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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교사 Jun 02. 2020

교육운동 하는 선생님들, 담배를 끊읍시다.

비판의 힘은 결코 능동의 힘을 능가하지 못한다. 아주 거대한 규모의 비판보다 작더라도 새로운 무엇인가, 사소하지만 긍정적인 차이를 만드는 것이 결국 사회운동을 성공으로 이끌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 사소하고 긍정적인 차이는 일상 세계, 생활 세계에서 바로 눈에 띄고, 바로 화제가 될 수 있는 그런 것이라야 한다. 


교육 운동도 마찬가지다. 어떤 교육 운동 단체가 힘을 얻고 교육을 바꾸어 나가려면, 먼저 그들이 어떤 차이를 만들어 내고 있는지 사소하더라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1990년대의 전교조는 지금보다 규모는 훨씬 작았고, 심지어 조합원들이 신분을 숨겨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그 영향력만큼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그때 전교조의 존재를 각인시킨것은 ‘민족,민주, 인간화 교육’ ‘참교육’, ‘교육민주화’ 같은 공식적이고 거대한 구호가 아니었다. 당시 전교조의 존재를 각인 시킨 것은 딱 둘이었는데 “저 선생들은 촌지를 받지 않는다.”, “저 선생들은 애들을 덜 떄린다(안 때린다고는 말 못함)” 정도였다. 


이 둘은 학생과 학부모가 일상생활에서 체감할 수 있는 차이였고, 이 차이를 바탕으로 전교조는교육계의 기득권층에게 타격을 가함과 동시에 도덕적으로 우월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었다. 이런 전교조 교사를 1500명이나 해고한 정부는 “좋은 선생님”들을 몰아냈다는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노태우 정부를 전두환의 계승자가 아니라 물태우 정부로 만드는 일종의 원죄가 되었다. 그래서 1990년대에는 “해직교사”라는 단어 자체가 일종의 명예처럼 여겨졌다. 가령 교육과 아무 상관 없는 등산잡지조차 기사에 “경남에서 왔다는 어느 해직교사와 우연히 동행이 되어 지리산을 종주했다.”라는 대목을 넣음으로써 독자들의 긍정적인 반응은 끌어내려 할 정도였다. 


그런데 요즘 전교조의 위상이 옛날 같지 않다. 원인이야 워낙 복합적이겠지만, "전교조 교사"  "일반적인 교사와 다른  무엇" 보여주지 못했고, 그런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점이 클 것이다. 1980-90년대때 "저 선생님 전교조야."라고 할때 사람들이 떠올리고 기대하는 전형적인 모습과 2010년대의  모습이 달라진 것이다.  이미지는 훨씬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80년대  운동권의 언짢은 문화가 노출된 것이 크다.  전교조가  도덕적인 우위를 점하지 못한 결정적인 계기를 ‘교원평가’ 국면부터라고들 하지만, 나는 거기 동의하지 않는다. 그건 기껏해야 중산층 학부모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잃어버린 계기일 뿐이다. 전교조가 도덕이라는 고지를 내어준 결정적인 계기는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에서 조합의 지도부가 교육자라기 보다는 남성중심의 억압적 운동권 문화에 물들어 있는 활동가의 모습을 들켜버린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전교조의 위상 약화에도 불구하고 이를 대신할만한 교육운동 조직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 또 전교조 안에서 기존의 운동권 문화를 혁파할만한 어떤 참신한 세력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득, 어느 젊은 진보 활동가가 정의당은 이제 다 낡아버린 곳인데 왜 거기 있냐는 물음에 대해 "낡은 사람들을 몰아낼 일이지 왜 우리가 떠나냐"라고 항변하는 글을  본 기억이 난다. 어쩌면 전교조, 그리고 전교조 뿐 아니라 여러 교육운동 단체에도 이런 젊은 세대의 모습이 필요하다.


 역시 따지고 보면 한때 전교조의 지도부라면 지도부에 속해 있었으니, 그 세대의 맹렬한 비판을 받고 밀려나가야 마땅한 사람에 속한다. 그런데 내가 전교조 본부 간부 노릇을 하던 2007년, 이미 나이가 이미 마흔이었지만, 이른바 지도부에서는 늘 막내 취급이었다. 내가 맡았던 일은 각종 정책연구, 각종 언론 논평과 성명서 작성 이었다. 


당시 전교조 본부는  민주노총이 있는 빌딩에 있었다.  전교조는 말이 민주노총의 산하조합이지, 건물에서 차지하고 있는 사무실의 면적이나 굴리는 예산은 민주노총과 대등한 조직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민주노총 산하노동 조합 사무실들에는 공통점이 있엇다. 그건 바로 자욱한 담배연기였다. 특히 금연건물이라는 팻말 앞에 버젓이 흡연용 소파와 재떨이 까지 설치해놓고 있었던 금속노조 본부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사무실을 찾아오는 손님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마자 대뜸 담배연기부터 맡아야 하는 구조인 것이다. 계단이고 화장실이고 엘리베이터 안이고  담배악취가 배어있지 않은 공간을 찾기 힘들었다. 심지어 회의실에서도 담배들을 피워대었다. 민주노총은 물론 배웠다는  전교조 본부 간부들의 흡연도 상당했다. 


