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소설 트리플 콘체르토 2장 유노이아뷰티뮤지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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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노이아 뷰티 뮤지엄 2층은 1층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프라이빗 다이닝룸과 소규모 공연장, 런웨이까지 갖춘 이곳에서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비밀스러운 행사와 만남들이 이루어졌다.
부티크 회원이라고 누구나 2층에 올라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2층은 오직 소이가 직접 “프라이빗 룸으로 모시겠습니다”라고 말할 때만 가능한, 말 그대로 ‘선택받은 이들’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선택의 기준은 명확했다. 돈이 아니었다. 물론 돈 없이는 애초에 회원 자격을 얻기도 어려웠을 것이지만, 돈의 역할은 딱 거기까지였다. 2층으로 올라가려면 돈이 아닌 다른 것이 필요했다. 숫자가 아닌 취향, 계급이 아닌 감각, 지위가 아닌 관계.
만약 돈이 기준이었다면 1층 메인 디스플레이를 막스 마라, 셀린느, 더 로우 중심으로 구성하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샤넬과 에르메스는 취급하지도 않았다. 이 공간이 추구하는 미적 지향점이 남다르다는 증거였다.
결국 이 세계로 들어가는 마지막 관문은 소이였다. 보그, 바자, 엘르, 마리 끌레르 네 매거진의 표지를 모두 장식한 여성, 아름다움 그 자체가 된 ‘소이의 친구가 되는 것’이 바로 그 열쇠인 셈이었다. 당연히 거기에는 객관적 기준 따위는 없었다. 그렇기에 2층 입장권은 더욱 특별했다.
이 공간에서 로사와 소이가 나란히 앉아 카탈로그를 넘기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마리는 그 옆에서 조용히 카탈로그를 들여다보았다.
화려한 로사와 달리, 세계적인 미인이라는 소이는 오히려 놀랍도록 절제된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무릎 아래까지 곧게 떨어지는 크림색 실크 셔츠 드레스에 가는 누드톤 벨트 하나. 목과 귀에는 어떤 장신구도 없었고, 손목에는 브랜드 로고조차 없는 오래된 시계 하나가 전부였다.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도 단정하고 간결했다. 컬러 메이크업은 거의 하지 않고 입술에만 자연스러운 혈색을 더했으며, 머리는 가장 기본적인 포니테일에 리본 하나로 가볍게 마무리했다. 어떤 장식도 없이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오히려 가장 강력한 스타일링이었다. 평소 성형에 대해 혐오에 가까운 거부감을 드러내곤 했던 소이의 취향 그대로였다.
맞은편 테이블에서는 예니와 지니가 마주 앉아 오랜만에 만난 자매처럼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지니는 여전히 전성기 때의 총명하고 활기찬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었다. 소이의 미모가 이상화된 고대 조각 같다면, 지니의 미모는 지성과 온기가 배어든 베르메르의 그림 같았다.
지니 역시 타고난 아름다움을 과한 꾸밈으로 해치지 않으려는 듯, 톤 다운된 애시 핑크 원숄더 니트에 청바지를 매치하고, 립밤과 파운데이션 외에는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자연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처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두 사람—소이와 지니—의 모습은 유노이아가 왜 K-pop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걸그룹이었는지, 그리고 왜 투 센터 시스템을 선택했는지 명확히 드러냈다.
이것이 사치스러운 분위기를 꺼리는 예니가 이 공간에 오는 유일한 이유이기도 했다. 이 둘과 함께 있으면 그 지긋지긋한 “예쁘다”는 말도, 시선도, 비교도 따라붙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예니에게 가지는 관심은 예쁜 얼굴이 아니라 예니 그 자체, 그리고 예니의 첼로였다.
지니가 손끝으로 예니의 손등을 가볍게 건드리며 말했다.
“8월까지 한국에 있을 거라고?”
“로사 언니가 생일 파티 끝나면 조국 순례 여행을 하겠다잖아? 트리오에서 바이올린이 빠지면 뭐 해. 노는 거지 뭐.”
“독주회 하면 안 돼? 예니 독주회라면 아마 티켓 오픈 10분 안에 매진일 걸?”
“나 단독 공연하면 계약 위반이야.”
