한에 찬 눈빛으로 “바보들만 남았어요.” 할 때는 주름살이 평소보다도 더 깊어 보였고, 그 주름살의 골짜기를 따라 우울함과 무력함이 강물이 되어 흘러 내렸다. 그 꼴은 어떻게 봐도 이제 교직 경력을 막 시작하려는 젊은 교사 앞에서 명색이 선배가 되어 가지고 보여 줄만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마음 같아서는 안 보이는데 끌고가서 막 두드려 패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언짢았다.
그 밖에도 내가 남자 교사들 모임을 기피하게 만든 잘못된 첫 인상들은 많았다.
일단 술. 남자 교사들끼리 모이면 술부터 마시는 것이 싫었다. 또 술이 몇 잔 들어가면 교사 아닌척 하면서 난잡한 이야기를 주고 받는 분위기도 싫었다. 무엇보다 나이 좀 많다고 막 이름 부르고 반말 짓거리 하는 것이 싫었다. 이도 저도 아니면 다른 직장보다 월급 적고 사회적 대우 나쁘다고 저렇게 맥 빠지게 열등감을 토로하는 이야기나 들을 뿐이었다. 그러니 남자 교사들만 모이는 자리를 피할 수밖에.
교사로서 뭔가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모임 중 전교조 분회장 모임을 제외하면 갔다 하면 온통 여성향인 경우가 많았다. 이 바닥에서 퇴화하지 않고 오래 버티려면 소위 남자들의 세계는 잊어버리고 여초 문화에 익숙해져야 함을 깨달았다. 사실 잊어버린다고 딱히 아쉽지도 않을 세계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