하도 답답해서 전교조 본부에서 근무하는 전임자(교사로서 파견나온 사람들)의 흡연율을 조사해 보았다. 2007년 당시 전교조 본부 전임자는 무려 31명이었다. 이 31명의 전임자(말하자면 핵심 전교조 교사라 할 수 있다)들 중 무려 21명이 흡연자였다.  67%가 넘는 흡연율!  당시 한국 성인 남성 흡연율의 1.5배. 교사의 흡연율로는 믿을수 없는 수치였다. 게다가 이건 남녀 합친 수치다. 남성 전임자만 따로 분류해 보니 놀랍게도 25명중 19명, 흡연율이 76%였다. 정확한 통계는 나와있지 않지만 한국 남자교사들의 평균 흡연율은 20%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 너구리 굴 같이 탁한 공기가 흘러다니는 홈리스 소굴 같은 사무실에서 도저히 작업할  엄두가 나지 않아 카페를 전전했다. 물론 지도부의 어르신들은  근무태도가 불량하다고  교장, 교감 같은 소리를 했다. ‘무단이석’이라는 관리자스러운 용어를 써 가며. 하지만 사무실에 엉덩이를 붙이지 않은 덕분에   1년간 날카로운  논평, 성명, 보도자료들을 냈고,방송 대담 등에 나가서 보수쪽 발표자들 묵을 댕겅댕겅 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 성과 없이 사무실에 죽치고 있는것을 성실함이라고 생각하는  지독한 관료주의는 교사들을 어떻게든 교무실에 붙들어 두기만 하려는 교장, 교감의 그것과 너무도 비슷했다. 그때 나는 전교조에 희망이 없음을 직감했다. 나는 당시 이미 스마트 시대를 예견하고 있었던 셈이고, 전교조는 여전히 아날로그였던 것이다.


물론 담배를 피우는 것은 자기 자유며 뭐라 할수 없다. 하지만 전교조 활동가라는 변인과 흡연율이라는 변인이 정적인 상관관계를 이루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다.  전교조 활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일수록 담배를 피울 가능성이  크다는 함수는 전혀 반갑지 않다. 교사는 담배를 피우라고 가르치는 입장이 아니다. 도리어 끊으라고 가르치는 입장이다.  이유도 무슨 규율 따위가 아니라 건강에 매우 해롭기 때문이다. 내몸 내가 망치는데 무슨상관이냐는 식의 반응은 교육적으로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데 일반적인 교사들보다 몇배나  높은 흡연율을 이다니.


그래서 80년대 낡은 운동권 문화에서 벗어난다는 상징적 행위로서‘ 금연운동’을 제안했었다. 촌지 안 받기 운동처럼 전교조 교사는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 식의 운동을 해보자고 제안한 것이다. 그때 전교조 주요 활동가들의 반응은 굉장했다. 받아들이지 않음은 물론 웃어넘기지도 않았다.  정색을 하며, 적극적으로 반박, 심지어 분노하기까지 했다. 


 "담배를 나쁘게 보는 문화는 미국놈들의 문화다. 너는 친미냐?" 이런 얼토당토 않은 말을 하는 선배들까지 있었다.물론 다 남자들이었다. 하긴 당시 전교조와 같은 건물을 쓰던 민주노총의 모 산별노조는 전교조 회의실을 빌려 쓰고 나면 온 사무실을 담배연기로 가득채우고 문서 파쇄기에 담배 꽁초를 쑤셔놓고 가곤 했으니. 담배야 말로 운동권의 알파요 오메가였던 것이다.


다시 전교조, 실천교사, 새학교넷 등  여러 교육운동 단체 활동가들에게 제안해 본다. 좋은교사는 당연히 안 피울테니 뺀다. 


담배를 끊자. 남성 회원 흡연율 5% 운동을 벌이자. 여기에 더하여 '승용차 출근 줄이기  운동' 이런것도 좀 해 보자. 뭐라도 개선하는 노력을 좀 보여 보자. 불굴의 의지와 투혼을 자랑해왔던 그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담배를 끊을 수 있다.  담배를 이기지 못하면서 무엇과 싸워 이길수 있겠는가? 해로운줄 알면서도 이기지 못해 담배를 끊지 못하는데, 해로운 줄 알면서  입시교육 하는 다른 교사나 학부모를 무슨 근거로 비난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는 담배가 해롭다는 것은 서양식 사고방식이며, 민족의 전통은 남녀노소가 담배를 피우는 것이라는 궤변까지 늘어놓으면서 담배를 부둥켜 안고 있으니, 또 담배와 관련된 언급만 나오면 신경질을 내며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니 이는 중독증의 전형적인 현상 아닌가?


단지 교사가 아니라 더 나은 교육을 주장하는 교육운동 단체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그 어떤 집단보다도 고결해야하고, 품위있어야 하고, 지성적이라야 한다. 담배를 피우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니(피우고 난 다음에도 그 냄새는 한동안 몸에 남아서 공기를 더럽힌다. 흡연자는 잘 모르는 사실이다) 고결하지 못하며, 일개 중독성 물질에 매달려서 시름과 고민을 해결한다고 핑계를 대니 품위도 없다. 더구나  몸에 해로운 것을 버젓이 알면서도 나만은 예외겠지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니 지성적이지도 않다.


거대한 교육담론을 말하기 전에, 먼저  담배부터 끊자.  참고로 나도 2004년에 담배를 끊었다. 무려 16년간의 흡연인생을 단 1차시기로 끝내버렸다.  단 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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