“하. 클래식 바닥도 만만치 않네.”
“여기나 거기나 똑같지 뭐.”
“대신 너희는 정산율 70% 잖아?”
“대신 헤어, 메이크업, 코디가 죄다 내 돈 내 산이거든. 요즘 클래식도 그쪽으로 돈 들어가는 거 장난 아니야. 하필 여자만 더 그래. 악기 유지비는 또 얼마나 들고? 현하고 활 털에만 일년에 천 만원 가까이 들어.”
“그렇구나. 아, 참. 로사 언니가 조국 순례 한다고 하니 갑자기 드는 생각인데, 그럼 로사 언니 순례 다니는 동안 너 나랑 같이 수학여행 갈래? 웃기지만 나, 경주 한 번도 못 가봤어. 아이돌 활동하느라 고등학교 생활이 순삭이었거든.”
“와, 그거 좋은 생각이다. 나도 중 2때부터. 투어 한다며 외국은 수없이 다녔는데. 수련회, 수학여행, 방학은 전부 순삭이야. 솔깃한데? 우리, 정말 갈까? 언니가 기아차 광고 모델이잖아? 차 한 대 얻어서 가면 안 될까?”
그 말에 지니가 손뼉을 쳤다.
“안 되긴 왜 안 돼? 요즘 EV3 홍보 기간이라 시승차 마음대로 써도 돼. 예니까지 태우고 간다고 하면 기아차 사장 입이 귀에 걸릴 걸? 제발 어디 가서 사진 좀 많이 찍혀라 이러면서?”
예니가 키득키득 웃었다.
“좋다. 바다도 보고, 첼로 없는 무대에서 박수도 받아보고.”
지니가 장난스레 눈을 흘겼다.
“무대는 무슨, 너 수영복 입고 해변에서 걸어 다니기만 해도 뉴스거리야.”
그 말에 예니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나 원피스 입을래. 명색이 클래식인데 비키니는 좀 그렇지?”
“완전 대박. 수영복도 협찬 하나 받을까? 나도 맞춰 입게. 나도 청순돌이라 비키니는 사양일세.”
두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소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로사에게 말했다.
“여기서 행사 진행하면서 언니가 말하는 거 다 반영하면 안 나와도 4천만 원 넘게 나올 텐데, 정말 괜찮겠어?”
로사가 깔깔 웃으며 대답했다.
“거기에 저 리미티드 반지도 넣어야지.”
이 말에 소이마저 깜짝 놀랐다.
“그럼 5천도 넘어가. 무슨 생일 파티를 그렇게까지 해?”
“서른 살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나이니까. 걱정 마. 그거 라이브 넣고, 협찬 받고 하면 되니까. 오히려 남길 수도 있어.”
“뭐? 여기서 라방을 하겠다고? 그럼 여기가 외부에 공개되는 건데?”
“사람 위주로 찍을 거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장소는 노출 안되게 할게.”
“그래도.”
소이는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로사가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파티에서 마리 목걸이랑 내 반지가 공개되는 거고. 전부 클로즈업으로 처리할 거고, 여기 가구, 배치 이런 거 절대 노출 안 되게 앵글, 프레임 다 조절할 거고. 당연히 소윤이 네 얼굴도 절대 안 나오고.”
그제서야 소이가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공연은 어떻게 준비할까? 트리오 연주 세팅해 둘까?”
“아니. 나랑 마리는 연주 안 해. 주인공이 연주할 수는 없잖아? 앉아서 선물 받아야지.”
“그것도 그래. 음. 어쩌지? 마음 같아서는 내가 축가라도 불러주고 싶은데 라방으로 한다니까 꺼려져서. 미안해. 나 대중 노출 되는 힘들어 하는 거 알지? 예진이 한테 부탁할까?”
그러자 예니와 수다를 떨고 있던 지니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이며 찬성의 뜻을 표시했다.
소이가 태블릿을 열고 메모를 시작했다.
“그러면 예진이가 축가. 당연히 댄스도 넣고. 그럼 예니가 첼로로 축하 연주?”
로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난 예니가 예진이랑 같이 춤을 췄으면 해.”
순간 예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소이의 얼굴도 파랗게 질렸다.
