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국이 던진 질문, 그리고 밀레니얼 세대
코로나 시국, 줄여서 코시국이라고 한다. 원격수업 온라인 수업이 이루어졌다. 이 와중에 학교의 위상 교사의 위상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많은 교사들이 여기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이 온라인 수업이 명퇴 제조기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그럭저럭 온라인 수업을 준비하고 적당히 적응은 했지만, 정작 걱정은 그 다음부터다. 이미 수업이라는 것이 학교에 와서 교사의 통제하에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이 학생들에게 익숙해진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적인 방식의 수업, 그리고 거기에 기반한 교사의 지위와 권위가 유지될 수 있을까?
교사들의 명퇴 신청 러시는 지금 온라인, 코로나 시국이 힘들고 버거워서가 아니다. 이 힘들고 버거운 상황이 시간이 지난다고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예감, 이 예외적인 상황이 아예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잡을 것 같은 예감, 이른바 뉴 노멀의 예감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온라인 수업 국면에서 그 존재의 무의미성이 가작 극명하게 드러난 집단은 교사가 아니다. 더구나 이 집단은 오히려 별로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지도 않는다. 이들은 이 비정상적인 시기만 어떻게든 지나가면 다시 원래의 질서가 회복되고, 자신들의 지위와 권력도 그대로 유지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바로 교장이다.
이 코로나 시국에서 각 학교의 교장들은 투명인간이 되었다. 물론 그 중에는 온라인 수업을 앞장서서 이끈 교장도 있고, 그럴 능력은 없어도, 교사들이 원활하게 이를 준비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힘쓴 교장도 있다. 하지만 이들이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은 교장들 스스로도 인정할수 밖에 없다. 더구나 그 반대편에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엉뚱한 고집을 내세워, 온라인 수업을 준비하고, 이 어려운 시국에서 교육과정을 몇 번씩이나 갈아 엎어가며 문자 그대로 '개고생'을 하는 교사들을 더 힘들게 만든 교장들이 있어 긍정적인 점수를 상쇄시킨다.
흔히 교장을 '관리자'라고 한다. 관리자라는 이름이 붙으려면 무엇인가 관리를 해야 한다. 1990년대 까지는 분명히 관리 했다. 모든 학교 업무가 종이 문서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꼼꼼한 교장이라면 하나하나 읽고, 검토하며 관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교무업무시스템(NEIS)이 도입되면서 많은 교장들이 '교무 관리자' 역할을 못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이 시스템의 관리자 권한은 교장이 가지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그 역할을 하는 교장은 손에 꼽는다.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특정 교사에게 그 권한을 위임하고 있다. 힘들고 복잡한 일이라 대체로 젊은 교사가 그 업무를 담당하는데, 사실상 이 젊은 교사 한 사람이 그 학교의 모든 업무를 '관리'하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온라인 개학을 하면서 교장의 위상은 더 위축되었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던 교장의 이미지는, 수업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학교를 한 바퀴 돌면서 순시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온라인 개학상황에서는 이게 불가능해졌다. 학교가 사실상 인터넷으로 이사를 간 셈인데, 그 학교를 관리할 권한은 정보통신 기술에 익숙한 어느 교사에게 넘어가 버렸다. 온라인 수업이 이루어지는 동안 사실상 구글 클래스 룸 등 플랫폼을 관리하는 교사가 교장의 역할을 수행했다. 모든 수업을 들여다 보고 조치할 권한 역시 교장이 아니라 플랫폼 관리 교사에게 있었다.
교장이 관리자라는 것은 그런 시스템 관리자가 아니라 사람을 관리한다는 뜻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교장은 교원, 직원들간의 합리적인 업무 분배를 해야 하며, 교원, 직원이 자기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는 동안 걸림돌이 없도록 미리미리 필요한 조치들을 찾아서 처리해 주어야 한다. 또 인생의 선배로서, 분야의 베테랑으로서 후배 교사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그들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코칭의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맙소사, 이런 교장 보신분?