로사가 태연한 모습으로 말했다.
“소윤이가 빠지면 유노이아 투 센터 한 자리가 비잖아? 다른 사람이 채워야지. 그럼 지금 이 자리에 임시 멤버이긴 했지만 유노이아 출신은 예니 뿐이잖아? 서진이랑 하린이는 나 싫어하니까 아마 안 올 거고.”
예니가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눈을 찌푸렸다. 그 모습은 마치 중국 전설 속 미인 서시가 가슴앓이를 하여 눈을 찌푸리자 다른 여자들이 따라했다는 서시효빈이라는 고사성어를 연상시켰다.
마침내 예니가 쥐어 짜는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체 7년 전 이야기를 왜 꺼내는데?”
로사의 목소리가 점점 차가워졌다.
“네가 유노이아 북미 투어 같이 한다며 떠난 여섯 달 동안, 나랑 마리 둘이서만 연주했거든. 그런데 티켓이 추풍낙엽처럼 드롭 됐더라. 명색이 트리오 ‘디누’인데, 디누 자매는 멀쩡히 남아있고, ‘권’예니가 잠깐 빠진 건데 어쩜 그럴 수가 있어? 그런데 그거 드롭되면서 발생한 손실보다 네가 벌어준 돈이 더 많았으니 회사에서도 오케이 했겠지? 그러니 넌 얼마나 많이 벌었겠어? 그런데도 넌 사과 한 마디 없이 너무 태연히 돌아왔어. 그러면서 아이돌의 아자만 꺼내도 있는 성질 없는 성질 다 내면서.”
이때 예니 대신 가만있던 지니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그건 로사 언니가 잘못 생각한 거야.”
“내가 뭘? 예니도 케이팝 스타 되고 싶었던 거 아니야?”
“예니는 그럴 마음 전혀 없었고, 투어에서 춤도 추지 않았어. 예니가 유노이아에서 했던 역할은 처음부터 끝까지 첼로 연주뿐이었어. 음. 약간의 율동 정도는 있었지만, 아이돌 댄스 같은 거, 배울 시간도 없었고, 그거 그렇게 쉽게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야. 애초에 우리 회사가 언니네 회사와 예니 임대 계약할 때 그런 거 안 시키기로 약속 했었고, 그쪽 회사 매니저가 따라다니면서 눈에 불을 켜며 감시했거든. 혹시 야한 옷 입혀서 춤이라도 시킬까 봐. 내 눈에는 우리 의상보다 클래식 연주복이 훨씬 더 야해보였지만. 어쨌든 예니는 유노이아에 잠시 피난 온 거였어.”
“피난? 누구한테서? 설마, 나? 그래 내가 좀 에바이긴 했어. 미안해. 요즘 기준으로 보면 학폭 소리 들을만한 짓도 좀 했어. 그거 때문이라면 사과할게.”
갑자기 계속 침묵하고 있던 마리가 입을 열었다.
“아니. 로사 너 말고. 아빠한테서. 디누한테서.”
“갑자기 무슨 소리야?”
로사가 선명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예니는 디누의 제자도 딸도 그 무엇도 아니잖아? 어째서 권예니가 사춘기 내내 디누라는 이름에 짓눌려 살아야 했지? 게다가 말로는 음악이니 예술이니 하면서 자기 얼굴만 쳐다보는 청중들의 위선적인 시선에도 지쳤고. 예니는 쉬고 싶었어. 그런데 계약서를 아무리 뒤져도 다치거나 임신이라도 하지 않는 한 쉴 방법이 없었어. 나도 같이 찾아봐서 알아.”
“마리, 네가 왜?”
“그동안 예니한테 너무 미안했거든. 나 무대 공포증 있는 거 알잖아? 그것 때문에 국제 콩쿠르 결선에서 번번이 우승 놓친 거? 그래서 엄마한테 솔로는 글렀다고 극딜이나 당한 거? 그런데 트리오로는 어떻게 연주했냐고? 어떻게 뮌헨 국제 콩쿠르 우승까지 했냐고? 청중들 시선이 예니 예쁜 얼굴에 모인 덕분에 마음이 훨씬 가벼웠거든. 아, 로사 너 나대는 것도 도움이 되긴 했지. 하지만 내내 미안했어. 우리야 디누의 딸이니까 어떻게든 그 이름값을 해야 했다고 쳐. 하지만 예니는? 예니는 왜 트리오에 묶여서 그것도 맨날 예쁜 마스코트 취급받으며 성장기를 다 보내야 해? 그때 뤼미에르에서 예니 임대하겠다고 제안했고 결국 따라간 거야. 그렇게라도 디누에게서, 우리 아빠한테서 벗어나려고. 휴직이 안 되니 파견근무 한 거라고.”
“아빠. 아빠 때문이라고?”
로사가 갑자기 오그라드는 목소리로 되뇌었다.
그 오그라든 목소리에 오히려 마리가 놀랐다. 갑자기 없던 용기가 솟구쳐 감히 언니를 도발한 뒤 장차 쏟아질 후폭풍을 각오하고 있었는데 로사가 뜻밖의 약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마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러니까 언니 때문이 아니라고.”
하지만 로사는 입을 굳게 다물고 스마트폰을 꺼내 손가락을 놀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이가 여전히 파란색과 하얀색의 중간 정도 되는 얼굴을 하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기, 로사 언니. 그럼, 파티는?”
“그냥 너한테 일임할게. 소윤이 감각 믿으니까.”
대답하는 로사의 목소리는 여전히 힘이 없었다. 소이가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라방 아까 말한 대로 해도 돼.”
지니도 나섰다.
“내가 축가도 부르고 춤도 추고 다 할 게. 또 뭐가 필요해?”
이때 소이가 뜻밖의 말을 했다.
“나도 춤출 게.”
모두 깜짝 놀라며 소이를 바라보았다. 소이가 2019년 이후 극심한 대인기피증에 시달리며 어떤 무대에도 안 선 지 벌써 4년이 지났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소이가 과거 수많은 남성들을 거의 기절 직전까지 몰아갔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유노이아 투 센터 7년 만에 출격. 이 정도면 조회수 얼마나 나올까? 1천만 뷰는 가볍지?”
지니가 맞장구 쳤다.
“천만이 뭐야? 1억 뷰 나올지도 몰라. 그런데 너희 갑자기 왜 이래?”
이때 로사가 어색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둘러보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걸렸다. 나 먼저 나갈게. 네들 제안은 고맙게 다 접수하고. 오늘 밤에 안 들어올 거니까 내일 아침에 봐.”
그리고 손을 흔들며 인사한 뒤 연기처럼 사라졌다.
“무슨 일이야?”
소이가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마리를 바라보았다.
마리가 고개를 푹 숙이며 한숨을 쉬었다.
“틴더에서 하나 걸렸나 봐.”
“그건 또 뭔데?”
소이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모습이었다. 지니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넌 굳이 알 필요 없어.”
“뭐야? 무시하지 마. 나도 한국 나이 서른이야. 알 건 다 알아. 원나잇 하러 나간 거잖아? 저래도 괜찮을까?”
마리가 로사를 대신하기라도 하듯 대답했다.
“로사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 전엔 쟤가 미쳤나 봐 이렇게 생각했지만, 요즘은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있어. 받아들이긴 어렵지만. 그리고 너무 불쌍해.”
마리의 눈에서 눈물 두 줄기가 흘러내렸고, 마리의 눈물과 ‘불쌍해’라는 단어 한 마디에 어느새 소이 눈에도 눈물이 글썽거리기 시작했다.
예니가 조용히 다가가서 마리의 손을 잡아주었다.
이때 마리가 소이를 보며 말했다.
“참, 소윤아. 로사 생일이 곧 내 생일이니까 나도 이벤트 제안할 자격 있는 거지?”
소이가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니가 무슨 말하려는지 짐작했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 그거 하려고?”
“응. 결심했어.”
“내가 응원할 게. 7년 전에 언니가 나 응원했듯이.”
마리의 손을 더 꼭 잡아주는 예니의 눈앞에 7년 전 지금처럼 마리와 부둥켜안고 눈물 흘리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예니가 울고 있는 쪽이었고, 손을 잡아준 쪽이 마리였다.