즉 우리나라 학교에서 교장의 권위란 교사들이 그거 인정 안하겠다고 나서는 순간 신기루처럼 무너지게 되어 있다. 물론 교장들도 대부분 그것을 안다. 그래서 교사들의 마음을 얻어보려 나름 신경을 쓴다. 물론 그 노력의 대부분은 경직된 사고와 부족한 상상력 때문에 별로 먹혀들지 않지만, 교사들은 그래도 노력이 가상해서 그런 교장들을 그런대로 인정해 준다. 하지만 그 교장이 '관리자'로서 제대로 기능할 것이라는 기대는 거의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교사들은 교장이 교육의 베테랑으로서 자신들이 처하게 될 여러가지 어려운 문제에 슬기롭게 대처할 솔루션을 제공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들이 시도할 참신하고 창조적인 교육활동에 낡은 기준을 들이대며 태클이나 걸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설명하면 목아프니 말이다.
사정이 이 지경이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교장이 누리는 권위는 사실상 정당성에 의해 유지되어오지 않았다. 제일 훌륭한 교장은 가만 있는 교장이라는 자조적인 말이 우리나라 학교에서 교장의 위상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교장들이 학교에서 특별한 도전이나 저항에 부딪치지 않고 마치 봉건 영주처럼 행세할 수 있었던 까닭은
순전히 우리나라 교사들이 너무 '착했기' 때문이다.
사실 공립학교에서 교장이 교사에게 휘두를 수 있는 직접적인 권한은 많지 않다. 월급을 깎을수도 더 줄수도 없으며, 임면권도 없다. 기껏해야 승진가산점을 좀 더 붙여 준다거나 정도인데, 그까짓거 안한다고 하면 그것도 별 힘이 없다. 사소한 트집으로 징계위에 회부? 그랬다간 자기 목도 같이 걸어야 한다.
교사들 대다수가 너무도 착실한 모범생답게, 담임교사에게 순종하듯 교장에게 순종하기 때문에, 그 권위가 유지되는 것이다. 덕분에 오히려 올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교사가 소수파로 전락하여 교장의 표적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밀레니얼 세대에게 그런 순진한 순종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있을까? 사실 그들은 그 동안 많이 참아왔다. 그들이 자기들끼리 소통하는 매체에서 털어놓는 이야기들에는 교장, 교감은 물론 고경력 교사들의 낯이 붉어질 정도의 내용이 많다. 그 동안 그래도 견딜만 하니 꾹 참고 있었던 것이지, 결코 순종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른바 코로나 시국은 이 젊은 교사들을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극한 상황으로 내몰았다. 신세대라는 이유로 이른바 뉴노멀한 업무들, 온라인 수업과 관련된 업무들이 이들에게 집중되었던 것이다. 이런 업무의 집중은 힘들고 피곤한 일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역량과 힘을 자각할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런 정당성 없는 권위로 이들을 억누르려 들면, 이들은 결국 그 권위에 정당성이 없으며, 따라서 그들은 더 이상 그런 권위를 인정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할 수도 있다. 이들 선배 세대들이 "아무리 그래도 교장 선생님인데"하며 쭈뻣 거리며 하지 못할 말을, 이들은 대 놓고 한다. 학교에 "엄중 문책"따위 문구의 공문을 보내 겁박하면서 자신의 권력을 느껴보려 했던 교육청 관료가 쏟아지는 항의 전화에 결국 공문을 수정해야 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새파란 나이의 평교사가 감히 장학사에게 항의 전화를 해?” 이런 말이 먹히지 않는 세대다. 그리고 이 코로나 시국은 이들의 잠자던 야성을 일깨웠다. 이 시국은 이들에게 자신들이 얼마나 유능한지, 그리고 선배들과 관리자들이 얼마나 무능하며 경직되어 있으며 아무런 미래가 없는 존재들인지 보여주었다.
이 시국에 교내 교직원 연수를 집합시켜서 하지 말고, 줌이나 구글 미트로 비대면 화상회의로 하자는 말조차 이해시키기 어려운 존재들이니 말이다. 여전히 종이 문서를 복사해서 나눠줘야 마음이 놓이고, 문자나 메신저가 아니라 직접 통화를 고집하고, 스마트 폰으로 "자세한 내용은 첨부파일을 참고하세요"라고 해 놓고는 HWP파일을 떡하니 첨부하는 그런 존재들이니 말이다. 심지어 지금까지의 내용이 뭐가 문제인지도 알아채지 못할 존재들이니 말이다.
이 시국이 끝나고 나면, 과연 교장은 어제의 교장과 같을 수 있을까? 가장 고민을 많이 해야 할 집단이 의외로 너무 조용하다. 뭘 믿고 그러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